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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 물어보면 된다고요? ‘사고의 외주화’ 시대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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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 물어보면 된다고요? ‘사고의 외주화’ 시대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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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호씨의 자녀 민서와 친구들이 독서 글쓰기를 하는 모습. 한순호씨 제공

한순호씨의 자녀 민서와 친구들이 독서 글쓰기를 하는 모습. 한순호씨 제공




AI, 감정 못 느끼고 경험 살리지 못해
언어 표현 능력 키우려면 글쓰기 필요
자신의 감각·감정 언어화하는 훈련
글쓰기는 아이의 연령과 흥미를 고려
AI를 글쓰기 코치로 활용하면 유용해



“챗GPT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요즘 아이들이 숙제할 때 자주 하는 말이다. 실제로 인공지능(AI)에 책 줄거리를 요약해 달라고 하고, 읽지도 않은 책의 독후감을 맡기는 경우도 많다. AI가 만든 문장은 매끄럽고 논리도 그럴 듯하다. 심지어 어른들이 읽어도 감탄이 나올 만큼 똑똑하다. 이러한 시대에 글쓰기가 더욱 중요한 역량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여전히 ‘직접’ 글을 써야 할까?





생성형 AI가 뛰어난 문장을 만들어주는 시대, 여기저기서 나오는 ‘글쓰기 무용론’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AI는 표현할 수는 있어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문장을 만들 수는 있어도 경험을 살려낼 수는 없다. 생성형 AI를 활용할 수는 있지만, 사고와 글쓰기를 무턱대고 ‘외주화’했다가는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이를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학업적 측면에서도 글쓰기는 중요하다. 대학 입시의 수학능력시험에서 국어는 지난 몇년간 난도를 높여가며 변별력을 가르는 과목 중 하나로 떠올랐다. 입시 국어의 중요성과 문해력 문제 등이 맞물리면서, 일찌감치 국어를 가르치려는 움직임도 크게 늘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사교육비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과목이 바로 국어(26.8%)다. 이러한 국어 사교육 시장의 핵심은 문해력 향상과 독서 교육이다.



성적이나 입시를 떼놓더라도 아이들에게 글쓰기는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언어화하는 소중한 훈련이다. 한 줄짜리 일기, 몇 마디의 메모, 그림 옆에 적은 말풍선 한 줄이라도 그 안에는 아이의 시선이 담겨 있다. 사고도 글쓰기도 ‘외주화’가 되어가는 시대, 그럴수록 아이가 자기 언어로 세상과 만나는 경험과 과정은 더욱 고유하고 소중하다.







글쓰기는 완성이 아니라 과정





글쓰기 교육의 첫걸음은 ‘잘 쓰는 법’보다 ‘쓰고 싶어지는 환경’에 집중하는 것이다. 아이가 감정과 생각을 편안하고 즐겁게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자. 아이가 “오늘 진짜 화났어”라고 말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 “어떤 기분인지 한번 써볼까?”라고 권하는 것만으로도 글쓰기의 문이 열린다. 이때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이야기하고 싶은 감정’이다. 특히, 유아기와 초등 시기에는 문장력이나 논리보다는 경험이 표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친구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는 시간을 통해 흥미를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독서논술지도사이자 초등 5학년 아이를 키우는 한순호(44)씨는 일주일에 한두번 자녀를 포함해 여러 아이들이 함께하는 글쓰기 시간을 갖고 있다. “아이가 초등 3학년일 때부터 둘이서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그러다가 함께하고 싶다는 아이 친구가 한 명씩 합류하면서, 지금은 여럿이 함께하는 모임이 됐다”며 “미리 책을 정해서 알려주면 아이들이 각자 읽고 온 후 모인다. 그런 다음 ‘독서 퀴즈 5분(내용을 기억하기 위한 용도로, 쉬운 난이도로 진행)-감상 및 의견 나누기 30~40분(비경쟁 방식의 토론)-글쓰기(자기 생각 스스로 정리하기) 20~30분’ 순으로 진행한다”고 모임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한순호씨는 아이들의 생각과 쓰기 방식을 지지해주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글쓰기 지도는 간단한 첨삭 정도다. 유튜브나 게임이 아닌 책을 소재로 재미있게 떠들고 쓰는 경험 자체가 우선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씨는 “초반에는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해 하던 아이들이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힘을 키워가는 게 보인다”며 “요즘은 출판사에서 독서활동지를 배포하는 경우도 많고, 인터넷에도 좋은 자료가 많으니 참고하면 좋다”고 글쓰기 교육 노하우를 전했다.



