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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 전화' 막는다더니… 숨진 제주 교사, 학생 가족과 수차례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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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 전화' 막는다더니… 숨진 제주 교사, 학생 가족과 수차례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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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0대 중학교 교사 사망사건
교육활동 보호 종합방안 무용지물
전화민원 대응 매뉴얼 작동 않아
유족 측 “극심한 스트레스받아”


오석환(앞줄 왼쪽) 교육부 차관과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이 23일 제주도교육청에 마련된 숨진 중학교 교사 분향소를 찾아 헌화한 뒤 묵념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연합뉴스

오석환(앞줄 왼쪽) 교육부 차관과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이 23일 제주도교육청에 마련된 숨진 중학교 교사 분향소를 찾아 헌화한 뒤 묵념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 한 중학교 교사가 학생 가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사건을 두고 제주도교육청의 교육 활동 보호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인은 학생 가족과 하루 10여 차례 통화하기도 해 “교사에게 전화 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교육청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다.

제주도교육청이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발생 직후인 2023년 8월 발표한 교권침해 예방 대책(교육활동 보호 종합방안)에는 각급 학교에 관리자로 구성된 민원 대응팀을 구성해 민원처리를 교직원 개인이 아닌 기관이 대응하는 체계로 개선하고, 학교장 책임하에 운영하는 방안이 담겼다. 교원들의 사생활 및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교원안심번호 서비스를 모든 학교 교원으로 확대하고, 민원전화에 대응하기 위해 학교 전화기를 녹음 가능 전화기로 교체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그러나 22일 숨진 교사의 개인 휴대전화에는 지난 3월부터 이달 중순까지 학생 가족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가 상당했다. 유족이 보여준 고인의 휴대전화에는 지난 16일 하루에만 학생 가족의 전화번호가 8차례나 찍혀 있었고, 숨진 교사가 4차례 전화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교육청 대책은 현장에서 먹통이었던 셈이다.

유족 측은 학생의 가족이 수시로 고인의 휴대폰으로 민원을 제기하면서 고인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3학년 담임을 맡았던 고인이 지난 3월부터 여러 차례 결석한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학생의 가족이 지속적으로 항의했다고 유족은 전했다. 고인은 민원에 시달리면서도 졸업을 앞둔 해당 학생에게 등교하도록 설득했고, 민원을 제기한 가족의 말을 잘 들으라고 충고하는 등 마지막까지 학생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제주 한 중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교사가 생전 무단결석 등을 한 학생에게 보낸 카카오톡. 뉴시스

22일 제주 한 중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교사가 생전 무단결석 등을 한 학생에게 보낸 카카오톡. 뉴시스


고인의 아내는 “학생이 '선생님(고인)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하자 이 학생 가족은 남편이 하는 말은 믿지 않고, 개인 휴대폰으로 수시로 전화해 '아동 학대'라는 취지의 민원을 계속 제기했다”고 말했다. 또 “남편은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학생 가족에게 사과도 했지만, 상대방은 계속 트집을 잡으며 '사과하지 말라', '벌은 알아서 받으라'고 괴롭혔다”며 “남편이 억울함이 극에 달해 이 같은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교조 제주지부 측은 “전화 민원과 관련된 매뉴얼이 있지만 교육활동 과정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민원이 발생하면 먼저 담임교사와 학부모가 우선적으로 전화통화로 상담이 이뤄지다, 사안이 커질 경우에 교감 또는 교장 등이 개입하는 사례가 많다. 이번 사건도 비슷한 사례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고, 숨진 교사와 학생 가족 측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 교육활동보호 매뉴얼이 지켜졌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확히 답변하기가 어렵다”고 해명했다.


23일 제주 제주시 제주도교육청 입구 맞은편에 숨진 40대 교사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게시됐다. 김영헌 기자

23일 제주 제주시 제주도교육청 입구 맞은편에 숨진 40대 교사를 추모하는 현수막이 게시됐다. 김영헌 기자


고인을 추모하는 발길도 이어졌다. 23일 오후 빈소가 마련된 제주 시내 한 장례식장에는 고인이 담임을 맡았던 반 학생 22명 전원과 재학생, 졸업생 등이 찾아와 조문했다. 한 학생은 “평소 야단을 치신 후에는 항상 미안하다고 다독여 주셨고, 세심히 챙겨주시는 선생님이었다”며 “마지막 수업시간에도 웃으면서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아,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선생님이 왜 돌아가셨는지 반드시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과 김광수 제주도 교육감 등도 이날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제주도교육청이 이날 도교육청 주차장에 마련한 합동분향소는 25일까지 운영된다. 교직원, 학생, 도민 누구나 조문할 수 있다.

한국일보는 자살예방 보도준칙을 준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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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