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김문수 국힘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
다음 달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질 예정입니다. 올해를 포함해 지금까지 총 9번의 대선이 있었지만, 3년 만에 치러지는 대선은 이번이 처음이죠.
제21대 대선을 포함해 대선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골 같은 이슈가 있습니다. 바로 후보 '단일화' 이슈인데요.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선거판에서 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어요.
단일화는 대체로 지지율 2위와 3위 후보가 1위 후보를 상대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여겨집니다. 올해 대선 역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역전을 노리는 2위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지지율 3위인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에게 단일화를 회유·압박 중인데요. 이처럼 잊지도 않고 또 찾아온 단일화 타령, 진짜 되기만 하면 다 해결되는 만능 치트키인 걸까요?
![]() |
1996년 5월 국회 귀빈실당에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회담을 하고 있다. |
대한민국 대선에서 단일화의 신화가 태동한 것은 1987년 13대 대선입니다. 제6공화국 출범 후 처음 열린 대선을 앞두고 야권에서는 김영삼·김대중, 두 유력후보 중 누가 단일후보로 나가느냐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죠. 결과는 아시다시피 협상 결렬이었고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이후 1997년 김대중은 4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으나 이 역시 쉽지 않은 싸움이었죠. 김영삼 정권에서 터진 IMF 여파에도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어요. 이에 김대중은 15대 대선을 한 달 반 정도 남은 시점에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자유민주연합과 단일화에 성공, 이른바 'DJP연합'을 구축해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의 격차는 1.53%포인트(p)에 불과했고, 이러한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 승리엔 자유민주연합의 텃밭인 충청도에서의 승리가 한몫했어요. 1987년 노태우의 승리, 1997년 김대중의 승리는 국민은 물론 정치인들에게도 “단일화는 일발 역전의 카드”라는 인식을 심어줬는데요. 이후 '단일화 신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됐죠.
![]() |
2002년 11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방송회관에서 열린 후보단일화 토론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
2002년 16대 대선이 다가오며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비롯해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의 3파전 양상이 펼쳐졌습니다. 이번에야말로 1강인 이 후보가 지난 패배를 딛고 승리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어요.
이에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에 적극 나서 후보 등록 하루 전날 극적인 단일화에 성공했죠. 이 영향으로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앞서나가기 시작했지만, 투표 하루 전날 정몽준 후보가 전격적인 단일화 철회를 발표하며 이회창 후보가 이기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왔어요.
하지만 단일화 철회 여파에도 투표 결과 노무현 후보가 2.33%p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죠. 단일화 철회 후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의 집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되며 지지자들과 시민들의 안쓰러움을 자극해 표 이탈을 최소화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비록 하루 전날 단일화가 깨졌지만 2등이 예상됐던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을 끌어올린 것은 단일화였죠. 진보 측의 2연속 대선 승리에 단일화가 큰 기여를 하며 거대 양당 모두에게 단일화 신화는 더욱 크게 자리잡게 됩니다.
![]() |
2012년 11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를 한 뒤 밝은 표정으로 다오고 있다. |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인 민주통합당 측 분위기는 좋지 않았어요. 같은 해 4월에 치러진 19대 총선이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론 분위기 속에 치러졌음에도 여당인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를 진두지휘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대세론이 일며 약 8개월 뒤 치러지는 대선의 승리 유력 후보가 됐죠.
이에 맞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상황 타개를 위해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에 나서게 됩니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정치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올 거란 기대를 받았고, 무소속임에도 문재인 후보보다 지지율도 높았죠. 하지만 양 측의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대선을 약 한 달 앞둔 시기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 지지를 호소하며 불출마하는 형태로 느슨한 단일화가 진행됐어요. 이후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크게 따라붙었지만, 결과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었습니다.
