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대선 승부처 민심 르포① PK(부산·울산·경남)
27일 오후 울산 중구 전통시장에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모습. /사진=차현아 기자. |
"윤석열(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등을) 생각하면 이재명이고, 얼라(젊은이 또는 어린이)들 앞날 생각하면 김문수제. 동네에선 1번(이재명 후보) 뽑으라꼬 난린데 아직 모르겠다."
제21대 대선 본투표를 7일 남겨둔 지난 27일 오전 11시쯤. 울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밀양행 낮 12시10분 버스표를 손에 든 김진숙씨(63·여, 이하 가명)는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놨다. 김씨는 밀양에서 태어나 울산으로 시집온 후 39년 간 울산 남구에서 살아온 뼛속까지 PK(부산·울산·경남) 사람이다. 김씨는 "다들 1번 찍으라카는데 그래도 아직 보수가 안 낫겠나 싶기도 하다"면서도 "어차피 누가 돼도 똑같다 아이가"라고 했다.
PK는 총선과 대선 등 주요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대표적인 캐스팅보터 지역이다. 보수 성향이 강한 영남권에 속해있으면서도 TK(대구·경북)에 비해 보수세가 옅은 편이다. 올해 2월 기준 PK 지역 인구는 약 757만9000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은 약 14.8%다.
지난해 4.10 총선에서 PK 지역은 의석 40석 중 34석(85%)을 국민의힘에 몰아줬다. 직전 대선에서도 PK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졌던 19대 대선에서 부산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51.3%의 표를 안겨줬다.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 이후 치러진 지난 4.2 재보궐선거에선 경남 거제시장과 부산교육감으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PK 지역의 제20대 대통령 선거 결과/그래픽=이지혜 |
PK 지역의 제22대 총선 결과/그래픽=이지혜 |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방문한 27일 부산과 울산은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윤석열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 그럼에도 절대 민주당 후보는 찍을 수 없다는 전통적인 보수 성향 표심이 이리저리 뒤섞인 모습이었다. 어떤 후보를 지지하더라도 선거 때만 반짝 공약을 쏟아낼 뿐, 선거 후에는 지역 현안을 외면해 온 중앙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도 역력했다.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들의 표심은 세대 별로 다소 엇갈리는 모습이었다. 60대 이상인 지역 유권자들은 강한 보수 성향과 함께 이재명 민주당 후보과 민주당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반면 50대 이하 세대에선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 성향이 두드러졌다. 이들은 보수 정권에 대한 심판이 필요하다며 맹목적으로 보수 정당을 지지해온 부모 세대에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 상인인 이순옥씨(72·여)는 "나이든 사람들은 아직 보수를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이재명이는 범죄가 몇 개인지 모르겠고 가정에 불화도 있지 않나. 솔직히 꺼림직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부산 국제시장 상인인 김인철씨(80대·남성)도 "이재명은 김대중, 노무현처럼 북한에 퍼줘서 안 된다"고도 했다.
반면 울산 남구 삼산동에서 만난 직장인인 울산 남구 토박이 안승민씨(42·여)는 "원래도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고 이번 계엄 사태를 보면서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며 "우리 부모님은 이재명 후보한테 빨갱이라고 하는데 근거도, 논리도 없다"고 말했다. 부산 북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오은철씨(40대·남성)도 "이재명 후보 범죄 혐의는 아직 형량 등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그렇게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이 있겠나"라며 "주변 친구들도 계엄 때문에 이재명 (후보) 찍겠다고들 한다"고 했다.
울산 남구를 지역구로 둔 김상욱 의원이 국민의힘을 탈당해 민주당으로 적을 옮긴 것에 대해서도 세대에 따라 의견이 달랐다. 울산 동구에 거주하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상민(50대 초반·남)씨는 "(김 의원이) 소신있게 잘 선택한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같은 울산 동구 거주자이자 김문수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택시기사 홍재식씨(68·남)는 "보기 안 좋다. 배신자 아닌가"라며 "한동훈 (전) 대표가 그저 젊은 사람이라고 꽂아넣았던 것 아닌가. 다른 사람을 공천했어야 한다"며 혀를 찼다.
부산 시민들이 이재명·김문수 대선 후보 플래카드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사진=유재희 기자. |
세대를 막론하고 이번 대선을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PK 지역 경제를 살려줬으면 하는 바람은 같았다. 부산 북구에 거주하는 이영선(30대·여성)씨는 "저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면서도 "가게를 운영 중인데 계엄 때문에 경기가 너무 안 좋고 손님이 너무 줄었다. 경제를 회복시켜줄 후보가 당선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오후 방문한 울산 중구 전통시장의 젊음의거리 내 상가에는 '임대'라는 팻말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평일 오후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나마 문을 연 카페와 음식점들 역시 손님을 찾기 힘들었다. 울산 중구 전통시장에서 10년 째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다는 노기영(40대·남)씨는 "코로나 때문에 지역 상권이 완전 죽었는데 이후 회복이 안 되고 있다"며 "지역에선 국민의힘을 계속 밀어줬는데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지 않나. 교통도 너무 안 좋고 버스가 오지도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해양수산부와 민간 해운업체 HMM의 부산 이전 공약,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 지역 맞춤 공약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실제로 이행할거란 기대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부산 진구에 거주하는 김성삼씨(68·남)는 "(산업은행 등은) 예전에도 부산 온다 해놓고 안 오지 않나"라며 "기대했다가 안 되면 마음만 아프다"고 했다. 울산 남구에 사는 택시기사 박진철씨(51·남)도 "부·울·경 메가시티도 한다 해놓고 못했다"며 "대선 끝나면 지역 공약은 어차피 물거품"이라고 했다.
부산 자갈치시장 건물 앞에서 한 상인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사진=유재희 기자. |
울산=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부산=유재희 기자 ryu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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