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머니투데이 언론사 이미지

트럼프 공격 받아넘긴 남아공 대통령의 대화법…"젤렌스키와 달랐다"

머니투데이 김종훈기자
원문보기

트럼프 공격 받아넘긴 남아공 대통령의 대화법…"젤렌스키와 달랐다"

속보
내란 특검 "조은석-윤석열 직접 대면 조사 가능성 없어"
대표단으로 참석한 남아공 골프 전설들 언급하며 대화 분위기 환기…트럼프 "끔찍" 비난에는 "대화해보자"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왼쪽)이 21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 중인 모습./로이터=뉴스1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왼쪽)이 21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 중인 모습./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남아공 내 백인 학살 의혹을 제기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외신들은 라마포사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근거 없는 주장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공격을 받아넘겼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라마포사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남아공 내 백인들이 탄압을 받는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 자료를 들고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료를 라마포사 대통령 앞에 흔들어 보이며 "많은 사람들이 박해받는다고 느껴 미국으로 오고 있다. (남아공 내 백인 농부들의) 땅은 몰수당하고 많은 경우 살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서진에게 조명을 줄여달라고 하고는 남아공 내 백인 차별, 폭력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재생하기도 했다.

남아공 내 백인들이 흑인들의 폭력에 노출됐다는 의혹은 미국 우파들 사이에 떠도는 음모론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때부터 이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옹호했다. 2기 행정부 들어서는 남아공에 대한 원조를 모두 중단하고 주미 남아공 대사를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남아공에 대해 30% 상호관세를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특히 문제시하는 것은 남아공의 토지수용법이다. 버려졌거나 투기 목적으로 보유한 토지를 공익에 부합하는 경우에 한해 국가가 수용할 수 있게 한 법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남아공은 인구의 8%밖에 되지 않는 백인이 사유지 75%를 소유하고 있다. 반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흑인은 사유지 3%만을 소유한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 같은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며 토지수용법에 서명했지만 아직 법에 따라 수용된 토지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농부 1000명 이상 시신이 집단 매장된 장소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끔찍하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라마포사 대통령이 이런 대화를 예상했던 듯하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달리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도록 침착함을 유지했다고 평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3월 미국과 광물협정 체결을 앞두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에 나섰으나 설전 끝에 모든 일정을 취소당하고 백악관에서 사실상 쫓겨났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남아공 유명 골프 선수들을 대표단으로 데려와 달라는 트럼프 대통령 요청에 따라 어니 엘스, 레티프 구센 등 백인 골퍼들을 데려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아공에는 골퍼들이 정말 많다. 물에 뭔가 있는 것 아니냐"고 농담하자 "물 때문이 맞다"며 농담을 받았다.

또 남아공 대표단에는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의 모기업인 리치몬트의 요한 루퍼트 회장도 있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만약 아프리카너(남아공에 정착한 백인들) 농부들에 대한 대량 학살이 있었다면 이 세 분은 여기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 헌법은 모든 남아공 국민들을 보호한다"고 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백인 농부가 폭력에 노출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범죄 피해자는 흑인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별당하는) 농부들은 흑인이 아니"라고 말을 끊자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러한 우려 사항에 대해 대화할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날 정상회담에는 남아공 출신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도 자리를 함께 했다. 머스크 CEO는 과거 "난 흑인이 아니라서 스타링크를 남아공에서 운영할 수 없다"며 남아공 내 백인 차별을 주장한 적이 있다.

리치몬트의 루퍼트 회장은 남아공 내 범죄 피해자는 대부분 흑인이라는 라마포사 대통령 발언을 재차 강조하면서 "범죄와 싸우려면 남아공 경찰서에 스타링크가 필요하다"며 도움을 청했다.


회담 말미에 취재진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카타르 왕실에서 선물받은 여객기 문제에 관한 질문을 하려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 얘기는 하지 말라"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에 라마포사 대통령은 "난 줄 비행기가 없다"고 농담을 건넸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위치한 위트워터스랜드 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평론가 카야 시트홀은 FT 인터뷰에서 "곧 험악해지겠다 싶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라마포사 대통령이 자제력을 발휘해 (회담을) 잘 해냈다"고 평했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