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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21일. 종교적 이유로 군 입대를 거부한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처음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사법 역사상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사진=이미지투데이 |
2004년 5월 21일. 종교적 이유로 군 입대를 거부한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처음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사법 역사상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었다.
당시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병역 소집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 오모씨(당시 22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 정모씨(당시 23세)와 예비군 소집 훈련을 거부한 황모씨(당시 32세)에 대해서도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병역법상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호 대상이 충분한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심의 자유는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해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 사항에 관한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해 600여명 안팎으로 추산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연간 징병 인원 30만여 명의 0.2%에 불과해 국가 방위력에 미치는 정도가 미미하다"며 "국가를 위해 군인이 필요하다 해도 모든 국민이 군인이 될 필요는 없으며 대체복무제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한다면 고의적 병역기피자를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양심에 따른 병역 기피'의 판단 기준으로 △오직 양심에 따른 결정임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과정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특별한 사정 △거부 결정 전후 종교나 양심과 관련된 지속적인 사회 활동 여부 등을 제시했다. 실제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된 여호와의증인 신자 조모씨(당시 23세)에 대해서는 "소명이 충분하지 못하다"며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당시 병무청은 이런 판결에 강하게 반발하며 '양심'을 합법적인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병무청은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안보 환경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다면 병역의무 이행의 기본질서가 와해돼 국가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며 "종교적 신념에 의한 대체복무를 인정할 경우 종교상 특혜시비가 있을 수 있는 만큼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특정 종교인들에 대한 병역 상 혜택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무죄 선고를 받은 오씨, 정씨, 황씨 등 3명에 대해 재입영을 통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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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의 의무' 강조했던 대법원, 14년 만 '양심'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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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판결이 '양심적 병역기피자는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이후 그해 7월 15일 종교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최모씨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도 관심이 쏠렸다.
당시 대법원은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중 후자를 택했다. 대법관 13명이 모두 참여한 전원합의체는 종교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최모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교적 양심 실현의 자유도 국가의 안전이 보장된 다음에야 가능한 상대적 자유"라며 "남북이 분단돼 대치하고 있는 현실적 안보 상황을 고려할 때 국방의 의무가 보다 강조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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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태극기와 법원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사진=뉴시스 |
그러나 이날의 '유죄'는 14년 뒤 '무죄'가 됐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교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해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창원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
오씨가 2003년 처음 입영 통지를 받은 이래 현재까지 신앙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것, 아버지와 동생도 같은 이유로 옥살이를 한 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데도 형사처벌 받을 위험을 감수한 점 등을 "양심과 신념의 진실성"을 인정하는 근거로 받아들인 것이다.
양심적 자유가 병역 의무라는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한 가치라고 인정해 "사법처리하는 것은 양심 자유에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의 이유를 밝혔다.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형사 처벌은 불가피하나,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1항에 대해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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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시 36개월 합숙 복무…기본권 침해? "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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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대체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2020년 10월 도입된 대체복무제도에 따라 교도소 등 교정시설에서 36개월간 합숙 복무한다.
육군과 해병대는 18개월, 해군은 20개월, 공군과 사회복무요원은 21개월을 복무하지만, 대체복무 요원은 36개월간 복무한다. 청구인들은 현행 대체복무제가 '대체 처벌'에 해당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현행 대체복무제도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5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를 규정하는 '대체역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기각했다.
헌법재판소는 "현역병은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수고와 인내력이 요구되고, 군사훈련에 수반되는 각종 사고와 위험에 노출된다"며 "이같은 군사 업무의 특수성과 군사적 역무가 모두 배제된 대체복무 요원 복무 내용을 비교해볼 때 36개월 복무기간은 대체역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징벌을 가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합숙 강제에 대해서도 "현역병과 비교했을 때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체복무 요원 생활공간에 CC(폐쇄회로)TV를 설치하는 것, 대체복무 요원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은 "병역기피자 증가 억지와 현역병의 박탈감 해소에만 치중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사실상 징벌로 기능하는 대체복무제를 구성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다"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남겼다.
이은 기자 iame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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