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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오월의 향기에 스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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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오월의 향기에 스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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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빛 품은 오월이다.

혜풍이 속삭이며 산야를 신록으로 물들인다.

우암산을 바라본다.

초록으로 평정되었다.

무심천 벚나무도 연둣빛 잎이 초록 열매를 품으면서 갈맷빛으로 변하고 있다.

터줏대감처럼 듬직하다.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도 싱그럽다.

순환되는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질서는 신비롭다.

나라가 어수선하고 세상이 복잡해도 생체시계는 졸고 있는 법이 없으니.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자신의 소임을 위해 만물은 윤회한다.

그리고 존재한다.

작은 나무와 풀 한 포기도 제각각의 자리에서 존재하고자 하는 기운을 갖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더 말해 무엇할까.


나 역시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소임을 다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치매를 앓고 계신 조모님과 골반을 다쳐 옴짝달싹 못하는 어머님을 모시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지키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 힘듦보다는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4대가 함께 살다 보니 아이들 어려서도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다.

어른들은 가셨어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부부 동반 모임을 제외하고는 집을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부창부수라고 나 역시 집콕만 했다.

올해 유독 봄앓이가 심했다.

시들어 가는 꽃처럼 비실비실, 충전하지 않으면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남편과 봄 향기 머금은 광한루를 돌아보며 안정을 찾았다.

소쇄한 바람이 상큼하다.

대상이 사물이든 무엇이든 자주 보면 정이 든다더니 광한루 풍경이 낯설지 않고, 정겹게 다가온다.

광한루는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라는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천체와 우주를 상징하여 조성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누각으로 '달나라 궁전'을 뜻한다.

이후 세종 26년에 남원부사 민공이 중수하고, 당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순찰사였던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 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떠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풍치가 매우 아름답다.

안목 높은 선조들 덕분에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아 고마움을 느낀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처음 만나 사랑을 맺은 분위기 때문인지 그이가 슬그머니 내 손을 잡는다.

잉꼬부부처럼 손을 잡고 오월의 향기에 스며든다.

투덜대던 무릎도 조용하고, 허리의 욱신거림도 수그러들었다.

무념무상 무장무애,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가진 듯 유유히 산책을 즐긴다.

수중 누각 완월정을 지나 광한루에 올랐다.

그네가 있는 쪽을 바라보니 장난기가 발동했다.

"성춘향이 아니라 이춘향이에요"하며, 살포시 인사를 올렸다.

쑥스러운 듯 눈길을 피한다.

아직도 소년 같은 데가 있다.

미쁘다.

부부애를 다지며, 오작교를 건너다가 환호작약했다.

천연기념물 원앙 수십 마리가 유유자적 노닐고 있다.

원앙은 짝을 이루어 평생을 함께 살아 깊은 애정과 충실함을 상징하여 필조(匹鳥) 즉 배필새라 부르며, 옛날부터 내외간 금실 좋은 것을 원앙에 비하였다.

요즘도 두 사람의 관계가 깊고 끈끈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결혼식이나 커플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부부의 소중함을 느끼니, 백년해로의 상징인 원앙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광한루는 남원의 대표 관광지답게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의 뒤태가 멋스럽다.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의 얼굴이 평화롭다.

벤치에서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연인, 친구, 가족들의 행복한 표정이 맑은 바람 같다.

엄마 아빠를 번갈아 보며, 방싯방싯 아장아장 발걸음을 옮기는 아기는 천사 같다.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까르르까르르 찰나의 순간을 즐기는 젊은 연인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노구를 지팡이에 의지하고 가족과 함께 나온 어르신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완월정, 오작교, 월매집 등 어디를 가도 사랑이 흐르는 포토존이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운치에 부부지정도 돈독해졌다.

괴물 같았던 산불의 후유증과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에 내남없이 힘들다.

그런데도 유원지, 공원, 식당, 카페에는 노부모를 모시고 나온 가족들이 많다.

효 정신이 살아있음이다.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며, '사랑과 감사 그리고 희망의 달' 오월의 향기에 스며든다.

이난영 수필가 아침뜨락,이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