한 예로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충청도 부여현과 석성현 등의 토산으로 이 물고기가 올라 있다.
조선 8도 여러 지역의 토산이기도 했던 이 물고기는 수어(首魚) 혹은 숭어(崇魚)라고도 불렀다.
이름들이 모두 범상치 않다.
생김새가 빼어나고 몸집도 큰 데다 맛까지 좋아 제사상과 잔칫상은 물론 임금 수라상에도 오른 물고기였기에 붙인 이름들이다.
충청도 부여현과 석성현은 금강 하류에 위치했다.
금강이 지나는 두 현 지역은 1990년 금강 하류에 하굿둑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바닷물의 영향이 직접 미치는 기수역(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이었다.
이 기수역에 살던 수어란 물고기는 다름 아닌 숭어다.
금강 하류의 숭어는 1900년대 초 기록에도 토산 어종으로 나타나고, 하굿둑이 생기기 직전인 1989년 최기철 전 서울대 명예교수가 남긴 금강의 어류 목록에도 올라 있다.
적어도 이 무렵까지는 숭어가 금강 하류의 대표 어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하굿둑이 생긴 이후부터는 숭어가 올라와 살던 기수역이 담수역(민물)으로 바뀌고 이동마저 자유롭지 못해 지금은 소수 개체만이 확인될 뿐이다.
금강하굿둑의 현재 상황은 뒤에서 설명한다.
# 진짜 숭어, 가짜 숭어 1840년께 간행된 서유구의 전어지에 숭어에 관한 기록이 있다.
"숭어는 강과 바다에 모두 있다.
강에서 나는 숭어는 색이 선명하고 깨끗하나 드물다.
바다에서 나는 숭어는 진짜(眞者)와 가짜(假者)가 있는데, 진짜는 강에서 나는 것과 차이가 없으면서도 색이 조금 거친 데 비해 가짜는 색이 검고 눈도 다르다."여기서 진짜는 숭어, 가짜는 가숭어를 일컫는다.
서유구도 가숭어의 눈이 숭어와 다른 것에 주목했다.
바다와 강을 오가는 회유성 어류인 숭어와 가숭어는 같은 숭엇과이지만 속(屬)이 다를 만큼 각기 독특한 특성이 있다.
숭어(학명 Mugil cephalus)는 가슴지느러미 시작부에 가숭어에는 없는 푸른 반점이 있고 꼬리지느러미 끝이 V자로 갈라진다.
이에 비해 가숭어(Chelon haematocheila)는 눈 테두리가 노란색을 띠며 꼬리지느러미 끝이 거의 일자형이다.
또 숭어는 제주도를 포함한 우리나라 전 연해와 강 하구에 사는 반면 가숭어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 연해와 강 하구에 산다.
보통 가숭어가 숭어보다 기수역에 더 가까이 살지만 어린 시기에는 숭어가 하천 중류의 담수역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특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들 외에 등줄숭어(Chelon affinis)도 분포한다.
등줄숭어는 서남해 연안, 특히 전남 연안에 주로 나타난다.
# 크기·지역에 따라 이름 다르고 속담도 여럿 서유구는 전어지에서 "숭어의 치어를 속칭 모장어라고 하는데 남쪽 지역에서는 동어(同魚)라 부른다.
3~4개월 자라 엄지손가락만 하게 큰 것을 미어(米魚)라 한다.
이것이 점차 커서 겨울이 되면 1척 남짓 되며 2~3년 자라면 5~6척 되는 게 있다"고 했다.
숭어는 크기,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양해 무려 100개가 넘는 방언이 알려져 있다.
그만큼 국민과 친숙하다는 증거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숭어를 개숭어라 하고 가숭어를 참숭어라 부르는 독특한 관행이 있다.
또 대표적인 방언으로 보리숭어와 밀치가 있다.
보리숭어는 4~5월 보리 이삭이 패는 시기가 제철인 숭어를 일컫는 말이고 밀치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제철인 가숭어를 이르는 말이다.
숭어와 관련된 유명한 속담으로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 '잉어 숭어가 오니 물고기라고 송사리도 온다'가 있다.
숭어의 맛을 표현한 속담으로는 '여름 숭어는 개도 안 먹는다(숭어는 여름이 되면 살이 물러져 맛이 없어지는 데서 유래)', '겨울 숭어 앉았다 나간 자리 펄만 훔쳐 먹어도 달다', '숭어 껍질에 밥 싸 먹다가 논 판다' 등이 있다.