단일화는 필승이라는 신화가 깨진 것이지만 어쨌든 단일화 이후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급등한 점, 기존 대비 느슨한 방식의 단일화였다는 점, 단일화 과정이 길어지며 진통이 너무 커 지지층을 다 흡수하기 힘들었다는 점 등으로 그 부분이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안철수 후보는 2022년 대선에서 선거를 며칠 앞두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하며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근소한 차이의 승리를 거두게 하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2번의 선거에서 단일화로 물먹었던 보수당이 같은 방식으로 승리를 쟁취한 거죠.
다만 이 단일화가 실제 효과가 있었는지는 평가가 갈려요. 윤석열 후보가 0.73%p 차이로 승리를 거머쥐며 안철수 후보가 가져온 표들이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로 사퇴 이후 이재명 후보 쪽으로도 표가 많이 이동해 딱히 큰 격차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죠.
![]() |
2022년 3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기자회견을 마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대선 시기에 진행됐던 단일화의 공통점은 최종적으로 승리하든 패배하든 지지율 자체는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승리사례와 패배사례에는 한 가지 차이가 존재해요. 바로 ‘확장성’입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김종필 후보와의 단일화로 이전까지 표를 많이 주지 않았던 충청도로부터 표를 얻어오는 데 성공했죠.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주로 진보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영향으로 정치 무관심층과 중도층, 일부 보수층의 지지를 받던 정몽준 후보의 표를 대부분 끌어오는 데 성공했어요. 두 사례 모두 단일화에 나선 후보들의 지지층이 크게 겹치지 않았기에 확장성 면에서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었죠.
반면 2012년의 문재인 후보는 진보 측 후보들과의 단일화만을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보수 측 인사로 분류되는 안철수 후보 역시 이 시기엔 무당층의 지지도 있었지만, 진보 측에 친화적인 행보로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는 미미했어요. 당시 대선은 제3의 후보가 없는 보수 vs 진보 진영의 1대1 한판 맞대결 양상으로 흘렀고, 이는 단일화로 인한 확장성이 제한적인 원인이 됐습니다.
2022년의 안철수 후보 지지세력은 거대양당에 실망한 사람들이 주축이었던 만큼 윤석열 후보와 지지층이 크게 겹치진 않았어요. 하지만 당시 안철수 후보는 신선함은 사라지고 단일화 장사로 선거비 보전에만 신경 쓴다는 이미지가 강해졌고, 실제 또다시 단일화가 이루어지자 이에 실망한 지지자들이 상당수 이탈했죠. 단일화와 동시에 확장성이 상실된 거예요.
![]() |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 내부로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 |
올해 대선에서도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단일화 이슈가 크게 주목받으며 단일화 여부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김문수 후보 측은 이준석 후보 측이 단일화 조건을 제시해주면 응하겠다고 하는 등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선 상태지만, 이준석 후보는 “단일화는 없다. 유일한 단일화 방법은 김문수 후보의 사퇴뿐”이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죠. 이준석 후보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비상계엄 책임이 있는 세력으로의 후보 단일화는 없다. 끝까지 싸워 이기겠다"고 재차 강조했는데요.
이준석 후보의 지지층은 2030을 중심으로 거대양당에 실망한 사람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중도·무당층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원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12·3 비상계엄에 책임이 있는 세력에 표를 주는 것은 더욱 원하지 않아요. 이준석 후보는 그 대안으로 선택된 셈입니다. 어차피 양당에 투표할 것이 아니라면 투표 포기 대신 사표가 낫다는 심리도 감지돼요.
반면 김문수 후보는 60대 이상이 중심이 된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죠. 이들은 “다 필요 없고 이재명만 아니면 돼”라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계엄 사태에 연관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추대하려는 시도도 있었죠.
단일화가 끝내 결렬될지, 아니면 극적으로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과거의 사례들을 돌아보면 단일화를 하더라도 지지자가 떨어져 나가지 않고, 확장성을 유지하는 것이 승리의 필승공식입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느 후보가 그에 걸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이투데이/김해욱 기자 (haewookk@etoday.co.kr)]
▶프리미엄 경제신문 이투데이 ▶비즈엔터
이투데이(www.etoday.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