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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지도자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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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지도자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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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법무부사장, '보상쿠폰 사용시 이의제기 제한' 가능성에 "논의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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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피탄 흔적 없는 부분을 보강해야 한다는 '생존 편향' 논리에 대한 그래픽 설명. 자료: https://en.tigosolutions.com

피탄 흔적 없는 부분을 보강해야 한다는 '생존 편향' 논리에 대한 그래픽 설명. 자료: https://en.tigosolutions.com


2차대전 당시 미군 폭격기 생존율은 50%를 넘지 못했다. 기체 보강 필요성이 제기됐다. 귀환한 폭격기를 점검했더니 대공포 피격이 꼬리와 날개, 몸통 중앙에 집중됐다. 군 수뇌부가 그 부분에 대한 보강을 준비하자, 한 통계학자가 제지하고 나섰다. 아브라함 왈드(1902~1950) 콜럼비아대 교수였다. ‘생존 편향’ 논리를 내세웠다. 피탄 흔적 없는 엔진과 조종석이야말로 공격받으면 바로 추락하는 치명 부위라고 강조했다. 전문가 주문을 따른 결과, 귀환율도 높아졌다.

□역시 2차대전을 다룬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 9화에 란츠베르크 인근 유태인 수용소가 등장한다. ‘음식을 달라’고 매달리는 피골상접한 수용자들에게 미군 병사들이 황급히 빵과 치즈 등을 나눠 준다. 뒤늦게 도착한 군의관이 제지한다. “오래 굶었던 이들이 음식물을 급하게 많이 먹으면 위험하다". 수용자들을 석방하려던 군 당국 방침에도 반대한다. 한곳에 모아두고 의료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도널드 트럼프의 첫 집권이 임박했던 2016년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럿거스대 졸업식에서 유권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팩트와 과학에 대한 이해는 좋은 것이고, 여러분들이 정책 입안자들에게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와 삶에 있어 무식은 미덕이 아니다”라고 트럼프를 겨냥했다. 아플 때는 유능한 의사를 선택하면서도 정치에선 선동가에 넘어가는 세태를 우려한 뒤, “팩트와 과학을 거부하는 건 망하는(Decline) 길”이라고 강조했다.

□9년 전 오바마의 우려가 ‘반지성주의’에 대한 것이었다면,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본질과 무관한 작은 착오와 실수를 침소봉대, 전문가 집단과 시스템을 공격하는 일이 빈번하다. 부정선거론이나, 사법부(대법원·헌법재판소)에 대한 공격이 그렇다. 그 과정에서 선동가만 이득을 챙긴다. 선동 너머 진실을 보는 전문가들은 ‘무지를 용기로 착각한’ 이들에게 핍박까지 당한다. 이쯤 되면 누가 지도자가 돼야 하는지 자명하다. 마침 금요일(23일) 밤 8시 2차 대선 토론이 열린다. 달콤한 선동 대신, 불편한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하는 이가 누군지 가려낼 기회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