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금덕원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새벽 4시, 5성급 호텔인데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교회 종소리나, 사찰의 새벽 예불을 알리는 북소리와 사뭇 다른, 알 수 없는 아랍어 주문이 30여분이나 지속된 인근 이슬람 사원의 기도 소리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헌법에 종교자유가 보장된 세속국가이지만, ‘모든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등식이 적용돼 국민 모두는 국가가 보장하는 종교를 의무적으로 가져야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면 발급받는 신분증(KTP)에 지정된 국가종교 중 하나를 기재해야만 하는, 무신론이 용납되지 않는 종교 국가이다. 국가 지정 종교는 이슬람, 힌두교, 불교, 가톨릭, 개신교 등 5대 종교였는데 2006년 유교를, 2017년 토속신앙까지 추가돼 7대 종교가 됐다.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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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판타이 인다 카푹(PIK)1 지역의 차이나타운 모습 |
새벽 4시, 5성급 호텔인데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교회 종소리나, 사찰의 새벽 예불을 알리는 북소리와 사뭇 다른, 알 수 없는 아랍어 주문이 30여분이나 지속된 인근 이슬람 사원의 기도 소리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헌법에 종교자유가 보장된 세속국가이지만, ‘모든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등식이 적용돼 국민 모두는 국가가 보장하는 종교를 의무적으로 가져야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면 발급받는 신분증(KTP)에 지정된 국가종교 중 하나를 기재해야만 하는, 무신론이 용납되지 않는 종교 국가이다. 국가 지정 종교는 이슬람, 힌두교, 불교, 가톨릭, 개신교 등 5대 종교였는데 2006년 유교를, 2017년 토속신앙까지 추가돼 7대 종교가 됐다.
이슬람교가 87%로 주류이고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지배 영향으로 개신교, 천주교 등 기독교 계통인구도 10%에 달한다. 힌두교, 불교는 오랜 역사가 있지만 합해서 2% 정도이며 그중 불교는 250만명이다. 잠재적인 불교도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여섯 번째 국가종교로 공인된 유교를 자신의 신분증(KTP)에 명시한 국민이 1000만명이나 된다는데 대부분 중국계(화교)이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잠재적인 불교도라고 하니, 불교 인구도 7~800만명은 될 성싶다.
인도네시아에서 화교들의 불교는 남방불교 중심의 원주민들과 달리 도교와 유교가 혼합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인도, 중국, 미국에 이어 2억8000만명의 세계 4대 인구 대국이며 최대 이슬람 국가이지만 종교 간 조화를 국가이념으로 삼고 있는 나라이다.
이런 곳에서 불교는 어떤 모습일까 자못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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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불교 사찰 금덕원 |
수하르토 정권 32년 군부의 반중(反中), 반공(反共) 정책에 따라 한자로 된 간판까지 철저히 통제되면서 많은 중국계가 해외로 탈출했고 중국인들이 주로 믿었던 불교 사찰들도 폐쇄됐다. 중국 문화를 상징한다는 붉은 글씨도 금지됐고, 촛불까지도 경계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중국계가 불교도의 대부분이었기에 국민은 불교를 선뜻 받아들이길 꺼렸을 것이다.
인구 1200만의 수도 자카르타와 인구 300만의 도시 ‘반둥’ 방문길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라는 심정으로 잠시 틈을 봐서 불교사찰은 어떤 모습인지 찾아 보고 싶었다.
20여년 이상 인니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과 현지 가이드 등을 통해 불교 사원을 가보고 싶다 하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들도 사찰을 본 적이 없다는 표정이다. 난감했다.
아시아 외환위기로 국민 불만이 폭발하면서 수도 자카르타 등에서 발생한 1998년 5월 폭동으로 수하르토가 실각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중국 및 중국문화에 대해 정책은 우호적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폭동 과정에서 화교에 대한 집단 공격과 강간, 살인으로 1000여명 이상이 사망해 화교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기에 그 상흔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 보인다.
인도네시아 불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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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반둥의 이슬람 사원 |
사막의 종교라고 알려진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은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국가가 아니라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교가 전파되고 번성하게 된 것은 정복 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리적으로 해상무역의 중심지이다 보니 12~13세기경 무역 상인들에 의해 전파됐다.
