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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법관대표회의는 ‘법 기술’ 아닌 ‘정의’를 논해야 한다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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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법관대표회의는 ‘법 기술’ 아닌 ‘정의’를 논해야 한다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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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19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사법농단’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판사들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고양/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18년 11월19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사법농단’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판사들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고양/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춘재│논설위원



오는 26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 판결이 정식 안건에서 제외됐다. ‘조희대 대법원’의 선거 개입 의도가 의심되는 이 판결 때문에 소집된 회의인데, 정작 해당 판결의 문제점을 다루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법 판결 이후 벌어진 일들이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지 여부가 주로 논의될 것이라고 한다.



애초 법관대표회의 소집을 요구한 판사들은 대법 판결의 절차적 정의와 정치적 중립성을 문제삼았다. 조 대법원장 주도로 전례 없는 속도전이 이뤄진 배경에 대법원장의 정치적 편향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다. 대법원 소부 심리도 없이 대법원장 직권으로 전합에 회부하고, 9일 만에 단 두 차례 평의를 거친 뒤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파기환송심도 대법원으로부터 기록을 전달받자마자 공판기일을 잡고 소환장 및 기일 통지 발송에 이어, 집행관 송달을 촉탁했다. 이런 전례 없는 속도전을 ‘통상 절차에 따른 재판’이라고 강변한다고 고개를 끄덕일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문제를 제기한 판사들은 조 대법원장이 사법부 신뢰를 떨어뜨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8일 126명의 법관 대표를 상대로 회의 소집 여부를 물은 투표 결과는 국민 대다수의 기대와 한참 벗어났다. 회의 소집을 반대하는 의견이 월등하게 많아 투표를 하루 연장한 끝에 소집 정족수 26명을 가까스로 넘겼다. 민주당이 ‘조희대 특검법’과 ‘대법관 30명 증원’, ‘법 왜곡죄 판사처벌법’ 등을 밀어붙이는 것에 판사들이 강한 반감을 품은 탓이라고 한다. 민주당이 최근 제기한 지귀연 판사의 ‘룸살롱 접대’ 의혹도 마찬가지다. ‘판사 뒷조사’, ‘좌표 찍기’ 같은 말들이 판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대선을 불과 8일 앞두고 열리는 법관대표회의가 국민의 표심과는 결이 다른 결과를 낳을 분위기다.



2018년 ‘사법농단’ 사태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해 11월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의 재판 개입 행위를 ‘탄핵소추 사안’으로 규정했다. 발표문은 결연했다. “우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하여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을 자문해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하여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 절차 진행에 관하여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징계 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법관 대표 105명이 3시간여 토론 끝에 과반수인 53명 동의로 채택했다. ‘법원이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건 옳지 않다’며 반대표를 던진 판사들은 사법부의 자정 노력을 강조했다. 법관 대표들이 개혁의 필요성에는 이구동성으로 공감한 것이다. 여론은 그런 판사들에게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7년 만에 법원의 기류가 확 바뀐 이유는 뭘까. 판사들은 문재인 정권 때의 사법농단 수사를 지목한다. 무려 100여명의 판사가 검찰청에 불려가 ‘수사 협조 안 하면 피의자’라는 협박과 수모를 당했던 집단 트라우마가 법원의 조직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윤석열(서울중앙지검장)-한동훈(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수사를 지휘했지만, 문재인-조국(민정수석)이 방관했다는 이유로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법원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조 대법원장이 ‘김명수 대법원’의 사법농단 대책을 원위치시킨 것에 판사들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판사들의 이런 내부 사정을 국민은 잘 모르고, 안다고 해도 편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다수 국민은 하루빨리 12·3 내란이 종식되고, 내란 세력이 척결되길 바란다. 그래야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그 시발점이 돼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의 12·3 내란 침묵과 속도전,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은 국민의 이런 염원에 반한다. 내란 우두머리가 버젓이 활개 치고 돌아다니는 게 과연 합당한가.



재판관의 판결은 단순한 법리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떠한 공동체를 가질 것인지 고민한 흔적을 담아야 한다. 법을 통해 공동체의 가치관을 발굴해 내는 것이 재판관이 해야 할 일이다. ‘법 기술’로 세상을 현혹하는 건 법을 모독하는 행위다. 법과 관련된 모든 논의는 궁극적으로 정의의 문제로 귀착된다. 전국법관대표회의도 마찬가지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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