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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습관병 중 하나인 대사이상 지방간질환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MASLD 환자 수는 2017년 28만여 명에서 2021년 40만 명을 넘기며 약 43% 증가했다. 특히 비만자의 60~80%가 지방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
“결혼 뒤 출산과 함께 몸무게가 널을 뛰더니, 최근에는 고도비만이 됐습니다. 키가 160㎝가 안 되는데, 80㎏을 넘었거든요. 최근 병원에 갔더니 간 건강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간경화가 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너무 무섭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초반인 주부 김미정(가명)씨는 얼마 전 병원에서 중증 대사이상 지방간질환 진단을 받았다. 1년 전 건강검진에 비해 상태가 크게 악화했다. 김씨는 20대부터 비만으로 인해 여러 건강 문제를 겪었다. 고혈압과 같은 생활습관병은 물론이고 체중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에도 시달리고 있다. 집 밖을 나가기 어려워 병원에도 제대로 안 다녔지만, 최근 심리상담실에서 강력하게 병원 검진을 권해서 병을 발견하게 됐다. 김씨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술을 마시지도 않는 데도 간이 이렇게 심각하게 망가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생활습관병 중 하나인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MASLD 환자 수는 2017년 28만여 명에서 2021년 40만 명을 넘기며 약 43% 증가했다. 특히 비만자의 60~80%가 지방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MASLD는 간세포의 5% 이상에 지방이 침착된 상태에서 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등 대사 위험 요인 중 하나 이상이 동반될 때 진단된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발병할 수 있으며, 오히려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 체중 증가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 2023년부터는 기존의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NAFLD)이라는 표현 대신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이라는 명칭이 국제적으로 채택됐다.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공식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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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과 위험인자. 건강한겨레 디자인팀 |
MASLD는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조기 진단이 어렵다. 일부 환자는 피로감이나 오른쪽 윗배의 불편감을 느낄 수 있으나, 대부분은 무증상으로 진행된다. 진단은 혈액검사로 간 효소 수치를 확인하고, 초음파, 전산화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영상검사로 간 내 지방 축적 정도를 평가한다.
MASLD는 단순히 간에 지방이 쌓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질환이 진행되면 지방간염, 간섬유화, 간경변, 간암 등 다양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초기에는 지방만 축적되지만, 생활습관 개선 없이 방치하면 염증이 생기고, 이후 간 조직이 딱딱해지며 손상된다. 물론 치료 시기를 놓치면 회복이 어렵다.
올해 초 대한간암학회는 MASLD와 간암 발병 위험 사이의 연관성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대사증후군 환자는 간암 발생 위험이 81% 증가하며, MASLD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간암 발생률이 10배 이상 높았다. 특히 MASLD에서 발생하는 간암은 일반적인 간암과 달리 간경변이 없어도 발생할 수 있으며,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생활습관병을 동반하는 비율도 높았다.
이동현 보라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간암학회 기획위원)는 “생활습관병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과 관리가 간암 예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최근에는 이미 간암으로 진단된 환자에게서도 생활습관병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어, 예후 개선을 위해서도 생활습관 관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MASLD는 간뿐 아니라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도 높인다. 게다가 대사이상 지방간질환 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은 간질환이 아니라 놀랍게도 심혈관질환이다. 지난 3월, 세브란스병원 김승업 교수, 연세대 이호규·이혁희 교수, 중앙대 이한아 교수 연구팀은 MASLD가 심혈관질환 위험을 57%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2009년 국가건강검진을 받은 약 730만 명을 12년간 추적 관찰해 MASLD 유무, 심혈관 위험인자 보유 개수, 그 변화에 따른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도를 분석했다.
연구에서 사용한 심혈관 위험인자는 다음과 같다. △과체중(체질량지수 23㎏/㎡ 이상) 또는 복부 비만(허리둘레 남성 90㎝ 이상, 여성 80㎝ 이상) △높은 혈압(130/85㎜Hg 이상 또는 치료 중) △높은 혈당 수치(100㎎/㎗ 이상 또는 치료 중) △낮은 HDL 콜레스테롤 수치(남성 40㎎/㎗ 미만, 여성 50㎎/㎗ 미만 또는 치료 중) △높은 중성지방 수치(150㎎/㎗ 이상 또는 치료 중) 5가지로, 지방간 환자가 이들 위험인자 중 1가지 이상을 보유하고 있을 때 MASLD로 분류했다.
그 결과, MASLD가 지속되거나 새로 발생한 경우 심혈관질환 위험이 각각 57%, 28% 증가했고, 반대로 MASLD가 개선된 경우에는 위험도가 16% 감소했다. 또한 MASLD 환자가 심혈관 위험인자 5개를 모두 보유하고 있을 경우, 1개 보유자보다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2배 높았고, 이를 지속 유지하면 최대 2.6배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업 교수는 “이번 연구는 MASLD 유무와 심혈관 위험인자의 변화가 심혈관질환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장기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위험인자 수를 정량적으로 지속 평가하는 것이 MASLD 환자 맞춤 관리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사이상과 관련이 있는 만큼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은 다른 생활습관병과도 얽히고설켜 있다. 2023년 대한당뇨병학회 지방간연구회 조사에 따르면 경도 지방간의 경우 당뇨병 발생 위험이 2.9배, 중증도 지방간은 6.2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지방간이 있다면 심근경색·뇌졸중 등 당뇨 합병증 위험도 껑충 뛴다. 당뇨병 환자가 중증도 지방간이 있으면 위험이 심근경색증 1.23배, 허혈성 뇌졸중은 1.25배, 심부전 1.27배, 간암 2.6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이 문제인 만큼 일단 대부분의 대사이상 지방간의 경우 체중을 줄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전문가들은 단기간의 체중 감량보다는 일주일에 최대 1㎏ 정도를 목표로 체중을 5∼7% 이상 감량하는 게 좋다고 권한다. 식이 조절과 함께 일주일에 2번 이상 최소 30분 이상 걷기, 조깅,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의 유산소 운동이 권장된다.
최근에는 국내 연구진이 MASLD 환자에게 간헐적 절식이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중앙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이한아 교수팀은 MASLD를 앓는 비당뇨 환자들을 대상으로 12주간 간헐적 절식과 표준식단을 비교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간헐적 절식 그룹은 일주일 중 5일은 일반식, 2일은 극단적 저열량식을 섭취하는 ‘5:2 식단’을 따랐다. 분석 결과, 간헐적 절식을 시도한 그룹에서 간 내 지방이 30% 이상 줄어든 환자 비율이 72.2%로, 표준식단 그룹(44.4%)보다 현저히 높았다. 체중 감량 효과도 간헐적 절식 그룹이 더 컸다.
이한아 교수는 “MASLD는 방치하면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으므로 체중 감량을 위한 식단 조절이 필수”라며 “일주일 중 이틀의 절식만으로도 간 건강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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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의 세계적 유병률. 이성훈 기자 lsh@hani.co.kr |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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