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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마술봉으로 재건축의 미로를 밝히다" 레디포스트 곽세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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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마술봉으로 재건축의 미로를 밝히다" 레디포스트 곽세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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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수백 명의 조합원들이 체육관에 모여 투표하는 과정은 아날로그 시대의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서류더미 속에 묻힌 서명지, 인원 확인을 위해 날카롭게 울리는 확성기,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는 총회. 불과 몇 년 전까지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다.

"당시 한 조합 이사장님이 '오늘도 정족수 못 채우면 어쩌나' 걱정하며 전화기를 붙들고 있더군요.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종이 서류들, 동의서 하나 위조 여부로 분쟁까지 가는 상황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레디포스트 곽세병 대표(39)가 2021년 9월 '총회원스탑'이란 서비스를 내놓기 전의 현실이다. 그로부터 3년, 같은 재개발 현장의 풍경이 달라졌다. 스마트폰으로 본인인증 후 안건을 확인하고, 클릭 몇 번으로 투표하는 조합원들.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결과. 정족수 부족으로 사업이 무산될 위기였던 한 조합은 온라인 참여로 37%의 참석률을 기록하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아날로그 미로 속 디지털 지도를 그리다

SK플래닛 출신인 곽세병 대표가 창업을 결심했을 때는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이 목표였다. 하지만 시장 조사 과정에서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분석보다 더 시급한 문제를 발견했다.

"초기 6개월간 16개 서비스를 검토했어요.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장을 살펴봤죠. 그러다 '총회'라는 지점에서 '아하 모먼트(Aha moment)'가 왔습니다. 수만 명이 참여하는 사업에서 여전히 종이와 도장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모습은 충격적이었거든요."


'총회원스탑'은 레디포스트가 개발한 재건축·재개발 조합용 온라인 총회 통합 플랫폼이다. 전자투표, 전자동의서, 온라인 총회를 국내 최초로 구현하며 실증특례 3관왕이라는 성과를 이뤘다. 단순한 온라인 투표 시스템이 아니라 조합원 명부 관리부터 의결권 계산, 실시간 총회 진행, 결과 보고까지 통합된 솔루션이다.

법의 장벽을 뚫는 디지털 혁신

"총회는 법적 의결권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기존 법령에서는 우편이나 직접 참석만 인정했어요. 법적 근거 없이는 온라인 투표가 무효화될 위험이 있었죠."

곽세병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에 도전했다. 그 결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토교통부의 실증특례를 획득했다. '전자투표', '온라인 총회', '전자 동의서' 세 가지 영역에서 국내 최초로 합법적 디지털 전환을 인정받은 것이다.


"저희가 단순히 기술만 개발한 게 아닙니다. 정부 부처, 법률 전문가, 조합 관계자들과 수백 번 논의하며 법적 근거를 마련했어요. 도시정비법에는 전자투표나 온라인 총회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거든요."
기술적 신뢰 확보도 관건이었다. 총회원스탑은 전자문서 공인기관과 연계해 본인 인증, 위변조 방지 체계를 구축했다. 실제 법적 분쟁에서 총회원스탑의 기록이 증거로 인정된 사례도 있다.

"한 조합에서 특정 조합원이 자신이 투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적이 있어요. 저희 시스템은 IP 주소, 기기 정보, 인증 기록까지 모두 보관하고 있어요.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받았습니다. 기술이 신뢰를 만드는 순간이었죠."




도은주 레디포스트 전략기획 총괄(사진 왼쪽)과 곽세병 대표(오른쪽)

숫자로 증명된 시장 혁신

총회원스탑의 성과는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누적 200회 이상의 총회를 진행했으며, 조합원 35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주목할 점은 온라인 총회 참여율이 오프라인 대비 2~3배 이상 높다는 것이다.

"정족수 미달은 재건축 사업의 최대 걸림돌이었어요.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는 조합원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어 물리적 참석이 어렵죠. 온라인으로 접근성을 높이니 참여율이 확 올라갔습니다."
레디포스트의 경쟁력은 단순히 첫 주자였다는 점을 넘어선다. 국내 최초 실증특례 승인, 공인 전자문서 체계, 직관적인 UI/UX, 전문 컨설팅팀 운영, 조합 맞춤형 솔루션 등이 차별화 포인트다.

"저희 UX 디자이너들은 70대 어르신들과 함께 앉아 화면을 설계했어요. '이 버튼이 잘 안 보인다', '글씨가 작다' 같은 피드백을 직접 들으며 개선했죠. 기술의 본질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도시정비의 디지털 인프라를 꿈꾸다

사무실 한편에 놓인 화이트보드에는 '원스탑빌리지'라는 단어가 크게 적혀 있다. 곽세병 대표가 그리는 다음 단계다.
"총회는 도시정비사업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이제는 조합 운영 전반으로 디지털화를 확장하고 있어요. 예산 관리, 서류 보관, 대지권 산정, 분양 신청까지 모든 과정을 디지털로 관리하는 거죠."

레디포스트의 향후 계획은 '원스탑빌리지'로 확장하여 도시정비 행정 전반을 디지털화하고, 상업용 부동산과 집합건물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다. 5~7년 내 IPO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도시정비사업은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예요. 그동안 조합 집행부는 여러 번 바뀌고, 서류는 분실되기 일쑤죠. 저희는 이 모든 과정의 기록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도시정비의 OS'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곽세병 대표는 자신이 생각하는 기술의 본질을 이야기했다.

"기술은 결국 사람들 사이의 불신과 갈등을 줄이는 도구여야 해요. 재개발 현장에선 '누가 그걸 결정했느냐', '언제 그런 공지가 있었느냐'는 질문이 늘 갈등의 씨앗이었죠. 우리 기술은 이런 의문 자체를 없애는 겁니다. 모든 조합원이 같은 정보를 보고, 같은 플랫폼에서 의사결정하니까요."

서류 더미에 묻혀 있던 도시정비사업의 복잡한 절차들이 이제 투명한 디지털 화면 위로 올라왔다. 곽세병 대표가 선보인 '디지털 마술봉'이 어두운 재건축의 미로를 밝히고 있다. 남은 과제는 이 빛이 도시정비 현장 구석구석까지 닿게 하는 것이다.



문지형 스타트업 기자단 1기 기자 jack@rsqua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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