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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만 반려인' 마음 잡기 넘어, 열악한 농장동물 사육 개선 약속한 대선 후보는? [H공약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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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만 반려인' 마음 잡기 넘어, 열악한 농장동물 사육 개선 약속한 대선 후보는? [H공약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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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x동물보호단체 라이프, 공약 분석
이재명·김문수·권영국 "진료비 경감" 공통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동물 공약 없어


이준석(왼쪽 세번째) 개혁신당 후보를 제외한 이재명(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동물 관련 공약을 내놨다. 연합뉴스·뉴시스·민주노동당 제공

이준석(왼쪽 세번째) 개혁신당 후보를 제외한 이재명(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동물 관련 공약을 내놨다. 연합뉴스·뉴시스·민주노동당 제공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조기 대선으로 치러지는 한계를 감안한다고 해도 대선 후보의 공약집 발간이 역대 가장 늦었다는 오명까지 얻었다. 해외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는 유권자들은 공약집을 보지도 못한 채 투표해야 했다.

공약집만 늦은 게 아니라 기후, 여성, 체육, 교육, 문화예술 등 각 분야에서 정책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동물도 예외가 아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를 제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동물 공약을 발표했지만, '이전 선거 공약에서 나아진 게 없다' '구체성이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픽= 송정근 기자

그래픽= 송정근 기자


심지어 13개 동물단체로 구성된 동물권대선대응연대가 각 당에 더 자세한 공약 사항을 알기 위해 정책 질의서(27일 기준)를 보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대선과 총선을 통틀어 답변을 아예 받지 못한 건 처음이다. 또 다른 동물단체로 구성된 루시의친구들도 각 당에 정책 제안서를 보냈지만 국민의힘을 제외하고는 다른 당으로부터 답변을 듣지 못한 상황이다. 대응연대 소속 단체인 동물자유연대 채일택 전략사업국장은 "동물 문제와 관련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각 당은 답변했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국일보와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의 선출직 정치인 동물 공약 검증 캠페인인 '애니페스토'(애니멀+매니페스토) 운영위원들과 각 후보가 발표한 공약을 비교 정리했다.

이재명·권영국 후보, 동물보호법 개정 약속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연합뉴스TV 캡처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연합뉴스TV 캡처


우선 이재명 후보는 유일하게 10대 공약에 동물 내용을 포함시켰고, 구체적인 내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발표했다. 김문수 후보는 반려동물 공약만 따로 발표한 데 이어 26일 공개한 공약집에도 반려동물 관련 두 가지를 담았다. 일하게 반려동물을 기르는 권영국 후보는 반려견 말이(14세)와 유튜브 영상을 통해 동물 공약을 공개했다.

이재명 후보와 권영국 후보 모두 현행 동물보호법의 개정을 약속했다. 이재명 후보는 분산된 동물 관련 업무를 통합하기 위해 '동물복지기본법'을 제정하고, '동물복지진흥원' 설립을 추진키로 했다. 권영국 후보는 반려동물 중심의 시혜적 관점이 담긴 동물복지법이 아닌, '동물권리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권영국 후보는 민법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 개선을 유일하게 약속했다. 현행법상 물건인 동물의 지위를 개선하면 동물학대의 낮은 처벌, 재산분할과 채무변제의 수단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에서 이용되는 동물의 권리를 높이는 기초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이는 2017년 제19대 대선 때부터 지난해 실시된 제22대 총선 때까지 단골 소재로 등장했지만 지금까지도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권영국 후보는 또 헌법 개정 시 헌법에 동물 보호의 의무를 명시하고, 독립된 국가기관인 '동물청'(가칭)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동물 복지의 시발점인 헌법에 동물 보호 의무 명시, 민법상 동물 지위 개선이 거대 양당 정책에 빠져 아쉽다"며 "여전히 동물 복지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반려동물 진료비 낮추는 데는 한목소리



이재명, 김문수, 권영국 후보 모두 반려동물 진료비 경감에 관한 공약을 내놨다. 뉴스1

이재명, 김문수, 권영국 후보 모두 반려동물 진료비 경감에 관한 공약을 내놨다. 뉴스1


1,500만 반려인 표심을 잡기 위한 각 후보의 공약 경쟁은 치열했다. 공통점은 진료비 부담을 낮춘다는 것이다. 이 역시 처음 나온 정책은 아니다. 이재명 후보표준수가제(주요 진료 항목에 정부나 전문기관이 권장 진료 비용을 제시하는 것) 도입, 표준 진료 절차 마련, 보험제도 활성화, 진료비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 면제를 통해 반려동물 양육비 부담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김문수 후보는 동물병원이 제공하는 모든 의료서비스 항목을 표준화하고, 비용 온라인 게시화를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권영국 후보는 동물등록제를 현실화하고 등록된 동물에 대한 공공적 동물의료체계(의료비 절감 및 무상의료화)를 도입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동물보건소를 설치해 의료비 절감을 추진하고 표준수가제와 진료비 고지 의무 내용이 담겼다. 다만 '무상의료화'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나와 있지 않다.


