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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리포트] '약국의 90%가 쓰는 IT서비스' 혁신 위해 가운 벗은 김슬기 바로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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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리포트] '약국의 90%가 쓰는 IT서비스' 혁신 위해 가운 벗은 김슬기 바로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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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의약품 주문 통합 서비스 개발
AI 기능과 건강기능식품 개발해 해외 진출 추진

국내 약국의 대부분이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가 있다. 약국에서 약품을 주문할 때 사용하는 의약품 주문 통합서비스 '바로팜'이다. 바로팜은 국내 2만5,000개 약국 중 약 90%인 2만1,500개 약국이 사용한다. 시장을 휩쓴 소프트웨어를 만든 신생기업(스타트업) 바로팜은 두 명의 약사가 2019년 창업했다. 세상의 혁신을 위해 가운을 벗고 사업에 뛰어든 이들은 약국에 인공지능(AI) 도입까지 준비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로 바로팜 사무실에서 김슬기(42) 대표를 만나 이들이 일으킨 혁신에 대해 들어봤다.

바로팜을 창업한 김슬기(오른쪽) 대표와 신경도 부대표가 17일 서울 강남구 역삼로 사무실에서 국내 최초로 선보인 약국의 약품 주문 통합 서비스 '바로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바로팜은 전체 약국의 약 90%가 사용하면서 약사들의 필수 서비스가 됐다. 정다빈 기자

바로팜을 창업한 김슬기(오른쪽) 대표와 신경도 부대표가 17일 서울 강남구 역삼로 사무실에서 국내 최초로 선보인 약국의 약품 주문 통합 서비스 '바로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바로팜은 전체 약국의 약 90%가 사용하면서 약사들의 필수 서비스가 됐다. 정다빈 기자


국내 최초로 약품 주문을 통합


김 대표의 창업 동기는 불편함이다. 전남대 약학과를 나와 서울 도곡동에서 12년간 약국을 운영한 그는 약품을 주문할 때마다 힘들었다. 제약사와 의약품 도매상들이 각기 다른 인터넷 주문 사이트를 운영해 여러 가지 약을 주문하려면 사이트를 여러 개 띄워 놓아야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대한약사회 활동을 하며 만난 신경도(41) 부대표와 2019년 창업했다. 조선대 약학과를 나온 신 부대표도 수원에서 10년 이상 약국을 운영했다. 이들은 2년간 개발을 거쳐 2021년 국내 최초로 의약품 주문 통합서비스 바로팜을 내놓았다.

바로팜은 제약사와 도매상들이 입주해 있어 여러 개 주문 사이트를 띄울 필요 없이 한 군데서 약품 주문이 가능하다. 덕분에 30분 이상 걸리던 약품 주문 시간이 10분 이내로 줄었다. 이뿐만 아니라 바로팜은 재고 부족 약품을 미리 파악해 도매상에 해당 약품이 들어왔을 때 알려주는 품절 알림 등 약국 운영에 필요한 100가지 이상의 기능을 갖고 있다. "매일 1만 건 이상 품절 알림 신청이 들어올 정도로 약국에서 많이 이용해요. 앱과 인터넷 메신저 '카카오톡'을 통해 품절 약품이 입고되면 알려주죠."

약품을 싸게 주문하는 기능도 있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전문의약품이 아닌 소화제나 두통약 등 일반 의약품은 도매상마다 공급 가격이 다르다. 당연히 약국에서 판매하는 가격도 조금씩 다르다. "각 약국에서 거래하는 도매상들의 일반 의약품 공급 가격을 비교해 주는 기능이 있어서 이를 이용하면 약품을 싸게 공급받을 수 있죠."

그렇다 보니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약국의 필수 서비스가 됐다. 특히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될 때 품절 의약품이 늘며 급속도로 퍼졌다.


다만 반품이 불편하다는 지적이 있다. 약국들에 따르면 미개봉 약품은 반품 횟수를 제한하고 개봉 의약품은 포인트를 모은 금액만큼 낱개 반품만 된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제약사와 도매상의 반품 정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약사와 도매상마다 반품을 안 받거나 일부만 받는 등 정책이 모두 달라요. 그런데 원망은 우리가 듣죠. 약국을 대신해 제약사와 도매상에 반품 정책 변경을 건의하지만 억지로 바꿀 수 없어 답답해요."

