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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산과 페로몬, 개미의 전부는 아니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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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산과 페로몬, 개미의 전부는 아니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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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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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나에게 그저 하나의 똥구멍이었다. 햇볕 좋은 날이면 담벼락에 등을 대고는 개미 똥구멍을 쪽쪽 빨아 먹으며 아이들을 기다렸다. 톡 쏘는 신맛을 맛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나중에 대학에 가서야 개미가 방어용으로 분출하는 개미산(formic acid) 맛이라고 배웠다.(일반생물학 교수님도 개미 똥구멍 꽤나 빨아 드셨던 것 같다.) 개미는 라틴어로 포르미카(formica)다.



서른살이 되었을 때 읽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열린책들)는 개미와 번역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내 생애 최초로 존경한 번역가 이세욱이 이 책을 번역했다.(지금은 많은 번역가를 존경한다.) 이 책을 읽고 개미와 그들의 소통 수단 가운데 하나인 페로몬의 세계에 깊게 빠져들었다. 페로몬은 생화학 물질이다. 일정한 패턴이 있어서 그 세계를 탐구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실제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베르베르의 개미는 소설이다. 과학책이 아니다. 페로몬을 빼면 개미에 대한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개미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도감이다. 항상 도감이 답이다. 문제는 개미가 작아도 너무 작다는 것. 큼직큼직한 정밀한 사진이 실린 도감을 찾아야 한다. 내가 고른 도감은 ‘한국 개미 사전’(비글스쿨)이다. 한국의 개미 딱 105종만 실려 있다. 개미 얼굴의 털까지 섬세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압권이다. 개미 얼굴이 보고 싶으면 최고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얼굴만 보면서 살겠는가?



1999년에 출간된 ‘개미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은 새 하늘을 열었다. 이 책의 부제는 ‘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사회 이야기’다. 부제에서 말하는 소설의 작가는 아마도 베르베르일 것이다. 정말이다. 소설보다 재밌는 과학책이다. 이 책은 재밌기만 한 게 아니다. 한국 교양과학도서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정확히 ‘과학책’인 것이다. 과학과 대중의 소통에 관심 있는 과학자들은 그때까지 오로지 ‘과학의 대중화’만을 이야기했다. 어려운 과학을 단지 쉽게 설명하는 데 무진 애를 썼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최재천 교수가 쓴 이 책은 ‘대중의 과학화’를 시도한 첫번째 과학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과학에 쉽게 접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의 본령으로 대중 끌어올리기를 시도했고 성공했다.



이정모 제공

이정모 제공


이 책보다는 덜 재밌지만 개미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많이 담고 있는 책으로는 ‘개미 세계 여행’(범양사)이 있다. 이 책은 베르트 횔도블러와 에드워드 윌슨이 1990년 펴낸 종합 연구서 ‘앤츠(Ants)’(벨냅)의 대중판이라고 할 수 있다. ‘앤츠’는 26×31㎝의 하드커버 책으로 2단 조판이고 본문이 732쪽이다. 무게는 3.4㎏. 책꽂이에 꽂아두면 우주를 품은 느낌이다. 읽어야 하느냐고? 그걸 어떻게 읽겠는가? 그냥 ‘개미제국의 발견’을 보시라. 훨씬 재밌고 유익하다.



비록 요즘 아이들은 개미 똥구멍을 빨아 먹지는 않더라도 개미는 좋아한다. 왜 그럴까? 작은 벌레가 줄지어 움직이고 무언가를 옮기며 계속 바쁘게 활동한다. 살아 있는 기계처럼 보인다. 어디에나 있고 도망치지도 않으며 손으로 잡을 수도 있다. 개미 사회에서 질서 있는 세계를 관찰한다. 개미를 따라가다 보면 흙, 풀, 식물, 곰팡이, 다른 곤충들과 생태계로 시야가 넓어지면서 저절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한 개미 책은 정말 많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이언스 리더스 시리즈 ‘개미는 바빠’(비룡소)는 첫걸음으로 좋은 책이다. 개미의 다양한 생태에 관한 단어로 시작한다. 단어는 정말 중요하다. 개미 사회 구조를 보여주는 그림책 ‘아래로 당당, 위로 콩콩’(빨간펜) 역시 학습 효과를 노리는 부모가 고르기 좋은 책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그림책으로는 ‘개미의 일생과 역사’(주니어김영사), ‘개미’(베틀북), ‘개미제국의 발견’의 초간단 버전 격인 ‘안녕, 난 개미야’(바다어린이)가 내 마음에 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를 위한 생태 판타지 ‘개미(곤충학자 김정환 선생님의 생태 판타지)’(푸른숲)와 성인을 위한 과학교양서 ‘개미’(작은책방), ‘개미’(가람기획)는 모두 곤충학자들이 썼다. 그런데 출판인 여러분,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제목이 모두 개미라니요!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성인들은 왜 개미를 좋아할까? 개미는 여러모로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자신을 돌아다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류세는 인간의 생물량(생물이 포함하고 있는 유기물질의 총량)이 너무 많아서 생긴 일이다. 80억명을 모두 모으면 가로·세로 ·높이 2㎞인 상자를 가득 채울 수 있다. 그런데 개미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 있다. 그런데 아무도 지금을 개미세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개미는 최소한 1만4천종은 있기 때문이다. 개미는 1만4천개의 생태적 틈새(niche)를 채우면서 생태계의 먹이그물을 촘촘하게 유지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겨우 한개의 틈새만을 차지한다.



지구가 보기에 호모 사피엔스와 개미는 아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개미에게 좀 배우자.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지속가능하지 않겠는가! 개미는 좋은데 책을 읽기는 쉽지 않은 분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다. 일단 책을 사서 꽂아둔다. 그러면 폼은 난다. 그다음에 충남 서천에 있는 국립생태원을 방문한다. 거기에서는 최재천 교수가 국립생태원장을 하던 시절 꾸며놓은 살아 있는 개미 전시를 볼 수 있다. 기가 막힌다. 전시를 본 뒤에도 ‘개미제국의 발견’을 읽을 마음이 안 생긴다면 개미는 포기해야 한다. 괜찮다. 세상에 흥밋거리는 많으니까 말이다.



이정모 과학 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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