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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나라’ 맞습니까?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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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나라’ 맞습니까?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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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이주노조 등 조합원들이 지난 4월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25 세계노동절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서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위험의 이주화 중단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민주노총, 금속노조, 이주노조 등 조합원들이 지난 4월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2025 세계노동절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서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위험의 이주화 중단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임재희 | 이슈팀 기자





“한국에서 가족들이랑 같이 살고 싶습니다.”



지난해 11월 만난 미얀마 사람 루안(가명·40)이 한 말은 뜻밖이었다. 과거 얼마나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했는지 듣기 위해 만난 자리였다. 한두달만 일해도 손톱이 빠질 만큼 힘든 가죽공장에서 6년 넘도록, 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 비자(E-9)로 들어와 사장에게 욕을 들어가며 버틴 기억을 1시간 넘게 떠올렸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계획을 물었을 때, 가족과 함께 그린 미래의 배경이 한국이란 사실에 다소 놀랐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은 루안은 2020년 1월을 잊을 수 없다. 그는 가죽공장에서 동료 2명의 목숨을 앗아간 보일러 폭발 목격자다. 공장 대표는 산업용 보일러를 제작한 지 24년 된 중고로 사들였다. 가뜩이나 위험해 법으로 정한 관리자를 둬야 하지만, 근처 공장 직원 이름만 빌려왔다. 결국 보일러와 노통 연결 부위에 균열이 생겼고, 약 1671배 팽창한 보일러가 폭발했다.



지난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 티브이(TV) 토론회를 보면서 루안이 떠올랐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악법’이라고 못박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논쟁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루안이 일했던 가죽공장 보일러 폭발과 같은 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없었던 때 폭발이 발생한 탓에 루안의 가죽공장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산업재해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분명히 달라졌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장 허락 없이 사업장을 옮길 수 없어 루안과 동료들은 폭발 사고 뒤에도 가죽공장으로 출근했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한 2021년 사업장 변경 허용 사유에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가 추가되면서,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장은 사장이 허락하지 않아도 떠날 수 있게 됐다. 김문수 후보는 토론회에서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사업주를 처벌한다고 재해가 줄어드냐”고 했지만, 중대재해 사망자 수도 2021년 683명에서 지난해 589명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이번 대선에선 이주노동자 임금 체계를 흔드는 후보도 등장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는 국외로 이전한 공장을 국내로 돌아오게 할 방안으로 최대 10년까지 이주노동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내놨다. 10대 공약 가운데 두번째로 내걸었다.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가 그런 일자리를 찾아올지 의문이다. 또 이주노동자가 그런 일자리를 선택하더라도 최저임금은 생활 안정을 위해 국가가 보장하는 최저 수준의 임금인데, 이주노동자들은 안정된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인가. 가장 취약한 환경에 놓인 이들의 삶을 흔드는 사회를 우리는 안정된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루안이 한국에 남기로 한 결정적인 계기는 “좋은 사장님”이었다. 가죽공장을 떠난 루안이 만난 사장은 욕도 안 하고, 명절 선물도 한국 노동자와 똑같이 준다고 한다. 루안에게 먼저 “가족들을 한국에 불러서 사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이도 사장이었다. 한국을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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