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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만 있다면 황혼 입양 가능? 세대 갈등·부양 어떻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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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만 있다면 황혼 입양 가능? 세대 갈등·부양 어떻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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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당사자 알 권리 요구하는 김서희씨

입양 약 2개월 후 촬영된 김서희씨의 어린 시절 사진. 본인 제공

입양 약 2개월 후 촬영된 김서희씨의 어린 시절 사진. 본인 제공


윤석열 내란 이후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뜨거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기성 정치인 몇몇을 바꾸는 데서 그칠 수 없는, 전방위적인 사회 대개혁의 목소리입니다. 국회와 사법기관부터 시작해 우리가 발 딛고 선 일상까지, 사회 구석구석을 바꾸자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한겨레21이 ‘오픈마이크’로 이어갑니다. —편집자 주





“‘정인이 사건’ 터졌을 때 정인이도 이름이 두 개였잖아요. 저도 제가 입양된 걸 알았을 때 ‘그럼 다른 이름 하나는 어디 있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기서부터 출발했던 것 같아요.”



광장은 사적인 이야기를 사회·정치적 의제로 확장하는 힘이 있었다. 개인적인 일로만 여겨졌던 이야기가 광장을 매개로 사회 문제가 됐다. 입양당사자의 알 권리와 청소년 임신 대책을 촉구한 전주 시민 김서희씨(입양 당시 이름)도 그랬다.



생부모를 찾지 말라는 사람들

서희씨는 스무 살 넘어 자신의 입양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입양 정보가 담긴 서류를 찾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말렸다. “그냥 찾지 마. 굳이 왜 네가 상처 받아? 이거 친척들이 알면 큰일 나. 이런 얘기를 하도 많이 들으니까 ‘딱 내 이름까지만 알고 그 다음부터는 더 알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입양 정보를 모르는) 그 상황이 문제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입양 당사자는 생부모의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직접 발로 뛰어도 정보 접근이 어려웠고 양부모의 동의도 필요했다. “서류를 찾는 과정이 특히 어려웠어요. 제가 입양된 시기는 지금처럼 국가기관이 하지 않고 입양기관이 서류를 발행하던 시기여서요. 입양 기관을 어렵게 수소문해 연락했더니 ‘이모를 통해 입양된 경우라 입양 서류를 찾으려면 외가 쪽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어머니 허락 없이는 발급할 수 없는 서류인데 어머니는 거절하셨고요. 제가 끝까지 우겨서 허락을 받고 입양기관에 증명서를 보내서 겨우 받은 서류가 이거예요.”



김서희씨 ‘입양아동 배경보고서’ 갈무리.

김서희씨 ‘입양아동 배경보고서’ 갈무리.


생부는 만 19살, 생모는 만 17살이었다. 생모는 출산 9개월 때 학교를 떠나 미혼모 쉼터에서 서희씨를 낳았다. 학생 신분으로 키우기 어려워 입양을 의뢰했다. 서류에 적힌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놀랐죠. 서류를 찾았을 때의 저보다 더 어렸거든요. 그렇게 어린 사람이 애를 낳았다니….”



구체적인 질병 정보도 없었다. 어머니 쪽 병력은 ‘없음’, 아버지 쪽 병력은 ‘미상’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생모가 생부에게 ‘임신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했다’는 대목을 보면, 생부의 질병 정보는 아예 수집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불안할 때가 있어요. 암이나 치매처럼 성인 돼서 병이 발현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데 서류에 질병 정보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럼 나는 어디서부터 뭘 대비해야 되지’라는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입양’이라는 단어는 수개월 뒤 낯선 땅에서 또 만났다. “영국 어학 연수를 갔을 때 입양 홍보 부스를 발견한 거예요. 물어보니까 부스 담당자가 ‘누구나 아이를 입양할 자유가 있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라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도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 있구나. 한국에선 왜 안 되지? 궁금증이 커지더라고요.”





‘오픈마이크’에서 처음 드러내다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입양 당사자의 생부모 찾는 절차나 정보 접근권, 생애 등 여러 키워드로 검색해 봤지만 논문도, 책도 제대로 나오는 것이 없었다. 인터넷 정보도 부정확했다. 접할 수 있는 입양 관련 정보는 양부모 관점이거나 종교생활 위주였다. 당사자의 관점이 담긴 이야기는 찾기 어려웠다. “부모님 입장에서 가족이 구성되면 좋다, 아니면 제가 종교를 통해서 어떻게 구원받았다 같은 얘기만 있었어요. 저 같은 당사자 얘기는 어디에도 없는 거죠. 거기에 대한 불편함과 답답함을 안고 있다가 최근에 빵, 하고 터진 것 같아요.”



서희씨는 탄핵 촉구 집회를 계기로 열린 오픈마이크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로 결심했다. 어디서도 찾을 수 없던 ‘나 같은 사람’(입양 당사자)을 만나고 싶었다. 먼저 다양한 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낸 시민들에게 용기 얻었다. 2025년 1월15일, 서희씨는 전북 전주의 오픈마이크에서 스스로를 “2000년 7월25일 새벽 5시27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고 광주영아일시보호소에서 지내다 입양된 국내 입양 당사자”라고 소개했다.



김서희씨가 2025년 1월15일 전북 전주의 오픈마이크에서 자신의 입양당사자 정체성을 발언한 뒤 홀가분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본인 제공

김서희씨가 2025년 1월15일 전북 전주의 오픈마이크에서 자신의 입양당사자 정체성을 발언한 뒤 홀가분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본인 제공


2023년 12월 윤석열 정부는 민간 위주의 입양 체계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체계로 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입양자 나이 제한 폐지’와 ‘국내로 들어오는 국제 입양’도 약속했다. 하지만 서희씨는 회의적이다. “정책에 대한 숙고가 너무 없어서 기분 나빴어요. 제가 올해 26살로 어머니(74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현실적으로 세대 차이며 경제적 부양 문제가 안 나올 수 없거든요. 국외 입양은 더하죠. 다문화 가정만 해도 학교에서 여러 일들이 발생하는데요. 그런 걸 해소 않고 바로 나이 제한 폐지, 국제 입양한다는 건 너무 섣부른 얘기 같아요. 입양당사자 권리를 말하려면 가족 구성권과 여성의 재생산권을 함께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얘기는 또 안 하잖아요.”



청소년 임신도 마찬가지다. 자극적 이미지만 난무하고 정확한 정보와 대책은 없다시피하다. “학교에서 청소년 임신을 토론 주제로 꺼내면 청소년들은 이른 나이에 성관계할 수 있다고만 생각해서 ‘부럽다’는 반응이거든요. 발달이 덜 된 상태에서 임신할 경우의 피해에 대한 생각은 잘 못하는 거죠. 반면 어른들은 청소년 임신 자체를 너무 큰 불행으로 보고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고. ‘고딩엄빠’ 같은 방송 프로그램도 청소년이 철이 없다, 어른 말 안 들으면 이렇게 된다는 식으로만 보여주고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내가 이야기해야 될 건 뭔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의제화되지 않은 언어에도 귀 기울여달라”



서희씨는 전주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사회 과목을 가르친다. “나를 위해서도 제 생모·생부를 위해서도 결국 청소년 교육 의제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기회가 되면 향후 대학원에 진학해 관련 연구도 하고 싶다.



아직 의제조차 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깔끔한 ‘공약’으로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사회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럴수록 정치인들이 시민의 ‘복잡한’ 언어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서희씨는 말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언어화되지도 않은 것들이 문제라고 나오잖아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치인이면 그걸 들으라고 하는 것밖에 답이 없지 않겠어요.”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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