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 헤다 역 맡아 32년 만에 연극 무대 복귀
6월 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LG SIGNATURE 홀에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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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헤다 가블러'는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의 심리를 다루는 작품이다. /LG아트센터 제공 |
[더팩트|박지윤 기자] 처음에는 주인공의 복잡다단한 감정이 크게 와닿거나 이해되지 않아서 난해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다가 120년 전 결혼제도에 벗어나려는 인물만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중 한 명으 바라본다면 더 넓은 시야로 극을 즐길 수 있을 듯하다. 3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 이영애의 '헤다 가블러'다.
연극 '헤다 가블러'는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의 심리를 다루는 작품으로, 1890년 발표된 헨리크 입센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하며 리처드 이어가 현대적으로 각색한 버전을 바탕으로 한다.
가블러 장군의 딸인 헤다(이영애 분)는 남성들의 흠모를 받아온 아름답고 당당한 여성이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학문 외에는 관심이 없는 순진한 연구자 조지 테스만(김정호 분)과 충동적으로 결혼한 그는 6개월 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기대와 달리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에 권태를 느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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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왼쪽)는 주인공 헤다 역을 맡아 3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고 있다. 그는 아름다우면서도 냉소적이고 지적이면서도 파괴적인, 한 단어로 성격을 정의할 수 없는 인물이 느끼는 결핍과 억압을 다층적으로 그려낸다. /LG아트센터 제공 |
그러던 중 자신이 무시하던 동문 테아(백지원 분)를 통해 과거의 연인이자 불운한 천재 작가 에일레트(이승주 분)가 재기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에일레트의 성공에 테아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된 헤다는 마음 한편에서 뒤틀린 욕망이 들끓기 시작한다.
이후 헤다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타인을 통제하고자 하는 파괴 본능이 발동하고, 헤다 부부 주변을 맴돌며 은근하게 영향력을 행사해온 판사 브라크(지현준 분)는 헤다의 심리를 꿰뚫고 은밀한 방식으로 그를 통제하려고 한다. 결국 이야기는 점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다가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헤다는 입센의 작품 중 가장 극적인 역할 중 하나로 현시대까지도 여전히 강렬한 비극의 아이콘으로 손꼽히며 여성 햄릿이라고 비유되는 캐릭터다. 어떤 배우가 헤다 역을 맡게 되는지만으로도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이영애가 1993년 '짜장면' 이후 32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와 더욱 이목을 집중시켰다.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헤다로 분한 이영애는 등장부터 독보적인 아우라를 발산하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동안 매체 연기로 대중과 만나왔기에 큰 무대와 수많은 관객을 단숨에 휘어잡는 스킬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와 별개로 그의 존재감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이영애는 아름다우면서도 냉소적이고 지적이면서도 파괴적인, 한 단어로 성격을 정의할 수 없는 인물이 느끼는 결핍과 억압을 다층적으로 그려낸다. 또한 '원 캐스트'로 출연 중인 김정호 지현준 이승주 백지원 이정미 조어진과 다채로운 관계성을 형성하며 자신만의 헤다를 성공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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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다 가블러'는 LG아트센터 서울-LG SIGNATURE 홀에서 오는 6월 8일까지 공연된다. /LG아트센터 제공 |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때때로 정면 무대가 대형 스크린으로 전환도면서 라이브캠을 통해 송출되는 이영애의 연기다. 카메라와 눈을 맞추며 결정적인 순간 속 헤다의 심리 상태와 정서를 극적으로 담아 지루할 틈을 없게 한다. 연극에서 잘 볼 수 없는 연출 방식에 한 번, 이를 다 소화하는 이영애의 활약에 두 번 놀라고 만다.
무대도 인상적이다. 거대하면서도 삼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미니멀한 무채색의 기하학적 공간은 헤다가 갇힌 집이자 그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상징해 처음에는 웅장하다가도 극이 전개될수록 답답하게 다가오며 이에 발 딛고 있는 인물의 심리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작품은 120년 전의 관습을 담고 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갑갑함을 느끼는 그 시대의 여성을 넘어 저마다의 불안과 욕망을 갖고 각자의 헤다를 품고 있지만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현대인들을 연극적으로 그려내며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둔다. 여기에 날아갈듯 날아가지 않은 풍선부터 디오니소스 액자 등 여러 소품이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헤다 가블러'는 LG아트센터 서울-LG SIGNATURE 홀에서 지난 7일부터 시작해 오는 6월 8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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