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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 필리핀 선거 앞두고 '여론 조작' 계정 100만 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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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 필리핀 선거 앞두고 '여론 조작' 계정 100만 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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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긴장 고조에 리플 6% 이상 급락
특정 정치인 옹호·상대편 비하 게시물 확산
마르코스 행정부 '내각 총사퇴' 초강수 던져


짧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짧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짧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이 이달 중순 필리핀 중간선거 직전 대규모 여론 조작 정황을 포착하고 100만 개 넘는 가짜 계정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데 나온 조치다. 선거에 사실상 참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행정부는 ‘내각 총사퇴’란 초강수를 꺼내 들며 국정 쇄신에 나섰다.

22일 필리핀스타 등에 따르면, 틱톡은 지난 3월 24일부터 필리핀 중간선거 당일인 이달 12일까지 필리핀 사용자를 겨냥한 3개의 ‘비밀 네트워크’를 폐쇄하고 100만 개가 넘는 가짜 계정과 스팸 계정을 삭제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비밀 네트워크는 각각 1만~2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계정 수백 개로 구성됐다. 계정은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거나, 반대 진영을 비난하는 내용을 확산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은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게시했다. 인공지능(AI)이 생성한 가짜 뉴스 4,000여 건도 이 계정을 통해 확산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리핀 청년층 사이 빠르게 성장하는 틱톡의 영향력을 악용해 투표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라고 짚었다.

2022년 6월 필리핀 다바오시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오른쪽) 대통령 당선인과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 당선인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다바오=EPA 연합뉴스

2022년 6월 필리핀 다바오시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오른쪽) 대통령 당선인과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 당선인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다바오=EPA 연합뉴스


틱톡은 이번 조작 행위가 마르코스 대통령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측 중 어느 쪽에 유리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필리핀 현지에서는 두테르테 진영이 조직적 개입을 주도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간 필리핀에서는 중국이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에는 “두테르테 측 후보들이 중국의 자금이 투입된 여론 조작의 수혜를 입었다”는 고발장이 접수되기도 했다.

지난 중간선거는 필리핀 정치를 양분하는 마르코스 가문과 두테르테 가문 간 대리전으로 여겨졌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2022년 당선 이후 전임자인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친중 노선에서 벗어나 친미·반중 정책을 외교 정책 기조로 삼아 왔다.

지난달 29일 필리핀 마닐라 선거관리위원회 본부 인근에서 선거 정보를 도청하려던 중국인이 필리핀 국가수사국 요원에 체포되고 있다. 필리핀 인콰이어러 캡처

지난달 29일 필리핀 마닐라 선거관리위원회 본부 인근에서 선거 정보를 도청하려던 중국인이 필리핀 국가수사국 요원에 체포되고 있다. 필리핀 인콰이어러 캡처


이에 중국이 여론전에 나섰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실제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필리핀에서는 중국 국적 스파이 4명이 대통령궁과 선거관리위원회 인근에서 도청을 시도하다 체포됐다. 필리핀 주재 중국 대사관이 ‘댓글부대’를 고용해 가짜 뉴스와 친중 여론을 퍼뜨리고 마르코스 대통령 등 중국에 비판적인 정치인 등을 공격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번 선거 결과도 논란에 불을 지폈다. 상원 12석 중 마르코스 대통령 측은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두테르테 진영은 5석, 무소속이 1석을 차지했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는 마르코스 진영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던 만큼, 정치권 안팎에서는 집권세력이 사실상 패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권 내부에서는 책임론이 급부상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22일 내각 각료 30여 명에게 전원 사퇴를 요구하고 정부 전면 개편에 착수했다. 내부 정비를 통해 흔들린 국정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