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사진=인터넷 |
워런 버핏과 함께 버크셔 해서웨이를 일군 찰리 멍거 부회장은 2023년 11월 28일 100세 생일을 한 달여 앞두고 타계했지만, 여전히 버핏을 포함한 버크셔 해서웨이의 수많은 주주들에게 잊을 수 없는 존재다.
지난해 5월 개최된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는 찰리 멍거를 기리는 30분짜리 영화로 시작했고 버핏은 멍거를 '버크셔 해서웨이의 설계자'라고 칭송했다. 주총 내내 멍거를 언급하던 버핏이 옆자리에 앉은 그레그 에이블 비보험부문 부회장을 향해,"찰리"라고 불렀을 정도다.
올해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에서는 버핏이 연말에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그레그 에이블 부회장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깜짝 발표하자 수 만명의 주주가 기립박수를 치며 그동안 버핏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1965년 버크셔 인수 이후 60년 동안 전설적인 투자 기록을 세운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남긴 메시지는 시간을 거슬러 곱씹어볼 '투자 교과서'다.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 반이 지난 찰리 멍거의 명연설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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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멍거가 정리한 7가지 불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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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멍거가 정리한 7가지 불행해지는 방법/그래픽=이지혜 |
멍거의 초기 연설 중 유명한 연설은 1986년 미국 LA에 있는 명문 사립 중고등학교 하버드 스쿨 졸업식에서 한 연설이다. 찰리 멍거는 자식 7명 중 5명이 하버드 스쿨을 졸업했으며 1969년 하버드 스쿨 이사회에 합류했다.
당시 18살의 고등학교 졸업생들 앞에서 선 60대 후반의 멍거는 영국의 시인 평론가 새무얼 존슨이 밀턴의 '실락원'에 대해 연설했을 때 "연설이 더 길어지길 바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말로 장난스럽게 서두를 열었다.
멍거는 지금까지 들어본 하버드스쿨 졸업식 연설 20개 중 더 길어지길 바란 연설은 몇 년 전 불행이 보장되는 방법을 말한 자니 카슨의 연설 밖에 없었다며 카슨의 3가지 방법에다 자신이 발견한 4가지 불행해지는 방법을 추가했다. 자니 카슨(1925~2005년)은 미국의 전설적인 토크쇼 진행자로 30년동안 '투나잇 쇼'를 진행하며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인물이다.
멍거가 불행해지는 방법을 강조한 것은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건 헛수고에 그칠 가능성이 크지만, 불행해지는 방법은 청자에게 각인되기 더 쉽기 때문이다. 불행해지는 방법을 피하기만 해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아진다. 이 점에서 멍거의 행복 접근법은 그가 줄곧 강조했던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에 닿아 있다. 비아 네가티바는 '부정의 길'을 뜻하는 라틴어로, 진리가 아닌 것들을 제거해 나가면서 진리를 찾는 방법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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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중독, 질투 그리고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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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카슨은 졸업생에게 행복해지는 방법은 알려줄 수 없지만, 불행해지는 방법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알려줄 수 있다며 아래 3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약물 중독과 질투, 분노다.
카슨은 이 세 가지를 시도할 때마다 항상 불행해졌다고 말했다. 멍거는 어린 시절 친했던 친구 넷이 매우 똑똑하고 유머가 풍부하며 집안이 좋은 데다가 인기도 많았지만, 그 중 둘이 알코올 중독 탓에 오래 전 죽었고 한 명은 알코올 중독자로 비참하게 연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멍거는 약물 중독이라는 파멸의 길을 두려워해서 불행해진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질투도 마찬가지다. 질투 탓에 불행해지고 싶다면 독실한 크리스천인 새뮤얼 존슨의 전기를 절대 읽지 말라며 그의 인생은 우리가 질투를 초월해야 이롭다는 사실을 매력적으로 깨우쳐준다고 멍거는 말했다.
분노 역시 불행해지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카슨이 분노 때문에 불행에 빠졌던 것처럼 멍거는 자신이 분노 때문에 항상 불행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또 멍거는 불행을 원하는 사람들은 '디즈레일리 해법'도 사용하지 말라고 반어적으로 말했다.
