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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억압 이겨낸 그림책, ‘배고픈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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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억압 이겨낸 그림책, ‘배고픈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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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에릭 칼 (1929~2021)



부모님은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였다. 미국에서 계속 살았으면 제2차 세계대전을 무탈히 넘길 수 있었을 텐데, 향수병 때문에 1935년에 가족은 독일로 돌아간다. 1939년에 유럽에서 전쟁이 터지자 아버지는 독일군에 징집당했고 얼마 뒤 소련에 포로로 잡혔다. 에릭 칼은 어린 나이에 참호 파기 노역에 동원되어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다.



나치 치하에서 청소년 시절을 겪었다. “히틀러는 정치만 독재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술에서도 독재를 했다.” 히틀러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미술에 ‘퇴폐 미술’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작품을 빼앗아가고 전시를 금지했다. “전쟁 때에는 색채가 없었다. 모든 것이 회색과 갈색뿐이었다.”



학교에 용기 있는 미술 선생님이 있었다. 에릭 칼을 집으로 불러, 나치가 금지하던 작가들의 작품을 몰래 보여주었다.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크 샤갈, 파울 클레와 같은 아름다운 색채 화가의 작업이었다. 에릭 칼은 특히 프란츠 마르크가 그린 푸른 말 그림에 감동했다. “본 것을 입 밖에 내지 말고 기억해두렴.” 선생님의 말을 에릭 칼은 마음에 새겼다.



전쟁이 끝난 뒤 1952년에 에릭 칼은 미국으로 향했다. 광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1967년에 첫 그림책 ‘갈색 곰아, 갈색 곰아, 무엇을 보고 있니?’를 냈다. 서른여덟살에 데뷔한 늦깎이 작가였다. 1969년에 ‘배고픈 애벌레’를 그렸다. 원래는 책벌레를 그리려 했는데, 편집자의 제안에 따라 애벌레가 나비로 변신하는 이야기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 작품이 전세계 어린이의 사랑을 받으며 에릭 칼은 큰 성공을 거둔다.



에릭 칼의 그림책은 어린이도 어른도 좋아한다. 강렬한 색의 아크릴 물감을 칠해 색종이를 만든 뒤, 이를 잘라 붙이는 콜라주 방식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그의 작품은 다채롭고 선명한 색채로 유명하다. 선생님이 몰래 보여준 샤갈과 마르크의 색채가 평생 에릭 칼의 마음속에 살아 있던 것이다. 2021년 5월23일에 세상을 떠났다. 아흔한살의 나이였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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