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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 앞세운 스테이블 코인, 통화주권 위협…“쉬운 돈놀이 수단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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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 앞세운 스테이블 코인, 통화주권 위협…“쉬운 돈놀이 수단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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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경호법상 직권남용 혐의도…비화폰 삭제 지시 관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민간 기업이 발행한 코인(가상자산)이 중앙은행의 법정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까?



‘6·3 대선’을 앞두고 국내 가상자산 시장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정치권과 관련 업계를 중심으로 분출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이후 급성장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발행과 유통을 규율하는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통화당국은 통화정책과 금융 시스템에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경고음을 내고 있는 모습이다.





열쇳말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은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시켜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는 가상자산(암호화폐)이다. 글로벌 시가총액은 2300억달러 규모로 대부분 미국 달러 기반이다. 대표적인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와 서클(USDC)은 미국 국채를 담보(준비자산)로 비축하고 ‘1달러=1코인’ 비율로 발행·유통된다.







트럼프 재집권 뒤 스테이블코인 급성장





20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1~3월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의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60조1천억원에 이른다. 한 해 전보다 16.7배 폭증했다.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성공 후 국내 가상자산 투자 자산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급격히 쏠렸기 때문이다. 3월 말 기준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약 2300억달러로 1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불었다.



스테이블코인의 급성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달러 패권 전략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많다. 트럼프 정부가 중앙은행이 아닌 민간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를 통해 전세계에서 미국 국채 수요를 유지·강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신상희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은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이 미국 국채와 달러 의존도를 서서히 낮추는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기축통화국 지위를 지키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발행량과 동일 규모의 미 국채 등을 준비자산으로 비축한다.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결제 수단으로 활성화 될수록 미 국채 수요는 늘어나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 스테이블코인 1위 업체인 테더(USDT)가 준비자산으로 사들인 미 국채 보유량(1116억달러)은 이미 한국의 보유량(1249억달러)과 맞먹는 규모다. 박혜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웹3.0포럼 운영위원장)는 “미국은 36조달러(약 5경원)에 이르는 국가부채와 국채금리 인상 압력, 그리고 달러 구매력 하락이라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을 국제 지급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스테이블코인도 결국 미국이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는 ‘기축통화국의 딜레마’는 동일하다는 점에서 적자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축통화국 딜레마란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세계에 달러 공급을 지속해야하지만, 그러하기에 달러 가치가 낮아지는 상황을 가리킨다.







법정화폐처럼 결제 수단 활용…“통화·금융 정책 침해 우려”





만약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각 국의 지급결제 수단으로 널리 쓰이게 되면 해당국의 통화 수요는 감소하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통화 대체 현상’을 스테이블코인이 초래할 주된 리스크로 꼽는 이유다. 일반 가상자산과 달리 지급수단적 특성이 있어 법정통화 수요를 대체하면 통화 주권을 침해하고 통화정책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서둘러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논거를 바탕으로 한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을 경우 국내 통화 수요는 감소하고 외화 수요가 늘어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의 빠른 자본 이동성과 탈중앙화 특성은 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자본 유출을 촉진해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용진 서강대 교수(경영학)는 “향후 지급결제 영역에서 국내 원화 기반의 디지털 화폐가 없다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의존도는 커질 것이다. 원화 기반 코인을 발행해 일종의 방화벽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국 통화에 기반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도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당국의 우려는 크다. 국가(중앙은행)가 아닌 민간이 발행한 가상자산이 사실상 법정화폐의 지위를 갖는 셈이어서 통화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되면 기존 은행 중심의 신용중개 기능은 축소될 공산이 높다. 한국은행은 “은행의 자금 중개기능이 약화되면 주로 지급준비제도와 금리 정책으로 구현되는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거대한 규모의 국채와 예금이 코인의 준비자산으로 묶일 경우 통화량 관리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민간에 통화 창출이라는 권한을 제공하는 셈”이라며 “통화량 증가로 이어져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주요 스테이블코인. 언스플래시

주요 스테이블코인. 언스플래시




민간 발행 ‘통화 코인’…“가치 안정과 환급성이 관건”





근본적인 논란은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과 투명성이다. 과연 민간이 발행하는 가상자산이 중앙은행의 법정화폐와 같은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2022년 대폭락을 겪은 테라·루나와는 기본적인 구조가 다르다. 테라·루나는 준비자산 없이 알고리즘에 기반해 발행한 것이어서 코인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발생하자 한순간에 가치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스테이블코인에 대규모 환매 요청이 발생할 경우 발행자가 상환을 위해 국채와 예금 등 준비자산을 대거 투매하면 전체 금융 시장에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서클(USDC)은 지난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때 준비자산 일부가 이 은행에 예치됐다는 이유만으로 투자자들은 서클을 대량 매도했다. 유럽은 엄격한 유동성 및 준비금 요건을 요구하는데,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테더는 일부 유럽거래소에서 상장이 폐지된 바 있다.



현재 거래되고 있는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에 관한 국내법 집행의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에 국내 이용자들은 도산 위험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봐야 한다. 민간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거래하면서 국가간 자금이동이 이뤄질 경우 환치기나 탈세, 자금세탁 등이 발생할 경우 사전·사후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느냐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정두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무엇보다 기존의 가상자산과 차별화하는 요소인 가치 안정성과 환급 가능성 약속의 이행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불법적 거래는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자금세탁방지제도(AML)나 테러자금조달금지(CFT) 시스템 차원에서 논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디지털화폐(CBDC)·예금토큰과 경쟁?…한은 “도입·유통 신중해야”





이런 이유로 한국은행은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발행과 유통에 부정적이다. 해외 코인은 국내 자본 및 외환 규제를 우회할 가능성이 커 “규제가 시급”하고, 원화 코인은 “허용 여부를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성관 한은 디지털화폐연구실장은 “스테이블코인은 본질적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화폐이자 선불 전자지급 수단”이라며 “누구나 쉽게 발행할 수 있게 하면 쉽게 돈놀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행 주체를 2~3곳으로 제한하고 그 기반 위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국제결제은행(BIS) 주도하에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CBDC)와 제도권 은행들이 발행하는 예금토큰 등 결제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화폐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은이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은 배경이기도 하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국가간 및 은행간 거액 결제용으로, 은행의 예금토큰은 범용(소비자용)으로 발행하는 투 트랙 전략이다. 은행 예금토큰은 스테이블코인과 거의 구조가 같다. 사실상 발행사가 민간 기업이 아닌 ‘잘 규제된’ 제도권 은행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한은 관계자는 “테라·루나 사태 이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워낙 커져 토큰 사업으로 명명했다”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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