# 조선시대 숭어 진상 및 토산 기록 조선시대 숭어는 전라도와 황해도에서 숭어, 말린 숭어, 숭어알, 말린 숭어알 형태로 진상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특이점은 당시 숭어의 진상 및 토산 기록에 숭어 1종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숭어와 가숭어를 딱히 구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진상품 기록을 담은 공선전례에 따르면 전라도에서 대전·왕대비전·혜경궁·중궁전·세자궁에 말린 숭어, 숭어알, 말린 숭어알을 진상했다.
또 여지도서에는 전라도 무안·해남에서 숭어를 진상하고 전라도 고부·광양·만경 등 14곳에서 숭어알을 진상했다고 돼 있다.
춘관통고에는 앞의 공선전례 기록에 더해 황해도에서 대전(大殿)에 말린 숭어알을 진상했다고 기록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난 숭어 산지는 전국 8도의 108개 지역에 이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된 16세기 전반 무렵 조선에는 숭어가 비교적 흔하게 서식했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충청도의 경우 숭어 산지가 22곳(결성현·남포현·당진현·덕산현·면천군·보령현·부여현·비인현·서산군·서천군·석성현·신창현·아산현·예산현·은진현·직산현·천안군·태안군·평택현·한산군·해미현·홍주목)으로 전국 8도 가운데 가장 많이 기록돼 있다.
그다음으로는 전라도 20곳, 평안도 19곳, 경기도 13곳, 황해도 11곳, 함경도 10곳, 경상도 9곳, 강원도 4곳으로 나타나 있다.
# 금강하굿둑의 소리 없는 아우성 봄이 되면 지금도 숭어가 금강 하류를 찾아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곡우(穀雨)였던 지난 4월 20일 금강하굿둑 어도를 찾았다.
썰물 시간에 맞춰 어도 수문을 연다고 하기에 수문 개방 전 상황도 관찰할 겸 서둘러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장면은 놀라웠다.
수많은 숭어가 찾아왔건만 하굿둑에 가로막혀 이리저리 방황하는 모습이 마치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문전박대당하는 것처럼 느껴져 애처롭기까지 했다.
폭 9m, 길이 70m의 어도 시설은 아직 물에 잠겨 있었고 수문은 굳게 잠겨 있어 더 이상 강을 오르지 못하고 연신 수면을 맴돌았다.
숭어 행렬은 어도 밖 수백 m까지 이어져 있었다.
숭어 떼 주변엔 최근 몇 년 사이 겨울 철새에서 텃새로 자리 잡은 민물가마우지 약 300마리가 포진해 있었다.
숭어는 덩치가 커 못 잡아먹고 어도 수문을 열면 일제히 모여들 작은 물고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방황하는 숭어 떼를 촬영하던 중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숭어만 와 있는 줄 알았더니 가숭어도 일부 찾아와 함께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이윽고 어도의 수문이 열리자 상황이 돌변했다.
어도의 기울기가 약 3도라고 하는데 물흐름은 의외로 빨랐다.
어도는 숭어·농어 등을 위한 계단식과 뱀장어·참게를 위한 돌망태식, 물고기를 모여들게 하는 유인 수로로 돼 있었다.
이중 가운데에 있는 유인 수로의 물흐름이 유독 빨라 물고기들이 자꾸만 뒤로 떠밀렸다.
어도에 물이 흐르면서 주변에 와 있던 웅어 등 다른 물고기들도 많이 모여들긴 했으나 이들이 어도를 통해 강으로 올라가는지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유인 수로가 이동통로인 줄 알고 숭어들이 뛰어올랐다가 매번 급물살에 뒤로 밀려나는 모습이 반복돼 안타까웠다.
이들 숭어는 먼 바다로 나가 산란한 뒤 지느러미가 해어지도록 헤엄쳐 찾아온 귀한 생명들이다.
그런 생명들의 귀환을 하굿둑은 35년째 가로막고 있다.
제철 맞은 금강 숭어 돌아왔으나 하굿둑에 35년째 '발목'조선 충청도 숭어 고장 … 108개 산지 중 22곳 '가장 많아'신증동국여지승람 금강 하류 부여·석성현 토산 '수어' 기록빼어난 생김새에 맛도 좋아 제사·잔치·수라상 오른 명품어크기·지역 따라 부르는 이름 다양해 방언 100개 넘을 정도 과거,생태기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