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지난해 12월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12·3 내란사태 당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주요 인사 체포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당시 방첩사 수사 책임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체포 지시를 그에게서 받았다고 밝혔다.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해군 준장·불구속 기소)은 27일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계엄 당일 여 전 사령관이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재명 대표, 한동훈 대표 등 주요 인사 14명 명단을 불러주며 이들을 잡아 수도방위사령부 비(B)-1 벙커로 이송하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김 전 수사단장은 군검찰 증인신문에서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 장관님으로부터 명단을 받았다. 받아적으라’며 한명 한명 불러줬다. 그 인원들을 잡아 구금시설, 수도방위사령부 비-1 벙커로 이송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여 전 사령관이 불러준 명단은 우원식(국회의장)·이재명(당시 민주당 대표)·한동훈(당시 국민의힘 대표)·조국(당시 조국혁신당 대표)·박찬대(민주당 원내대표)·정청래(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학영(국회 부의장)·김민석(민주당 수석최고위원)·조해주(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양경수(민주노총 위원장)·김어준(방송인)·김민웅(촛불행동 대표)·김명수(전 대법원장)·양정철(전 민주연구원장) 등 14명이다.
그는 14명의 혐의가 무엇인지 물어보니 “혐의는 모른다”고 했다”며 “혐의점은 나중에 구체적으로 내려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명단 자체가 정치인들이다 보니 처음 불러줬을 때부터 이상한 느낌은 있었다”고 말했다.
여 전 사령관은 주요 정치인 체포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는 앞서 군사재판에서 “김용현 전 장관으로부터 위치 확인 지시를 받았는데, 명단에 오른 사람의 주소, 핸드폰 번호도 알지 못했다.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을 미리 체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치 확인을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체포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체포 요청을 한 적이 없고, 단지 위치 확인을 요청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수사단장은 여 전 사령관의 이 주장에 대해선 “계엄 선포시 합수단의 임무는 계엄 사범을 체포하는 것”이라며 “사령관은 ‘잡아서 이송시키라’고 했고 ‘체포해서 이송시키라’는 의미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방첩사는 민간인 체포가 제한돼 경찰, 군사경찰과 함께 합수단을 꾸려서 해야 할 일로 생각했다고도 했다.
그는 또 여 전 사령관이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 인원 파견이 늦어지자 당시 방첩사 수사관만이라도 빨리 출동하라고 재촉했다고 밝혔다. 또 방첩사 수사관들의 우선 출동 지시를 하면서 ‘직접 체포하거나 접촉하거나 해선 안 된다’는 지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판에선 여 전 사령관이 계엄 해제 이후 ‘체포 명단’ 존재 자체를 은폐하려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김 전 수사단장은 ‘여 전 사령관이 명단은 아예 없었던 것으로 하라고 지시했느냐’는 군검찰 질문에 “그렇다. 그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 전 사령관이 내게 ‘명단이 있냐’고 물었고, ‘없앨 수 없냐’고 했다. ‘출동 당시 수사관들에게 명단을 줬기 때문에 다 알고 있다, 숨길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수사단장은 평소 임무 지시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해왔던 여 전 사령관이 계엄 당시엔 말을 아끼며 막연하게 지시를 내렸다며 “구체적으로 지시할수록 잘못에 엮여버릴 수 있으니 핵심적인 지시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사를 받다 보니 여 전 사령관은 (계엄선포를) 미리 알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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