당시 아라비아반도는 이슬람의 발상지였고 서아시아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인도는 이슬람 술탄 왕국들이 지배하면서 8세기부터 서아시아, 남부 유럽, 북아프리카는 이슬람교가 중심 종교로 번성하고 있었다. 이들 지역의 무슬림 무역 상인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전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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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반둥의 이슬람 사원 내부 |
이후 이슬람의 세습군주를 이르는 ‘술탄’ 명칭을 쓰는 왕국들이 나타나고 15~17세기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치르본 술탄국, 드막 술탄국 등 이슬람 왕국들이 번창하게 됐다. 이들이 정치와 경제의 중심 역할을 하고, 이슬람의 교리와 문화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면서 이슬람화가 진행됐다.
340년 동안 네덜란드 식민 통치하에서도 이슬람이 확산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슬람이 민족 정체성과 독립운동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도 종교를 퍼뜨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경제적 이윤추구에 치중해 강력한 통제를 하지 않았다.
독립을 앞두고 무슬림 정치단체들이 여럿 탄생했고 중심 정치세력이 됐지만 독립 후 정당 간 협상과 조율을 통해 극단적 이슬람주의나, 특정 종교의 정당이 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87%나 되지만 다른 종교와 큰 충돌 없이 공존하면서 인도네시아 중심 종교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역사를 보면 2~4세기경 인도에서 온 상인들에 의해 문화와 문자들이 들어오고 불교와 힌두교 등이 소개되면서 각 섬의 왕조들은 힌두교나 불교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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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두르 사원 [아제 여행사 제공] |
서기 650년에 건립된 스리위자야 왕국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기도 했으며, 마타람 왕국의 샤일렌드라 왕조가 번성하던 8세기경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된 보로부두르 사원을 건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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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두르 사원 [아제 여행사 제공] |
수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1시간 떨어진 족자카르타의 보로부두르 사원은 장대한 입체 만다라처럼, 동서남북으로 140m, 높이 31.5m의 거대한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다.
불상이 안치된 불감이 432개이고, 정상에 종탑 모양의 불탑이 73기나 있는 세계 최대의 불교사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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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두르 사원 [아제 여행사 제공] |
샤일렌드라 왕조는 11세기까지 벵골, 인도와 불교문화를 교류하고 영향력을 가졌는데 왕조가 무너지고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확산하면서 잊히고 화산폭발로 사원은 밀림 속에 묻혔다. 1814년 영국령 자바 총통에 의해 발견돼 1835년 현재의 모습을 드러냈고 유네스코 지원으로 1983년까지 복원작업을 통해 1991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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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두르 사원 [아제 여행사 제공] |
보로부두르 사원을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일정 중 틈을 봐서 자카르타와 반둥에 갈 수 있는 사찰을 찾게 됐다. 인도네시아 불교도는 수도 자카르타 일원과 수마트라 주 등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고 하며 소승불교에 바탕을 둔 원주민들도 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중계무역항인 싱가포르항 인근에 모여들던 중국인 후예들이 대부분이라 한다. 화교들의 불교는 대승불교와 도교, 유교(공자)가 혼합된 유불선교(儒佛仙敎)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자카르타의 사원 금덕원(金德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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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판타이 인다 카푹(PIK)1 지역의 차이나타운 모습 |
자카르타 북부 해안가 가까이 글로독(Glodok)이라는 지역에 차이나타운이 있고 그곳에 금덕원(金德院)이라는 오래된 불교사원이 있다고 소개를 받았다. 1650년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사원이며 자카르타의 두 개 사원 중 하나라고 하는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이 사원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시대 초기인 1650년 중국 남부 푸첸 사람들이 이주 노동자들의 고단한 생활의 안식처로 세웠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자카르타 지역 개발을 위해 많은 인력이 필요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주로 푸첸성 출신의 중국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과도하게 몰린 중국인들에 놀란 네덜란드 동인도 정부(VOC)는 1740년 10월 중국 이주민들 1만명 이상을 대량 학살하는 소위 앙케(Angke) 사건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금덕원도 불타게 된다.
