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하버드대 유학생 등록 차단
“반유대주의 안 돼”… 타 대학도 적용 시사
돈줄 끊어 순치 의도… 미 법원 '일시 제동'
한국 등 외국 출신 학생들의 미국 명문대 유학길이 막히게 생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反)유대주의 단속 비협조를 명분으로 하버드대의 유학생 유치 자격을 박탈하고 같은 조치를 다른 대학으로도 확대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다. 미국 정부와 대학 간 분쟁의 유탄을 애먼 유학생들이 맞게 된 꼴이다. 다만 미국 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에 즉각 제동을 걸면서, 미국 정부와 하버드대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올린 글에서 “하버드대가 법을 지키지 않아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하버드대는 더는 외국인 학생을 등록시킬 수 없다. 기존 유학생의 경우 전학하지 않으면 법적 지위(체류 자격)를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SEVP 인증이 없는 대학은 유학생에게 비자 승인에 필요한 자격증명서(I-20)를 발급할 수 없다. SEVP는 국토부 담당 프로그램이다.
처벌 명분은 치안·안보 정책 협조 거부다. 놈 장관은 이날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하버드대는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활동 참여와 중국 공산당의 침투를 용인했고 학생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범죄 정보를 공유할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들은 이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반유대주의 안 돼”… 타 대학도 적용 시사
돈줄 끊어 순치 의도… 미 법원 '일시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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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캠퍼스의 전경. 케임브리지=로이터 연합뉴스 |
한국 등 외국 출신 학생들의 미국 명문대 유학길이 막히게 생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反)유대주의 단속 비협조를 명분으로 하버드대의 유학생 유치 자격을 박탈하고 같은 조치를 다른 대학으로도 확대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다. 미국 정부와 대학 간 분쟁의 유탄을 애먼 유학생들이 맞게 된 꼴이다. 다만 미국 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에 즉각 제동을 걸면서, 미국 정부와 하버드대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불온'한 엘리트 대학들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올린 글에서 “하버드대가 법을 지키지 않아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하버드대는 더는 외국인 학생을 등록시킬 수 없다. 기존 유학생의 경우 전학하지 않으면 법적 지위(체류 자격)를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SEVP 인증이 없는 대학은 유학생에게 비자 승인에 필요한 자격증명서(I-20)를 발급할 수 없다. SEVP는 국토부 담당 프로그램이다.
처벌 명분은 치안·안보 정책 협조 거부다. 놈 장관은 이날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하버드대는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활동 참여와 중국 공산당의 침투를 용인했고 학생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범죄 정보를 공유할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들은 이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면에는 진보적 가치의 보루인 엘리트 대학들과의 ‘문화 전쟁’이 있다. 지난해 미국 대학가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중단을 요구하는 반전 시위가 확산했다. 명문대가 좌파 이념에 점령됐다고 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소극적 시위 대응을 빌미로 입학·채용 관련 다양성·포용성·형평성(DEI) 프로그램 폐기 등 진보 성향 교칙 변경을 대학들에 요구했다. 이에 반발해 총대를 멘 대학이 하버드대였다. 정부 요구안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수용을 거부하고 정부 공문까지 공개했다.
“유학생 유치는 특권”
정부의 길들이기 수단은 재정 압박이었다. 하버드대를 상대로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26억 달러(약 3조6,000억 원)에 달하는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이에 타격을 받은 하버드대는 교직원 대상 성과급 인상을 보류하고 신규 채용을 포기하는 등 자구책을 강구했다.
유학생 등록 차단은 자금줄 끊기 2탄 격이다. 하버드대의 경우 2010년 전체 학생의 19.7%였던 유학생 비중이 지난해 27.2%까지 늘었다. 유학생은 미국 연방정부 지원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 보니 미국 학생보다 더 많은 학비를 내는 경향이 있다. 놈 장관은 X에 “대학이 외국인 학생을 등록시키고 그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수십억 달러(수조 원) 규모 기금을 불리는 혜택을 누리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라고 썼다.
그러나 사실 532억 달러(약 73조 원)의 기부금 자산을 가진 하버드대는 다른 대학에 비해 외국인 학생 등록금에 재정을 의존하는 비중이 낮은 편이다. 전년도 재무보고서에 따르면 국내·국외 학생의 등록금 등 교육 수입이 전체 운영 수입의 21%에 불과했다.
하지만 하버드대 때리기는 타 대학에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미국 국가교육통계센터(NCES)에 따르면 등록 학생 수가 1,000명 이상인 미국 대학 중 유학생 비율이 10%를 넘는 곳이 246곳에 달한다. 놈 장관은 폭스 인터뷰에서 ‘컬럼비아대 등 다른 대학을 대상으로도 하버드대와 유사한 조치의 적용을 고려 중이냐’는 질문에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날벼락 맞은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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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하버드대 경영진을 상대로 연방정부의 대학 간섭에 저항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케임브리지=로이터 연합뉴스 |
하버드대 유학생들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유럽 출신 3학년 재학생은 “여름 동안 미국 내 인턴십과 직장 계획을 잡아 놓은 학생들이 많고 나도 그렇다. 이번 조치가 이 모든 계획에 어떤 영향을 줄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미 공영라디오 NPR에 털어놨다. 하버드대 국제오피스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한국 출신 유학생은 252명(연구자 포함 시 434명)이다. SEVP 인증 철회가 이들의 비자 취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대학으로 전학하면 비자 무효화를 피할 수 있다.
이번 조치가 세계 최고 명문대란 브랜드를 무기로 우수 인재를 끌어모으는 하버드대의 경쟁력을 약화할 수도 있다. 스웨덴 출신 학부 4학년 유학생 레오 거든은 미국 뉴욕타임스에 “전 세계 최고 인재를 데려올 능력이 없는 하버드는 더는 하버드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하버드대 유학생을 향한 다른 대학의 구애가 시작됐다. 홍콩과기대가 대표적이다.
다만 미 연방법원이 23일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에 일시 제동을 걸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 연방법원은 이날 트럼프 행정부의 '유학생 등록 권한 취소' 결정을 막았다. 이날 앞서 하버드대가 보스턴 연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에 따른 것이다. 하버드대는 소장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수정헌법 제1조를 위반했다며 "하버드와 7,000명 이상의 비자 소지자에게 즉각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임시 접근 금지 명령으로 인해 하버드대는 당분간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지속할 수 있게 됐다. 법원의 제동으로 트럼프 행정부와 하버드대 간 갈등의 골은 한동안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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