한순호씨의 자녀 민서와 친구들이 글쓰기 모임을 통해 쓴 독서 기록지. 한순호씨 제공

한순호씨의 자녀 민서와 친구들이 글쓰기 모임을 통해 쓴 독서 기록지. 한순호씨 제공




아이의 연령과 흥미를 고려한 글쓰기





글쓰기 종류는 다양하다. 아이의 연령과 흥미를 고려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보면 좋다. 기본적으로는 일기 쓰기가 있다. 아이가 하루의 즐거웠던 경험이나 화나는 감정 등을 간단한 글로 표현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자. “쓸 게 없어요”라고 하면 “점심시간에 누구와 함께 밥을 먹었지?” “그때 기분이 어땠어?”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으로 기억을 되살려주면 좋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상이라면 좀더 다양한 글쓰기를 경험하게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독서감상문이다. 독서감상문이 단순히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임을 알려준다.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니?” “주인공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와 같은 질문으로 사고를 확장시켜주면 좋다.



한순호씨는 “아이들은 조금만 힌트를 주면 자신의 생각을 곧잘 글로 옮긴다”며 “다양한 열린 질문을 통해 솔직함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반적인 독서감상문을 벗어나 이야기 속 인물에게 편지 쓰기, 다른 결말을 상상해서 써보기, 자신의 경험과 연결해보는 글쓰기 등을 해봐도 좋다.



글쓰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아이에게는 편지쓰기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좋아하는 작가나 연예인에게 팬레터를 쓰거나,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도록 해보자.



초등 고학년쯤이 되면 논설문 쓰기에 도전해볼 수 있다. 처음부터 어려운 사회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우리 학교에 왜 급식실이 필요한가?” “방학은 왜 필요한가?” 같은 아이들의 일상과 밀접한 주제부터 시작해보자. 고차원적인 사고와 토론에 재미를 느끼고 이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동시에 이때는 급격히 읽고 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흥미를 잃기 쉬운 시기이기도 하다. 무조건 입시 논술에 맞춘 글쓰기를 교육하려고 하기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글쓰기 방식을 찾고 흥미를 놓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글쓰기 전략





생성형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기술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활용하면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챗GPT와 같은 플랫폼을 쓰지 말라고 못박기보다는, 이를 글쓰기의 도구로 잘 활용할 때 오히려 기술 의존성을 낮출 수 있다. 생성형 AI 시대에는 질문을 잘하는 능력, 즉 프롬프트 능력이 중요하다. 아이와 함께 “어떻게 질문해야 더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먼저 AI를 브레인스토밍 파트너로 활용해볼 수 있다. 글의 주제나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아이돌 노래를 좋아하는데 이걸로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처럼 구체적으로 질문해볼 수 있다. 이때 AI가 제시한 아이디어 중 자신이 경험했거나 쓸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AI를 글쓰기 코치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이가 쓴 글을 AI에 제시한 뒤 “어떤 부분을 더 자세히 써야 할까?” “내 글쓰기의 장점과 보완점은 뭐라고 생각해?” 등의 질문을 해서 보완점을 찾을 수 있다. 이때도 AI가 한 제시문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는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와 AI가 같은 주제로 각자 글을 써본 후,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활동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이 놓친 부분을 확인할 수도 있고, 반대로 AI는 결코 담을 수 없는 감성이나 주관적인 관점의 가치를 배울 수도 있다.



한순호씨의 자녀 민서와 친구들이 독서 글쓰기를 하는 모습. 한순호씨 제공

한순호씨의 자녀 민서와 친구들이 독서 글쓰기를 하는 모습. 한순호씨 제공




가정에서 시도해볼 만한 글쓰기 활동





1. ‘자유 노트’ 만들기



정해진 양식 없이 자유롭게 쓰고 그릴 수 있는 노트를 마련해 보자. 글감이 떠오르면 짧게 써도 되고, 그림이나 말풍선을 함께 넣어도 좋다. 무엇이든 써도 된다는 심리적 자유가 아이의 표현력을 키워준다.





2. ‘오늘의 질문’으로 글감 만들기



“오늘 가장 많이 웃었던 일은?” “지금 생각나는 사람은?” 같은 글감 질문을 매일 한 개씩 정해 가족이 같이 써보는 것도 좋다.





3. 주제 정해 ‘관찰일지’ 쓰기



우리 집 반려견의 하루, 오늘 먹은 음식, 내가 키우는 식물 등 작지만 구체적인 관찰 대상을 정하고 그에 대한 관찰일지를 쓰는 것도 추천한다. 관찰은 글쓰기를 위한 훌륭한 기본 훈련이다.





박은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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