충남 청양군이 운영하는 보호소에서 개들이 뜬장(분변 처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면에서 떠 있는 철창)의 오물 속에 방치되어 있는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충남 청양군이 운영하는 보호소에서 개들이 뜬장(분변 처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면에서 떠 있는 철창)의 오물 속에 방치되어 있는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유기동물을 위해 이재명 후보는 불법 번식장과 유사 보호시설 규제, 보호소를 가장한 영리업체(신종펫숍) 운영과 홍보 제한, 지방자치단체 보호소 개선 등을 내걸었다. 김문수 후보는 유기동물 입양 가구에 교육과 진료비, 사료비, 펫보험 가입비를 지원하고,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을 운영해 유실·유기동물의 자연사·안락사를 최소화시킨다는 목표다. 또 길고양이 중성화(TNR) 사업 지원을 확대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권영국 후보도 길고양이 TNR 지원비용을 증액하고 동물보호센터를 ‘동물종합돌봄센터’로 바꾸기로 했다.

한편 김문수 후보는 '펫 파크'와 '펫 카페', '펫 위탁소' 확대를 비롯해 펫티켓 문화 확산 등을 내걸면서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했다.

김문수·권영국 후보, 개 식용 종식 지원



충북 청주시 개농장에서 구조를 앞둔 개들이 철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개들은 대부분 세 살 이하 어린 편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았다.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제공

충북 청주시 개농장에서 구조를 앞둔 개들이 철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개들은 대부분 세 살 이하 어린 편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았다.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제공


개 식용 종식과 관련해선 김문수 후보와 권영국 후보가 공약을 내걸었다.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은 2027년 2월부터 시행되며 지금은 단계적인 농장 폐쇄 절차에 돌입한 상황이다. 김문수 후보는 공약집을 통해 국민 공감대 확산과 관련업계 전·폐업 지원으로 개 식용 종식을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권영국 후보는 나아가 개 식용 종식법 유예기간 동안 '식용 목적으로 증식 또는 길러진 개'에 대한 학대에 대해 특별단속하고 처벌하겠다고 한 발 나간 정책을 내놨다.

이재명·권영국 후보, 농장·실험·전시동물 등의 복지도



돼지들이 좁은 감금틀인 스톨에서 길러지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돼지들이 좁은 감금틀인 스톨에서 길러지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이재명 후보와 권영국 후보는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는 농장·실험·전시동물 등을 위한 복지 정책도 발표했다. 이재명 후보는 동물복지 인증 농장 지원을 확대하고 동물원과 수족관은 생태적 습성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도록 제도를 개선키로 했다. '동물대체시험활성화법'을 제정해 실험동물의 희생을 줄이고, 봉사 동물의 복지 증진을 위한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승마장 환경을 개선하고, 퇴역 경주마 등 레저(유희) 동물의 복지 관리 체계도 개편키로 했다.

권영국 후보는 공장식 축산업을 단계적으로 감축·폐지하고 종사자들의 정의로운 전환 방안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동물원, 수족관 등 동물로 이익을 얻는 시설을 생크추어리(보호시설)나 동물 돌봄 센터로 전환하고 산천어 축제, 소싸움 등 동물에게 고통과 죽임을 안기는 동물축제를 폐지키로 했다. 실험 동물을 위해서는'동물실험 폐지 및 대체시험법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동물실험을 폐지한다는 급진적인 방안도 내놨다.

한 제약회사로부터 구조된 실험 비글들.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한 제약회사로부터 구조된 실험 비글들.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이상돈 애니페스토 운영위원장은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실종됐고, 동물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나온 정책들을 상당수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그쳐 동물권, 동물복지 이슈가 설 여지가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강조했다.

▦ 애니페스토 운영위원


고은경 한국일보 동물복지 전문기자, 구민영 법무법인 올바른 대표 변호사, 김경희 전 경남도의회 예결수석전문위원, 심인섭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대표, 차진구 부울경 매니페스토 본부장, 이상돈 전 국회의원∙중앙대 명예교수, 황철용 서울대 수의대 교수(가나다 순)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