네덜란드 VOC 정부는 1755년 관리 정책에 의해 복원을 허락해 생존한 중국 후예들이 잿더미 속에 남아 있었던 불상들로 재건했고 이후에도 정치적 격변이나 재앙 속에서 복원을 반복하게 됐다. 금덕원은 중국 이주민들의 역사로 이주민들이 함께하는 각종 축제의 중심지가 됐는데 2015년 또다시 촛불로 인한 화재로 지금 건물로 옮기고 현재 복원 중이다.
금덕원(金德院)은 중국식으로 진데위안(Jin De Yuan) 또는 김텍위에(Kim Tek Ie)라고 불린다. 1965년부터 2000년도까지 수하르토 정부에 의해 인도네시아 내 모든 외국 이름을 제거하는 민족주의적 운동으로 중국 전통, 종교, 관습, 성 등에 중국 명칭을 금지하면서 사찰 이름도 인도네시아식으로 ‘다르마 바끄띠’(Wihara Dharma Bhakti)로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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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k1 지역의 차이나타운 관우 장군 동상 |
인도네시아에는 화교들이 1000만명 이상 살고 있다지만 자카르타는 동남아에서 차이나타운이 유일하게 잘 형성되지 않은 도시라고 한다. 인니인들이 불교를 배척하고, 중국인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도 자카르타에 차이나타운이 두 곳 있다고 해서 가봤다.
공항 근방 신도시 판타이 인다 카푹(PIK)1 지역의 차이나타운은 최근 조성한 곳으로 100여m 길 양편에 자잘한 먹거리 및 기념품점을 조성한 중국의 거리 모습이다. 팔각의 중국풍 탑과 그 입구 관음보살상, 거리 중간에 ‘관우 장군’ 동상이 분위기를 살린 것이 전부다.
Pik1 지역 초입에 큰 현대식 불교 학교와 병원이 있는데 출입이 제한돼 있다는 설명에 그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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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k1 지역 초입의 불교 학교·병원 |
글로독의 차이나타운은 차량 통행이 쉽지 않은 구시가지 좁은 골목길에 있는, 오래된 빈민가의 모습이다. 택시로 골목을 헤집고 들어가니 여느 차이나타운 분위기와는 다른 길거리 시장과 그 중심에 금덕원 사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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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북부 글로독 지역 차이나타운의 불교 사찰 금덕원 |
스님은 원래 없고 사찰 관리는 지역 사회 영향력 있는 사람을 선택해 종교의식 및 모금 활동 전반을 관리하는 역할을 부여한다고 한다.
60대 초반 정도 보이는 남성 한 분이 책임자라고 소개하고 사찰을 후원한다는 대기업에서 온 사람과 관리하는 직원 등 몇 분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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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북부 글로독 지역 차이나타운의 불교 사찰 금덕원 입구 |
들어서자마자 초입의 퀴퀴한 향냄새, 그리고 화려한 붉은색과 금색의 장식물들, 여러 동물상이 전형적인 중국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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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덕원 2층 법당의 천수관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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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덕원 2층 법당의 관우 장군 |
2층 법당에 들어가니 부처와 관음보살, 사천왕상, 16나한, 포대화상 등 불교적 요소와 공자와 관우 장군, 그리고 도교에서 모시는 재물신, 하늘신, 건강신 등 여러 신들이 혼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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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덕원 2층 법당의 부처와 보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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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덕원 2층 법당의 십팔나한 |
혼란스럽지만 다행히 법당 중앙에 부처와 보살상 등이 있어 이곳이 불교사원임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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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불교 사찰 금덕원을 방문한 정용식 ㈜헤럴드 상무(맨 오른쪽)와 금덕원 관리 책임자(오른쪽 세번째) 모습 |
금덕원 책임자가 법당 안에 1650년에 제작되었다는 관음상과 그 외 부처상, 보살상뿐만 아니라 공자, 관우, 도교의 수많은 신들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 줬지만 반은 이해되고 반은 이해한 척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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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최고의 신인 도덕천존(왼쪽부터), 원시천존, 영보천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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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덕원 2층 법당의 천상성모 |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며 옆에서 기도도 해주고 입구 쪽의 물 위에 떠 있는 촛불에 기원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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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덕원 입구의 십이지상과 물 위에 떠 있는 촛불 |
