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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재밌기는 처음” 학교 떠났던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모였다 [세상&]

헤럴드경제 손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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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재밌기는 처음” 학교 떠났던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모였다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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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환 헌재소장 후보자 "부족한 저에게 큰 영예"
성북구 정릉에 있는 기숙형 대안학교 ‘자오나학교’
10대 미혼모, 학교 밖 청소녀 7명이 지내고 있어
교장 “평범한 일상 되찾아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게 돕고 싶어”
자오나 학교가 마련한 한끼 밥상 행사에서 학생들이 난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성북구 제공]

자오나 학교가 마련한 한끼 밥상 행사에서 학생들이 난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성북구 제공]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학교가 재밌기는 처음이에요. 그래서 졸업하기 싫어요, 하하”

무엇이 그리도 재밌고 신날까. 재잘재잘, 조잘조잘 별 우스운 얘기가 아닌데도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깔깔댄다. 여느 청소년들처럼 밝게 웃는 10대 여학생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들은 좀 특별한 학교에 다닌다. 이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은 ‘자오나학교’. 서울 성북구 정릉3동에 있는 이 학교는 10대 미혼모와 학교 밖 청소녀들이 모여 살고 있는 기숙형 대안학교다.

자오나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자캐오가 오른 나무’를 줄인 말이다. 키가 작은 자캐오가 나무에 올라 새로운 세상을 만났듯 어려움에 처한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립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취지로 2014년 원죄없으신마리아교육선교수녀회에서 10대 미혼모와 학교를 자퇴한 청소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만들었다.

지난해 4대 교장으로 부임한 지서운 수녀(크리스티나)는 “이곳은 원래 여대 기숙사로 사용하던 곳이었는데 지난 2014년 10대 청소녀들을 위한 기숙형 대안학교로 새로 시작하게 됐다”며 “교육부에도, 여가부에도 속하지 않는 비인가시설이다 보니 정부 지원은 못 받고 있지만 개인 후원, 기업 지원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 학교에는 7명의 학생이 있다. 이들은 모두 10대 중후반(2008~2010년생)으로 일반 학교에 다녔다면 중고등학생에 해당한다.


이들은 자오나학교에서 지내는 것이 만족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이모(17)양은 “저는 아빠, 엄마가 없어 어릴 때 대구, 안산 등의 보육원에 있다가 서울로 오면서 이곳에 오게 됐다”며 “지금까지 있던 시설 중 여기 선생님들과 시설이 최고”라고 밝게 웃었다.

이양처럼 가족 해체로 온 경우도 있지만 10대 나이에 아이를 임신해 온 경우도 있다. 베트남 출신 A(16)양은 “아기를 임신한 뒤 올해 초 여기에 들어와 4월에 남자 아기를 낳았다”며 “제가 수업하는 동안 여기 수녀님(선생님)들과 보육 도우미 선생님들이 돌봐주셔서 걱정 없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자발적으로 학교를 나온 경우다. 중국 국적의 B(16)양은 “학교에서 한국 아이들과 대화가 잘 안되다 보니 학교생활이 좀 어려웠다”며 “AI로 대안학교를 검색했는데 자오나학교를 추천해 줘 들어오게 됐는데 선생님들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사정상 이곳에 왔지만 여느 10대 소녀들 못지않게 밝은 모습이었다. 10대 미혼모라고, 학교 밖 청소년들이라고 우울하거나 비관적인 모습일 거라는 편견이 깨졌다.

지서운 자오나학교 교장. [성북구 제공]

지서운 자오나학교 교장. [성북구 제공]



지서운 교장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는 사회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모든 걸 경계하고 날카롭게 받아들였다”며 “하지만 이곳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위로하고 다가가면서 여느 아이들처럼 활기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자오나 학교에는 교장선생님을 포함해 진로교사, 담임교사, 기숙사 사감 등 총 10명의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 보육과 학습 지원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중등 과정 2년, 고등 과정 2년, 이후 자립 과정을 거쳐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한다.


이곳에서 고등 검정고시를 통과한 이모양은 “대학에 가기보단 빨리 내가 좋아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며 “나중에 돈을 벌면 자오나학교에 선물을 하나 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오나학교에서 받은 사랑으로 밝아진 아이들은 지난 21일 지역사회 어르신들을 위한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다. 자오나학교가 속한 공릉 3동 어르신들을 초청해 ‘한끼 밥상’을 마련해 드린 것이다.

60여명이 찾은 이날 행사에서 아이들은 어르신들 앞에서 2달간 연습한 난타 공연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띄웠다.

지 교장은 “집 안에만 웅크리고 있어 혼자 버스도 못 타던 친구들이었지만 이젠 지역 어르신들과 인사하며 지내는 평범한 청소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며 “이 아이들은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이 누리는 보통의 삶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 이들이 나중에 커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학교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지 교장은 최근 특히 많아진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국내로 오는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늘고 있지만 이들은 의사소통 등이 어려워 다른 아이들보다 학폭, 왕따 등을 경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실제 자오나학교 학생 7명 중 3명이 다문화가정 청소녀들이다.

지 교장은 “다문화 가정 아이든, 다른 이유로 학교생활이 어려운 아이든 혼자 고민하지 말고 두려워 말고 자오나학교를 찾아줬으면 한다”며 “그렇게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아주고 도와줄 수 있는 어른들이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에 많다. 그런 사랑을 받고 자라야 그들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