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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추라기 '육추'로 생각하는 우리말 [달곰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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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추라기 '육추'로 생각하는 우리말 [달곰한 우리말]

서울구름많음 / 4.4 °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부터 우리 집엔 작은 메추리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예쁜 조약돌 같은 알들을 들인 날, 딸아이는 5분에 한 번씩 온도계를 확인하고, 아침저녁으로 알 방향을 바꿔주었다. 간식 먹을 때도 부화기를 들여다보고, 자고 일어나 눈을 비비면서도 온도가 적당한 지부터 살폈다. 어쩌다 제 오빠가 큰 목소리를 낼 때면 알들이 스트레스 받는다며 세모눈을 하고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숨죽여 곁을 지켰다.

기다리는 건 설렜고, 책임감도 함께여서 메추리 키우는 주의사항이 적힌 글을 살펴봤는데, 제목에서부터 멈칫했다.

<메추라기 육추 방법>…

아, '메추리'가 표준어가 아니었나? '메추라기'가 맞는 말인가? '육추'라는 낯선 한자어는 아이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먼저, '메추리'와 '메추라기' 둘 다 표준어가 맞다. 오래 전부터 사용된 건 '메추라기'로 15세기 문헌에 남아있는 '모ᄎᆞ라기', '뫼ᄎᆞ라기'를 거쳐 '메추라기'로 불리는데, 멧돼지 멥쌀 메아리처럼 산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메-(뫼)'에, 병아리나 새끼 새를 뜻하는 한자 '추(雛)', 그리고 작은 동물이나 새끼의 의미를 지닌 '–라기' 가 붙은 걸로 보는 가설이 있다. 즉, '산(야생)에 사는 병아리 같은 작은 새'라 할 수 있겠다.

풀숲에 숨었다 나타났다 하며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모습이 옛 사람의 눈길도 붙잡았던지, 조선 시대엔 얼룩덜룩 남루한 옷을 입고 거친 환경에서도 안빈낙도하는 삶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다 닭, 오리처럼 사람 필요에 의해 길들여져 가금류(家禽類)로 길러지는데, 겨울철새인 야생 메추리가 그렇듯 짧은 거리를 날 수 있고, 품종은 더 다양해졌다.


나는 자꾸 마음이 복잡해진다. 부화 2주 만에 노란 털이 보송보송한 '솜병아리' 태를 벗고, 어린 새의 여린 '부등깃'으로 하얗게 옷을 갈아입고 있는 우리 집 메추리가 답답하고 외로워 보여서다. 털도 다 마르지 않았을 때, 부화에 실패한 다른 알들을 부리로 쪼아보고, 그 옆에 몸을 웅크리던 모습도 그랬다. 홀로 심심하다는 듯 삐- 삐- 소리를 내다가 가까이에서 말을 걸어주면 그걸 듣는 듯 조용해지는 지금 모습도 그렇다.

넓은 데서 친구들과 함께여야 좋지 않을까. 작은 생명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키우는 육아(育兒)도 서툰 나에게, 병아리를 기르는 '육추(育雛)' 역시 고민의 연속이다. 오늘은 꼬마 숙녀와 함께 아기 새가 행복하게 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좀 해봐야겠다.

최혜림 S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