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 이나영 기자) 오래도록 함께 할 화제의 스테디·베스트셀러 도서로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소개한다.
에밀 아자르는 유대계 프랑스인 소설가 로맹 가리의 또 다른 필명이다. 로맹 가리는 1965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세계 3대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지만 적의를 가진 비평가들의 모함에 의해 꾸준히 고통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면을 쓰고 정체 모를 작가로서 소설 '그로칼랭'을 발표하며 두 이름의 삶을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맹 가리는 혹평을 받았고 에밀 아자르는 찬사를 받았다. 가명으로 발표된 소설 '자기 앞의 생'이 공쿠르상을 수상하며 그는 누구도 모르게 역대 유일의 중복 수상자가 되었다.
에밀 아자르는 유대계 프랑스인 소설가 로맹 가리의 또 다른 필명이다. 로맹 가리는 1965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세계 3대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지만 적의를 가진 비평가들의 모함에 의해 꾸준히 고통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면을 쓰고 정체 모를 작가로서 소설 '그로칼랭'을 발표하며 두 이름의 삶을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맹 가리는 혹평을 받았고 에밀 아자르는 찬사를 받았다. 가명으로 발표된 소설 '자기 앞의 생'이 공쿠르상을 수상하며 그는 누구도 모르게 역대 유일의 중복 수상자가 되었다.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군인, 조종 장교이면서 외교관, 소설가, 감독이었던 에밀 아자르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아이콘인 진 세버그와 결혼하는 등 화려한 일생을 보냈지만 삶다운 삶에 대해 미진함을 느낀 것 같다. "난 내가 삶을 산 거라는 확신이 그다지 서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 우리를 갖고 소유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삶을 선택이라도 한 것처럼, 자기 삶인 양 기억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살면서 선택권을 거의 갖지 못했다."(회고록 '내 삶의 의미' 중에서)
1980년, 향년 66세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는 '결전의 날'을 제목으로 한 유서에서야 이분된 삶에 대해 고백했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용경식 옮김|문학동네
열네 살 모모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 아이의 시선은 각박하고 모진 세상의 면모를 투명하게 응시해낸다. 아우슈비츠에서 간신히 살아온 유대인, 인종차별을 받는 아랍인과 아프리카인 등 모모의 주위에는 저마다의 조건으로 남루하고 비천한 생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모모를 돌보는 창녀 출신의 유태인 로자 아줌마처럼 삶을 포옹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관계들이 분명 존재한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라고 묻는 모모의 질문을 거쳐 소설은 마지막 문장에 당도한다. "사랑해야 한다."
조경란 작가는 "슬픈 결말로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이 알려주었다고 평했다. '자기 앞의 생'이 성서처럼 믿고 있는 경지는 꽤 명확하다. 사랑이 삶을 견디게 하고 슬픔마저 껴안을 수 있게 한다는 것.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
이 종착지에서 자동적으로 에밀 아자르이자 로맹 가리의 마지막 선택을 숙연하게 연상할 수밖에 없다. 그도 한 때 이 믿음의 신도였을까. 그렇다면 그가 삶을 견딜 수 없어진 것은 그의 삶에서 사랑이 희소해졌기 때문일까. 혹은 더 이상 사랑이 삶을 지탱할 만큼 결정적인 무언가가 아니게 된 것일까. 작가의 삶을 소설 위에 겹쳐볼 때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바는 무엇일까. 복잡한 질문이 남는다.
"삶에 대한 무한하고도 깊은 애정" 위에서, 슬픔과 사랑이 교차하는 자기 앞의 생을 응시하게 만드는 너른 소설이다.
책속에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조물주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잘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조물주는 아무에게나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기도 한다. 꽃이며 새를 만들기도 하지만 이젠 칠 층에서 내려가지도 못하는 유태인 노파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기웃거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내게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로자 아줌마 곁에 앉아 있고 싶다는 것. 적어도 그녀와 나는 같은 부류의, 똥 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은 함께 있고 싶다. 나딘 아줌마는 내게 세상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라몽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사진=문학동네
편집자 주: '오늘의 책'은 매일 한 권의 도서를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선정해 깊이 있는 정보와 함께 독서의 즐거움을 전해드립니다. 국내소설 , 외국소설, 에세이·시집, 인문·예술, 아동·청소년, 이 주의 신간, 화제의 스테디·베스트 셀러를 기본 카테고리로 도서가 소개됩니다.
'오늘의 책'이 독자 여러분의 하루를 더욱 충만하게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Copyright ⓒ MHN / 엠에이치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