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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다이브] 한미동맹과 핵무장은 양립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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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다이브] 한미동맹과 핵무장은 양립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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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부터), 민주노동당 권영국,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대통령 후보가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정치 분야 비브이(TV) 토론회에 참석해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부터), 민주노동당 권영국,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대통령 후보가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정치 분야 비브이(TV) 토론회에 참석해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한미동맹이 가장 중요한 축이고, 한미동맹의 범위 내에서 핵무장을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난 27일 대선 3차 후보자 티브이(TV) 토론)






어떤 맥락에서 나온 발언인가





지난 27일 정치·외교안보를 다룬 대선 3차 후보자 티브이(TV) 토론이 막말과 네거티브 공세로 얼룩진 가운데, 외교·안보의 엄중한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은 실종됐다. 그나마 ‘토론’이 이뤄진 것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이었다. 이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한미동맹과 핵무장이 양립할 수 있는지’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우리나라가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가”라는 이재명 후보의 간단한 질문에 김문수 후보는 “핵무장이라기보다는 핵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라며 “신중하게 한미동맹의 유지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고 모호하게 답했다. 이 후보가 “핵무장을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하지 않나”며 좀 더 명확한 답을 요구하자, 김 후보는 “한미동맹이 가장 중요한 축이고, 한미동맹의 범위 내에서 핵무장을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면서, “핵무장을 한다고 한미동맹이 깨져버린다면 핵무장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동맹과 핵 무장은 양립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핵무장과 한미동맹은 양립할 수 있을까. 미국이 한미동맹을 통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핵우산)는 한국의 핵무장 포기를 전제로 한 정책이라, 한미동맹과 핵무장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여러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한국핵정책학회 회장)는 지난 4월1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 요인이자,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자율성을 위한 도구로 본다. 한-미 동맹을 유지하며 핵무장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동맹국이자, 개방적 통상국가여서 외부의 제재에 취약한 한국은 “핵무장 하기에 ‘최악의 조건’”이라고도 지적했다.



전봉근 명예교수의 설명을 들어보면, 미국은 중국이 1964년에 핵실험에 성공한 뒤 더 이상의 핵 확산을 막기 위해 국제 비확산체제인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만들었다. 이 조약이 1970년 발효되며, 핵보유국을 미·소·영·프·중 5개국으로 막았다고 미국은 생각했다. 그런데 인도가 1974년 캐나다 등에서 들여온 평화적 목적의 핵 기술과 시설을 활용해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기술의 추가 확산을 철저하게 차단하기 시작했다. 이후에 농축·재처리 기술을 확보한 국가는 미국과 대립하며 제재를 감수한 파키스탄·북한·이란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의 동맹국·우호국 가운데 이 기술을 새로 획득한 국가는 지금까지 없다. 핵 비확산은 미국 외교안보의 핵심 정책이다. 한국이 북한처럼 국제사회의 제재를 당해 수출이 막히고 국제 외톨이가 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핵무장은 어려운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주한미군이 철수하거나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이 철회될 경우에는 핵 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는 안보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지만, 이 경우에도 ‘핵무장’을 소리 높여 외칠수록 실제는 핵무장이 멀어진다.



지난 6월5일 미국 비(B)-1비(B) 전략폭격기(앞쪽)가 한반도 상공에서 한미연합공중훈련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지난 6월5일 미국 비(B)-1비(B) 전략폭격기(앞쪽)가 한반도 상공에서 한미연합공중훈련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그런데도,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북한의 핵능력 증강에 불안해 하는 국내 여론에 편승해 ‘핵무장’을 외쳤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1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핵 무장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뒤 채택한 ‘워싱턴 선언’에서 “윤 대통령은 국제비확산체제의 초석인 핵확산금지조약(NPT)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 및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하였다”고 밝혀 이 가능성을 스스로 철회했다.



윤 전 대통령이 미국과 국제사회에 ‘핵 무장을 안 하겠다’는 공개 약속을 한 셈이지만 이후에도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핵무장 주장이 계속 나왔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에서 핵 무장과 핵 잠재력 확보를 주장하는 공개 세미나를 열었고, 핵 무장 1천만명 서명운동 제안까지 내놨다. 이런 행태는 한국의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하는 등 한국 안보와 과학기술 발전에 큰 피해를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여러 차례 핵무장을 강하게 주장했던 김 후보는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미동맹의 범위 내에서 핵무장을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는 두루뭉술한 입장을 밝혔다.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하려면 미국의 동의나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차선책으로 나온 게 핵 잠재력 확보다. 유사시 신속하게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농축·재처리 능력 등 기술적 능력과 자원을 평소에 갖추자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에서 김문수 후보는 먼저 핵 잠재력론을 꺼냈다. 김문수 후보는 이재명 후보와의 공방 도중 “핵 잠재력 확보의 경우 플루토늄 재처리, 우라늄 농축 등이 한미원자력협정에 의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제가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일본 수준의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듣던 이 후보는 “교정을 해 드리면 플루토늄을 재처리하는 것이 아니고,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지금 한국의 핵무장 (의도를) 의심해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다는 설도 있는데 핵 잠재력을 확보하겠다고 얘기를 하면 미국이 계속 의심을 하게 된다”며 “그런 식으로 핵무장, 핵 잠재력을 언급하며 왔다 갔다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현 가능한 얘기를 하자”고 비판했다.



한국이 핵 잠재력을 확보하려면 먼저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관련해 자유로운 재처리가 가능해야 하고 우라늄의 20% 미만 농축은 전면 허용하고 20% 이상 고농축도 가능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핵무장을 당장 못하니 차선책으로 핵 잠재력을 확보하겠다는 속내를 꺼리낌없이 드러낸다면 미국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요구에 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지난해 국회에서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로 열린 핵무장 관련 토론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임종득 의원실

지난해 국회에서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로 열린 핵무장 관련 토론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임종득 의원실


마지막으로 핵공유와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문답도 오갔다. 이 후보는 “김 후보는 미국과의 핵 공유, 또 전술핵 재배치를 공약하지 않았나. 미국은 핵 공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인데 그런 공약이 실현 가능한가”라고 질문했다. 김 후보는 “실현 가능하다. 나토식도 있고, 한국식의 독특한 핵 공유 방식도 (미국과) 얼마든 협의할 수 있다”며 “미국과 충분한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핵 잠수함 등도 잘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가 언급한 나토식 핵 공유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이 핵무기 배치 시설을 제공하고 핵무기 투발 임무 일부를 담당하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나토 5개 회원국(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터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운영하고 있다. 미국과 나토는 ‘핵 기획그룹’(NPG)을 통해 핵에 관련한 정례협의를 하고, 핵무기 안전 및 보안, 핵무기 통제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나토 회원국들이 핵무기를 자국 전투기 등에 실어 투발하더라도, 핵무기를 사용할지 말지에 대한 최종 결정은 모두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나토 핵공유는 미국과 나토가 핵무기 소유나 사용권을 공유하는게 아니라, 핵무기 사용에 따른 정치적 부담과 작전 위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김문수 후보가 언급한 핵 잠수함(원자력추진잠수함)은 한반도 상황이 더욱 엄중해지면 차기 정부에서도 과제로 부상할 가능성은 있다. 원자력추진잠수함은 핵 무기를 싣고 다니는 잠수함이 아니라 디젤 엔진이 아닌 원자력을 추진동력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필요성을 공개 거론하며 다시 동력을 얻었다. 윤석열 정부가 관련 예산을 삭감하면서 사업이 멈췄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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