호랑이도 신격화하고 불교와 도교, 유교가 자연스레 결합한 불교사원이 오랜 이국 생활에 지친 중국인들의 다양한 생각을 모으고 위로하는 곳으로서 친숙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불교도 토착화 과정에 토속신앙이 결합해 삼신각(삼성각)이 만들어진 것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다르마 바끄티’ 법당을 나오니 그 옆에 두 개의 또 다른 법당이 있는데 관리 운영자가 다르다고 하니 세 개의 사찰이 한곳에 모여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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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을 모신 법당 입구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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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을 모신 법당 |
한 곳은 지장보살을 모신 곳인데 입구에 화장장 비슷한 시설도 있고 죽은 이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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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의 신 혜택존왕을 모신 법당 |
또 다른 한 곳은 1855년에 건립된 도교(道敎)의 신 ‘혜택존왕(惠澤尊王)’을 모신 법당으로 입구에 ‘행복과 장수 강녕을 바란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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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신을 모신 법당 |
이곳 법당들에도 여러 신들이 모셔져 있고 어둡고, 붉은색 등으로 요란스럽게 치장돼 있다. 그리고 바로 옆 출입이 제한된 공간에 들어갔는데 불에 탔던 원래 금덕원 자리여서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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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탔던 원래 금덕원 자리를 복원 중이다. |
기둥으로 쓰기 위해 철보다 단단하다는 나무들이 수북이 쌓여 있고 석공들이 한 땀 한 땀 벽에 조각을 수놓는 데 여념이 없다.
이곳에서도 문화재는 원래대로 복원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4대 도시 반둥에서의 불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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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반둥 지역의 차 밭 |
300만명 가량 거주하는 인도네시아 4대 도시 반둥에도 몇 개의 불교사원은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물어보고 찾아보지만 그 누구도 이야기를 해주지 못한다. 1955년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해 인도네시아가 비동맹 국가의 맹주임을 선언했고 50주년을 맞이하는 2015년에 또다시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통해 그 이름을 세계에 알렸던 곳인데도 말이다.
한인들도 3000여명이 거주하고, 정부 관리하에 한글을 가르치는 세종학당도 두 곳이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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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반둥의 세종학당 |
700m 이상 고원지대에 있다 보니 연중 온화해 주거, 교육도시로서 최적이라고 해 인도네시아 최고의 대학들이 있고 도시는 대체로 깔끔하고 잘 정돈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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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반둥의 세종학당 |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는 행정, 군사 중심지로 기능해 그 당시 건설된 고풍스러운 도심 건물들이 남아있고 지금은 인도네시아 패션 수도로 불릴 정도로 의류 생산기지가 밀집된 곳이다. 한 곳의 사찰도 찾질 못하고 세종학당에 가서 히잡 쓴 학생들의 한글 열풍만 구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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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둥의 활화산 탕쿠반 프라후 산 |
반둥 시내에서 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약 2000m 되는 활화산 탕쿠반 프라후 산의 거대한 분화구 앞에서 유황 냄새를 맡으며 종교 국가에서 종교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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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둥의 활화산 탕쿠반 프라후 산 |
1300여 민족이 다양성 속에 통일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도네시아에서 종교의 자유와 종교 간의 평화를 추구하지만 20여 년 전에는 기독교와 이슬람 간 충돌로 5000여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미얀마에서 불교도와 이슬람교도 간 유혈 충돌로 수백 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뒤 인도네시아에서도 불교에 대한 반감이 커져 불교사원에서는 사제폭탄이 터져 사람이 다치기도 했다.
자카르타에 ‘해인사’ 등 한국의 사찰들도 있다고 하지만 정착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반둥 시내의 ‘아시아·아프리카 거리’엔 여러 종교에서 나오는 온갖 형태의 귀신 복장을 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사진 찍기를 유혹한다.
그것도 존중해줘야 할 그들의 직업이고 생활이다. 종교 국가의 300만 도시에서 불교사찰 한 곳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인도네시아에서 불교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 또한 존중해야 할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종교문화일 것이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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