점점 늘어나는 의약품 시장


바로팜은 약사들만 이용할 수 있다. 회원 가입 때 약사 면허증이나 건강보험심사원이 약국에 부여하는 요양기관번호를 확인한다. 서비스 이용은 무료다. 대신 입점한 제약사와 도매상들이 바로팜으로 약국에 약품을 판매할 때마다 수수료를 낸다. 또 제약사에서 바로팜에 유료 광고를 게재한다.

이를 눈여겨본 CJ대한통운이 바로팜에 전략적 투자를 했다. 도매상들의 물류 대행을 하기 위해서다. "바로팜에서 도매상들의 물류까지 대행하면 수수료 수익이 더 늘어나죠."


제약사와 도매상은 약국과 직거래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수료까지 내면서 왜 바로팜을 이용할까. 이유는 비용 절감 효과 때문이다. "전국 약국의 약 90%가 바로팜을 이용하기 때문에 제약사와 도매상의 거래처 확대를 위한 영업을 대신해 주는 효과가 있어요. 그래서 약품 홍보를 위해 제약사도 많이 입점해요."

궁극적으로 김 대표가 추구하는 것은 상생이다. 전문가 집단과 부딪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의약품 생태계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과 동행하는 것이 모토입니다.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죠."

김 대표는 시장이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본다. 아픈 사람이 있는 한 약품 시장은 경기를 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고령사회로 진입하며 약품 시장이 늘고 있다. "연간 약국 공급 시장이 약 24조 원 규모입니다. 3,700여 도매상이 5만여 종 약품을 약국에 공급하죠. 여기에 약학대 정원이 증가해 약사 배출이 늘면서 앞으로 약국이 3만 개 이상으로 늘어날 겁니다."


바로팜을 창업한 김슬기(오른쪽) 대표와 신경도 부대표가 서울 강남구 역삼로 사무실에서 자체 생산하는 건강기능 식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바로팜은 지난해 아워팜을 인수했고 올해 동남아 수출을 추진한다. 정다빈 기자

바로팜을 창업한 김슬기(오른쪽) 대표와 신경도 부대표가 서울 강남구 역삼로 사무실에서 자체 생산하는 건강기능 식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바로팜은 지난해 아워팜을 인수했고 올해 동남아 수출을 추진한다. 정다빈 기자


익숙함을 뒤집는 것이 혁신


덕분에 바로팜 매출은 2023년 80억 원에서 지난해 자회사 포함 490억 원으로 극적 성장을 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000억 원이다. 손익은 지난해 2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바로팜만 놓고 보면 흑자이지만 신사업 투자를 위해 최근 개발 인력을 100명 이상 뽑으면서 전체적으로 아직 적자입니다. 직원의 절반을 신사업에 투입했어요."

올해 그는 또 한 번 도약하기 위해 AI를 이용한 신사업을 확대한다. 여기 필요한 투자는 KB인베스트먼트, KB증권, 미래에셋벤처투자,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SBVA), CJ대한통운, 한독약품 등에서 누적으로 400억 원을 받았다.

첫 번째 신사업은 지난 2월 시작한 '필렌즈'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스마트폰 앱으로 사진을 찍으면 AI가 알약 개수를 세어준다. "약사들이 알약을 세는 데 시간을 많이 빼앗겨요. 알약을 흩어 놓고 사진을 찍으면 몇 개인지 알려줘 일손을 덜어줘요."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AI를 이용한 바로팜의 약품 자동 주문 기능도 개발하고 있다. "AI가 재고를 파악해 자동 주문하고, 약사가 최적의 약품을 소비자에게 추천할 수 있도록 약품 정보를 약사에게 알려주는 기능을 개발 중입니다."

또 약국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어라운드팜'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야간 시간대 방문 가능한 주변 약국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다음 달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외 시장도 두드린다. "바로팜과 필렌즈 등 솔루션을 해외에 판매하는 방안과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해 하반기부터 동남아시아에 수출해요. 이를 위해 지난해 비타민 등 60여 종의 건강기능식품을 만든 아워팜을 인수했고 베트남에 지사를 세웠어요."

궁극적으로 김 대표가 지향하는 것은 익숙한 현실을 뒤집는 혁신이다. "가장 힘든 일은 익숙함을 바꾸는 것이죠. AI 등장으로 세상이 변하는데도 익숙함에 젖으면 변화를 원하지 않아요. 불편함에 익숙한 약국 환경을 바꾸고 싶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