19세기 대영제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디즈레일리 수상은 복수는 포기했지만 분노를 표출할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신을 모욕한 사람들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서랍에 넣어뒀다. 나중에 그는 가끔씩 명단을 꺼내 이들이 세상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겼다.
1986년 하버드 스쿨에서 연설하는 찰리 멍거/사진=하버드 웨스트레이크 스쿨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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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어기고 전임자 무시하기… 좌절하고 주저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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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거가 말한 나머지 불행해지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못 믿을 사람 되기
멍거는 이 습관만 제대로 익히면 다른 장점이 아무리 많아도 불행해질 수 있으며 불신당하고 따돌림 당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 방법이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믿을만한 사람이 된다면 아무리 빈곤층이라도 불행해지기 쉽지 않다고 멍거는 강조했다. 대학 시절 멍거의 룸메이트 중 하나는 심각한 난독증이 있었다. 하지만 멍거가 만나 본 사람 중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었고, 나중에 수십억 달러 규모 회사의 CEO가 돼서 훌륭한 아내, 자녀와 멋진 인생을 살았다.
2) 타인의 경험에서 배우지 않기
실적 부진과 불행을 불러오는 확실한 방법이다. 남들의 실수에서 배우지 않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주위에서 손쉽게 볼 수 있고 사람들이 겪는 끔찍한 불행은 놀랍도록 닮은꼴이다. 음주 운전 사망, 무모한 운전에 의한 불구, 똑똑한 대학생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좀비가 되는 현상, 전임자의 실수를 되풀이하다 파산하는 기업 등이 좋은 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된 아이작 뉴턴 역시 불행해지는데 실패한 인물 중 하나다. 해석기하학에서 심하게 고전했지만, 탁월한 전임자들의 성과를 부지런히 배웠다. 자신의 연구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자 뉴턴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덕분"이라고 말했다.
3) 좌절할 때마다 계속 주저앉기
멍거는 이 방법을 쓰면 현명하고 운 좋은 사람도 불행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학파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자신의 비문에 남긴 글에서도 교훈을 얻지 않아야 불행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극히 가난한 절름발이 노예였지만 신들로부터 사랑받은 에픽테토스, 여기 잠들다."
4) 거꾸로 생각하지 않기
멍거는 카슨이 X를 만드는 방법을 찾으려 할 때, 거꾸로 어떻게 하면 X가 만들어지지 않는지 연구했다. 행렬·벡터 등 선행대수에서 굴지의 업적을 남긴 독일 수학자 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도 "뒤집어라. 항상 뒤집어 생각하라"라는 말을 되풀이했는데, 어려운 문제는 거꾸로 접근해야 잘 풀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하기의 압권은 찰스 다윈이다. 위인전의 달인인 멍거가 보기에 다윈의 재능은 하버드스쿨 1986년 졸업생 중 중간 수준에 불과했지만, 다윈은 뒤집어 생각하려고 심혈을 기울인 끝에 과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특히 다윈은 자신이 힘들게 깨달은 소중한 이론을 반박하는 증거가 나오면 무엇보다 집중했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충하는 새 정보를 입수해도 기존 판단을 고수하며 이런 성향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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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졸업생이 전한 멍거의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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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멍거의 졸업식 연설을 하버드 스쿨 졸업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버드 스쿨은 2023년 12월 13일 교내 신문인 '더 크로니클'에 부고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에서 1986년 졸업생인 앤드류 제임슨은 멍거가 졸업생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공통점이 없었지만, 인상적인 메시지를 통해 졸업생들을 고무시켰다고 회고했다.
"처음 연설을 시작했을 때 멍거는 나이가 많았고, 우리는 18살이었기 때문에 그가 우리와 어떻게 교감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도록 영감을 줬다. 멍거는 말의 힘을 통해 우리가 세상의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들었다."
토마스 허드넛 전 하버드 스쿨 교장이 부고 기사에서 멍거를 평가한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멍거가 겸손하고 현명하게 자신의 역할을 했다며 "멍거는 방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만큼 똑똑했다"고 말했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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