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모임에서 식당에서 즐기는 술로
숙취 없이 편하게 즐기는 ‘컴포트 드링크’ 인식...파티 때 즐겨
‘한국 술’이지만 현지 문화에 정착...K컬처 즐기는 젊은층 수요 급증
하이트진로, 참이슬 등 매년 15% ‘폭풍 성장’...힙한 소주로 포지셔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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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인기 한식 프랜차이즈 삼겹살라맛(Samgyupsalamat)에서 현지 소비자들이 소주를 마시고 있다. |
“부드럽고 깔끔한 맛, 소주 주세요!”
18일부터 21일까지 머무른 필리핀, 이곳에서 만난 ‘초록병’은 기자에겐 반갑고, 현지인들에겐 익숙한 술이었다. 편의점, 마트, 쇼핑몰, 한식당, 중식당 등 “소주 주세요”는 어렵지 않게 통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 손에 들려 있는 ‘진로’는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장면이 평범하게 느껴졌다. 찾으려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술이었기 때문이다. 현지 소비자들에게 소주는 ‘깔끔한(Clear)’ 술로 인식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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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도매형 할인점 퓨어골드(Puregold) 파라냐케점에서 현지 소비자가 소주를 구매하고 있다. |
필리핀의 대표 도매형 할인점 ‘퓨어골드(Puregold)’ 파라냐케점 주류 판매대 한복판에는 K-소주가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퓨어골드는 필리핀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슈퍼마켓이다. 전국적인 유통 인프라를 바탕으로 가성비(가격대비성능) 중심 소비자층에게 가장 익숙한 유통 채널 중 하나다.
마리 필 레예스(Marie Phil Reyes) 퓨어골드 하이트진로 필리핀법인 상품기획자(MD)는 “필리핀 전체 인구에서 소주라는 주종을 인식하는 소비자는 50% 이상으로 예상된다”며 “퓨어골드에서 주로 20대 초중반 젊은 층이 K-소주를 구매한다”며 “평일 기준 하루 20~24병 정도 팔린다”고 말했다.
퓨어골드에서는 과일소주가 약 60%, 일반소주가 약 40% 비율로 판매되는데, 젊은 여성 소비자들은 과일소주를 선호하는 편이다. 처음엔 과일소주로 K-소주를 접하다가, 차츰 일반소주까지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퓨어골드 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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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도매형 할인점 퓨어골드(Puregold) 파라냐케점에서 현지 소비자가 참이슬 후레쉬 등을 구매하고 있다. |
마침 소주를 구매하는 현지인을 만났다. ‘참이슬 후레쉬’ 등 K-소주 4병을 장바구니에 담은 안드레아(Andrea, 21세)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소주를 사 마신다”며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에서 한국 사람들이 ‘초록병’을 마시는 걸 보고 접하게 됐는데, 독한 필리핀 술과 다르게 숙취도 심하지 않고 맛이 부드럽고 깔끔해서 좋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코스트코’로 불리는 ‘S&R 멤버십 쇼핑(S&R Membership Shopping)’에서도 소주는 주류코너에서 상당한 매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S&R은 유료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으로 대용량 상품 구성과 도매가 수준의 가격 혜택을 통해 프리미엄 소비층의 주요 쇼핑처다. 대표 소주인 진로는 S&R 전 지점에 입점해 있고, 하이트진로는 시음행사 등을 진행하며 K-소주 판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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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 S&R 멤버십 쇼핑(S&R Membership Shopping)에서 현지 소비자가 참이슬 오리지널을 시음하고 있다. |
바텐더로 일하며 소주를 처음 알게 됐다는 얼윈(Erwin, 43세)은 가장 좋아하는 소주로 ‘참이슬 오리지널’을 꼽았다. 그는 “다른 술에 비해 깔끔하고 다양한 음료·음식과 잘 어울린다”며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할 때 참이슬을 자주 마신다”고 말했다. 이어 “필리핀인들은 저렴한 빨리 취할 수 있는 독한 술을 좋아한다. 소주는 도수가 적정하고 부드러운 맛에 가격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니코(Nico) S&R 바이어는 “S&R은 주류 부문에 특화된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으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높은 필리핀 시장 특성에 따라 소주에 대한 수요가 확실해 진로 등을 취급하게 됐다”며 “소주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컴포트 드링크(comfort drink)’로서의 가치가 있고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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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 S&R 멤버십 쇼핑(S&R Membership Shopping)에서 현지 소비자가 소주를 구매하고 있다. |
필리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한식 프랜차이즈 ‘삼겹살라맛(Samgyupsalamat)’은 K-소주를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식당이다. 문을 열자마자 유리 진열대에 ‘참이슬 후레쉬’, ‘자몽에이슬’ 등이 고객을 반겼다. 삼겹살을 구워 먹는 필리핀 현지인들이 가득한 테이블 사이 초록병들의 존재감도 빛났다. 이곳에서 만난 골디(Goldi, 21세)는 “삼겹살과 소주 조합이 좋다”며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친구들과 파티할 때 소주를 즐겨 마신다. 최근에도 5명이 모여 소주 8~9병을 마셨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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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인기 한식 프랜차이즈 삼겹살라맛(Samgyupsalamat)에서 '진로라이브'가 진행되고 있다. |
소주가 필리핀의 전통적인 건배 문화 ‘타가이(Tagay)’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날은 삼겹살라맛에서 하이트진로의 ‘진로라이브(JinroLive)’가 진행 중이었다. 진로라이브는 취중 라이브 콘셉트로, 필리핀 MZ세대가 즐기는 비디오케(Videoke·노래방) 문화를 접목한 방송이다. 현지 힙합 유닛 GY가 참석해 건배를 시작으로 술자리 게임, 애창곡 열창 등 한국식과 현지식 음주 문화가 조화를 이루며 진행됐다. GY의 멤버 갭(Gab)은 “주량은 소주 3병”이라며 “참이슬 후레쉬로 시작해 과일소주로 마무리하는 게 내 스타일”이라며 “타가이”를 외쳤다.
삼겹살라맛 같은 한식당에 주로 진로를 유통하는 K&L도 최근 소주의 위상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고 한다. K&L은 하이트진로의 법인 거래처로 주로 한인 식당, 현지 유통업체, 편의점 등에 진로를 공급한다. 강정희 K&L 대표는 “필리핀 주류 성장률이 약 6.8%인데, 진로 소주는 2018년부터 꾸준히 연간 15% 정도 고성장 중”이라며 “2022년까지는 과일소주와 일반소주 점유율이 비슷했는데, 지금은 일반소주 비중이 70~75%까지 커졌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최근 블랙핑크 로제가 유튜브에서 참이슬 오리지널로 ‘소맥’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해 올해 참이슬 오리지널 판매가 급상승하고 있다”며 “한국 식당에서 서비스로 제공되는 반찬과 함께 소주를 곁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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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유통업체 K&L의 창고에서 진로 제품이 차에 실리고 있다. |
K-소주 대중화에 앞장선 하이트진로는 필리핀의 일상에 스며드는 데 성공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필리핀은 유머와 재치 있는 콘텐츠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국가”라며 “진로는 ‘합한 소주’로 포지셔닝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투데이/마닐라=연희진 기자 (toyo@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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