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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세력에 나라를 다시 맡길 순 없다 [박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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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세력에 나라를 다시 맡길 순 없다 [박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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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8일 오후 경남 양산시 이마트 양산점 앞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8일 오후 경남 양산시 이마트 양산점 앞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현 | 논설위원



보수의 자멸 속에 치러지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애초 싱겁게 승패가 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막판으로 갈수록 격차가 좁혀지는 양상이다. 대선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 즉 시대정신을 놓고 겨루는 한판 승부다. 선거 때마다 깨닫는 것이지만, 선거 결과에는 국민들의 집단지성이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시대정신이 절묘하게 반영된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누가 뭐라 해도 민주주의 회복이다. 온갖 요설로 선거전이 혼탁해졌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저질러놓은 내란과 민주주의 퇴행을 어떻게 정상화시킬 것인가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대진표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을 비호하는 극우 인사를 후보로 내세운 탓이다. 그동안 대선은 1980년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넘어, 한반도 평화, 균형발전,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등의 시대적 담론 중심으로 진화해왔는데,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대선마저도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후퇴시켰다.



김문수 후보는 청년 시절 민주화운동 경력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금의 그는 극우 성향 정치인임에 틀림없다. 몇가지 사례만 봐도 그렇다. 김 후보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을 계기로 ‘아스팔트 우파’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전형적인 극우파 전광훈 목사를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로 치켜세운다. 2020년 1월 전 목사와 함께 극우 정당인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다. 그는 당시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광화문 애국 세력과 1600여개 자유우파 시민단체가 하나로 결집한다”며 “문재인 주사파 정권 퇴진운동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3월 연설에서는 전 목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언급하며 “그 자리에 문재인과 저 주사파들을 모두 체포해서 잡아넣고…”라고 말했다. 195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즘적 광기를 연상케 한다. 그는 친일·극우 세력인 뉴라이트 계열로도 분류된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항일 무장독립투쟁의 최고 지도자로 꼽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에 대해서도 소련 공산당 가입을 이유로 반대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는 “일제 치하에 국적이 일본인 것은 상식적인 것”이라고 말해 일본의 불법 지배를 용인하는 듯한 역사관을 드러냈다.



김 후보는 유세와 티브이(TV)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를 범죄자 취급하며 종북몰이를 했다. 대선 유력 후보를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경쟁자를 라이벌이 아닌 적으로 여기고 있음을 드러낸다. 정치 경쟁자를 적으로 대할 때 정치는 ‘전쟁’으로 전락하고 견제와 균형을 위해 고안된 민주주의 제도와 기관은 ‘무기’로 바뀐다. 윤석열이 임기 내내 이 후보를 범죄자 취급하다 결국 종북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며 비상계엄까지 선포한 것도 이렇게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한 탓이 크다. 무엇보다도 김 후보는 윤석열과의 절연을 명확하게 약속하지 않고 있다. 되레 윤석열의 최측근 윤상현 의원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까지 앉혔다. 이런 태도는 그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걸 방증한다.



극우 인사의 정치 전면 등장은 민주주의에 불길한 신호다. 1930년대 유럽과 20세기 후반 남미에서 민주주의에서 독재로 퇴보한 나라의 공통점은 극우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주요 정당이 길을 터줬다는 점이다. 낸시 버메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유럽과 남미 17개 민주주의 붕괴 국가들을 연구한 결과 주요 정당이 극단주의 세력과 ‘거리두기’를 하지 못한 점을 결정적 원인으로 꼽았다. 독일 아돌프 히틀러와 이탈리아 베니토 무솔리니, 그리고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가 주류 정당의 지원을 받아 최고 권력자에 오른 대표 사례다. 이들 나라에서는 권력에 눈이 먼 주류 정당 정치인들이 당장의 선거 승리를 위해 극우 세력과 손을 잡았다. 자신들이 극우 인사를 제어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영입했다가 비극적 결말을 맞은 것도 그런 경우다. 윤석열은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으로 포장됐으나 실상은 반민주적인 극우 포퓰리스트였다. 만약 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윤석열의 내란 행위에 대한 단죄가 흐지부지되고 민주주의는 퇴행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극우 세력이 득세한 직접적 계기는 윤석열이 제공했지만 근저에는 극심한 정치 양극화 현상이 있다. 이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정치의 정상화는 요원하다. 경쟁자의 존재를 상호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이라는 고질적 병폐를 풀기 위한 법과 제도 개혁에도 힘을 모아야 한다.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놔서는 또다시 실기하거나 개악될 개연성이 있는 만큼 주권자인 시민들이 감시하고 최대한 압박을 해야 한다.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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