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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크림'과 '슈크림빵' [달곰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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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크림'과 '슈크림빵' [달곰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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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슈크림빵. SPC 제공

슈크림빵. SPC 제공


돌이켜보면 나는 아버지께서 퇴근길에 가끔 사 오셨던 '슈크림빵'에서 '슈크림'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던 것 같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새하얀 크림이 들어 있는 ‘크림빵’보다 노란빛이 감도는 크림이 들어 있는 슈크림빵을 더 좋아했다. 그로부터 40년이 다 되도록 나는 슈크림빵이 ‘슈크림이 들어간 빵’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어에서는 앞말이 뒷말의 의미를 꾸며 주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빵'의 앞말은 빵 안의 내용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슈크림은 그 질감과 맛이 크림과 비슷한데 색이 다를 뿐이니, 슈크림의 '슈'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슈크림은 크림의 일종이고 슈크림빵은 슈크림이 들어간 빵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최근 외래어를 연구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저런 외래어를 살펴보던 중에, 슈크림이 크림의 일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슈'는 '크림이나 과일로 그 속을 채우는 작은 원형 케이크'를 뜻하는 프랑스어의 'chou'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한국어와는 달리, 프랑스어에서는 뒷말이 앞말의 의미를 꾸며 주는 경우가 많다. 알프스산맥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은 '산'을 뜻하는 프랑스어 'Mont'이 '하얀'을 뜻하는 프랑스어 'Blanc'의 꾸밈을 받는 말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슈크림'에서 꾸며 주는 말은 '크림'이고 꾸밈을 받는 말은 '슈'가 되므로 슈크림은 '크림이 들어간 슈' 정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슈크림'과 ‘몽블랑’은 똑같은 구조를 보이는 단어인 것이다.

나처럼 슈크림을 크림의 일종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예전에도 있었을까 궁금해서 신문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다. 1930년에는 슈크림을 빵의 일종으로 사용한 기사가 보이고 1977년 기사에는 '슈크림빵'이라는 표현이 관찰된다. 더 나아가 2025년에는 '슈크림이 들어간 슈'를 뜻하는 '슈크림 슈'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슈크림을 빵이 아니라 크림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그 결과로 '슈크림이 들어간 슈'를 뜻하는 슈크림 슈라는 말까지 나타난 것을 보면, 새 단어가 만들어지는 양상이 얼마나 역동적인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슈크림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고래상어가 상어인지 고래인지를 궁금해하던 아들내미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언젠가의 아버지처럼 내일은 아들내미에게 줄 '슈크림빵'을 사서 귀가해야겠다.

오규환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