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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5일·노란봉투법 첨예한 ‘노동 이슈’…“문제는 생산성”

헤럴드경제 김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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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5일·노란봉투법 첨예한 ‘노동 이슈’…“문제는 생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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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주 4.5일제로 ‘노동생산성’ ↑…“생산량 담보 못해”
金, 근로시간 이미 OECD 평균 웃도는데 ‘52시간제 완화’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6·3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공약 중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분야가 바로 노동 문제다.

이재명 후보는 임금 감소 없는 주 4.5일제의 단계적 추진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도입을 핵심 노동 공약으로 발표했다. 반면 김문수 후보는 주 52시간제 예외 확대, 유연근무제 활성화와 함께 노란봉투법 입법을 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재명 후보는 노동자 권익 보호에, 김문수 후보는 기업 규제 완화에 우선 순위를 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두 후보가 내놓은 공약의 대부분이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한 탓에 정치 구도에 따른 이념적 대립만 심화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현재의 저성장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생산성 향상을 고려한 개선책은 전무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심지어 세대 갈등과 노동 시장의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李 “주 4.5일제 도입” vs 金 “주 52시간제 완화”
제21대 대통령 선출을 위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사진 왼쪽부터)가 대전 으능정이거리 스카이로드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대구 서문시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

제21대 대통령 선출을 위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사진 왼쪽부터)가 대전 으능정이거리 스카이로드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대구 서문시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



2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주 4.5일 도입·확산 등을 통해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노동시간 감축’을 핵심 노동공약으로 발표했다.

주 40시간인 현행 법정 근로 시간을 주 36시간(주 4.5일제)으로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주 32시간(주 4일제)을 시행해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는 목표다.


공약의 배경은 상대적으로 긴 한국의 근로시간이다. 2023년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1872시간으로 OECD 평균 1742시간보다 130시간 길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4.4달러로 미국 77.9달러, 독일 68.1달러, 영국 60.1달러 등 선진국보다 훨씬 낮다. 시간당 노동생산성 1인당 국내총생산(GDP)를 근로시간으로 나눈 값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면 노동생산성은 올라간다. 다만 생산량이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기업은 노동자를 줄이거나 임금을 삭감하려 할 것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입장은 외면하고 노동계 요구만 반영한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주 4.5일제 도입이 가뜩이나 불평등이 심한 노동환경의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미 주 4.5일제를 도입한 대기업들은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유연근무제를 활용 중인데 해당 제도 도입률은 5%에도 못 미친다.

반면 김문수 후보는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은 그대로 두되 근로시간 유연화를 통해 4.5일제를 이룬다는 구상이다. 월~목요일은 기존보다 1시간씩 늘어난 하루 9시간씩 일하고 금요일은 4시간만 근무하는 식이다.


아울러 김 후보는 ‘노사 합의를 기반으로 주 52시간제 근로시간 개선’을 발표했다.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는 주 52시간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유연근무 요건을 완화하는 동시에 장시간 근로가 가능토록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경영계 요구를 반영해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특별 연장 근로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노사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현실에서 자율 합의를 기반으로 한 주 52시간제 개선을 내세운 것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고소득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52시간제 예외 대상은 중소기업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며 “노사 합의 단서가 있어도 교섭력이 약한 근로자들은 어쩔 수 없이 연장 근로를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강권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李 “정년연장” 청년 일자리는?…金 “퇴직 후 재고용” 노동계 반발

윤석열 정부에서 매듭짓지 못한 고령 근로자 계속고용에 대한 해법을 놓고도 두 후보는 첨예하게 맞선다.

이재명 후보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현행 60세인 법정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법정 정년과 어긋나는 국민연급 수급 개시 시기를 맞추기 위해선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노동계 요구안을 받았다.

실제 민주당은 노동계와 협의체를 구성하고, 정년 연장안 도출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법정 정년 연장이 불러올 수 있는 청년 일자리 감소에 대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고령 근로자가 1명 늘어날 때 청년(23~27세) 근로자는 평균적으로 1명(0.4~1.5명) 감소한다. 다만 민주당은 “정년 연장과 청년 일자리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도 다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문수 후보는 법정 정년 연장 대신 퇴직 후 재고용처럼 기업 스스로 고령자 고용을 결정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노동계는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어 이 역시 노사정 사회적 대화 없이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특히 현행 근로기준법은 기업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근로자 과반수 또는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2013년 임금 체계 개편 없이 60세로 늘린 정년 연장과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회적 대화를 통한 충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란봉투법 당연” vs “중대재해법 악법”
노조에 대한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동조합법 2·3조(노란봉투법)에 대한 두 후보의 입장도 갈린다. 이 후보는 노란봉투법 재추진을 10대 공약에 담았다. 지난 정부 민주당 주도로 추진했지만 대통령 거부권에 의해 좌절된 만큼 “당연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 후보는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도 못 하게 하는 법”이라며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시행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에 대해서도 김 후보는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 사망 산업재해 책임을 경영책임자에게 형사처벌 형태로 지우는 법리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는 이미 시행 중인 중대재해법에 대한 별도의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이 후보와 정책 연대를 하고 있는 노동계는 산재가 빈번하고 수직계열화된 산업구조에서 기업 스스로 사고 예방 의식을 높이려면 강도 높은 처벌이 필요하다고 맞선다.

이밖에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최저임금의 최종 결정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한다’는 공약 이외에는 노동 공약이 전무하다. 다만 최저임금의 지역별 격차를 도입해야 한다는 이 후보의 공약은 한국 정부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어긋난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지나치게 ‘표’를 의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 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이 결실을 맺지 못한 이유도 표를 너무 의식한 탓”이라며 “대선을 앞두고 제기된 노동정책 이슈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중요한 것은 이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