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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권위, 3년여 우여곡절 끝 ‘수요시위 방해 중단’ 인용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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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권위, 3년여 우여곡절 끝 ‘수요시위 방해 중단’ 인용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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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낮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열린 제17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4일 낮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열린 제17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혐오 단체의 수요시위(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방해행위를 막아달라는 진정에 대해 법적 근거 없이 ‘자동 기각’해 논란이 됐던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결정이 뒤집혔다. 집회를 먼저 신고한 극우 단체의 우선권을 보장하라고 했던 권고도 “경찰이 방해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바로잡혔다. 자동 기각 논란과 이에 따른 인권위의 파행, 법정 다툼 등 3년여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뤄진 결정이다.



서울 종로경찰서를 상대로 수요시위 보호 진정을 인권위에 냈던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21일 한겨레에 “인권위로부터 진정 사건 인용 결정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인권위 관계자도 “경찰이 수요시위 방해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문이 진정인 쪽에 송부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정은 지난달 24일 침해2소위 회의에서 의결됐다고 한다. 침해2소위는 ‘경찰의 수요시위 방해에 대한 부작위 진정사건’과 관련해 “수요시위가 반대집회 쪽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에 대한 명예훼손 및 모욕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찰이 적극 개입할 것과, 집회신고로 선점된 장소에 대하여도 시간과 장소를 나누어 실질적인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도록 하는 등 정기 수요시위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하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위는 지난 2022년 1월13일 “일부 단체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대포 소리 등을 내며 집회를 방해함에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경찰이 그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긴급구제 신청에 따라 상임위에서 긴급구제를 의결했다. 하지만 2023년 8월1일 이 진정에 대한 본안 심의를 한 침해1소위에서는 뜻밖에도 ‘자동기각’ 결정을 했다. 당시 침해1소위 위원장 김용원 상임위원은 “위원 3인이 모두 인용에 찬성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각된다”며 본인만의 인권위법 해석에 따라 의사봉을 두드린 뒤 퇴장했고, 이는 이후 인권위 파행의 방아쇠가 됐다. 침해조사국장과 조사총괄과장이 다른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김 상임위원이 이들에 대한 인사 조처를 요구하며 침해1소위 회의를 넉달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김용원 상임위원은 ‘소위원회에서 의견 불일치 때의 처리’ 안건을 이충상 상임위원 등과 함께 발의해 14번이나 재상정을 거듭하다 지난해 10월 전원위에서 통과시켰다. 지난해 12월18일 침해1소위 회의에서는 “소녀상 주변에 집회신고를 하여 집회 우선권이 있음에도 강제로 집회 장소를 분할하고 신고 장소가 아닌 장소에서 집회를 개최토록 강요하고 있다”며 종로경찰서장을 상대로 진정을 낸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김병헌 대표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의 자동 기각 논리와 이후 행보가 법원의 판단조차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도 일었다. 지난해 7월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나진이)는 “자동 기각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다만 수요 시위 진정 사건에 한해서는 자동기각에 대한 법원의 ‘위법’ 판단에 따라 기존 관할 소위인 침해구제 제1위원회(침해1소위)에서 침해구제제2위원회(침해2소위)로 옮겨 다시결정이 이뤄졌다. 침해2소위는 그동안 소위원장을 맡아온 이충상 위원장이 지난 3월 사직하면서 남규선 상임위원이 이끌어왔다. 남 상임위원은 19일로 임기를 마쳤다.



인권위의 이번 결정은 앞선 인권위의 태도에 견줘 새삼스럽지 않다. ‘바로잡힌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2008년 1월 인권위는 전원위원회에서 “신고된 2개 이상의 집회 사이에 장소 중복이 발생한 경우라 하더라도 집회 당사자 사이에 집회 일시나 장소를 조정하도록 하거나 경찰력을 이용해 충돌·방해 가능성을 미리 방지하여 신고된 집회가 모두 개최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을 경찰청장에게 권고한 바 있다. 침해1소위에서도 2009년 12월 같은 취지의 권고를 했고, 2022년 11월엔 선순위로 집회를 신고하고 후순위 집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거나 방해하기 위한 목적의 집회를 ’알박기 집회‘로 규정하고 관할 경찰서장에게 선·후순위 집회가 모두 온전히 보장되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침해2소위는 이번 결정을 통해 ‘반대집회 참가자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등 모멸적인 방식으로 시위를 진행한 점’을 지적하고 ‘수요시위 진행 시간대에 집회신고를 하여 장소를 여러 곳 선점만 하고 일부 장소에선 어떠한 집회도 개최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오로지 수요시위를 방해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판단하며, 수요시위 방해에 대해 종로경찰서가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고 한다.



이번 재결정에 대해 이나영 이사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마땅하고 당연한 일인데 너무 지연됐다. 국가인권위가 몇몇 반인권적 인사들에 의해서 파행적 행태를 보여왔으나 아직도 인권위의 위상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고 고민하는 많은 분이 내부에 계시다는 걸 확인했다”며 “지금 수요집회 보호 진정 건은 단순히 어떤 하나의 집회를 보호하는 차원이 아니고 역사를 훼손하고 진실을 부정하며 피해자들을 계속 모욕해온 극우 내란 세력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서 반갑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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