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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경력자’ 후보들의 대선 토론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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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경력자’ 후보들의 대선 토론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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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문수(왼쪽부터)·민주노동당 권영국·개혁신당 이준석·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사진취재단

국민의힘 김문수(왼쪽부터)·민주노동당 권영국·개혁신당 이준석·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사진취재단




박태우 | 노동·교육팀장



그야말로 ‘노동 대선’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소년공’ 출신이자 ‘노동법 전공자’라고 밝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노동운동가 경력으로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해고 노동자 출신인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변호사 경력 대부분을 ‘노동 변호사’로 살았다.



이 때문인지 지난 18일 열린 경제 분야 대선 티브이(TV) 토론회에서도 노동 정책을 소재로 한 후보들의 설전이 이어졌다. 하지만 후보들은 자신이 내세우는 공약이 왜 필요한지 유권자와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논리’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그쳤다.



이 후보의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라는 ‘짤’을 남긴 반도체특별법의 ‘주 52시간 노동상한제(주 52시간제) 적용 제외’ 관련 토론이 그렇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연구·개발 노동자들에게 주 52시간제 적용을 제외하는 반도체특별법 입법을 추진했다. 이 후보는 처음에는 적용 제외에 찬성하는 듯한 입장을 보이다가 반대로 선회했는데, 토론회에서 김 후보가 이 후보 공격에 나섰다. “주 52시간제 예외라도 해달라는 최소한의 요구를 (민주당이) 안 해줘서 고용노동부 고시로 해드렸다”며 적용 제외 반대를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이 후보가 “3개월 단위의 ‘유연제’를 6개월로 늘려달라는 것이 정부 입장 아니었느냐”고 되받자, 김 후보는 (엉뚱하게도) “네”라고 답했다.



이는 노동부가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기존 제도인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을 반도체 업종에 한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린 것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특별연장근로’를 ‘유연제’로 잘못 말했고, 김 후보는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에게 주 52시간제를 적용하지 말아야 하는 근거를 제대로 설명하기보다는 반대한 이 후보를 몰아세우는 데 급급했다. 특히 김 후보는 적용 제외 노동자들에게 “건강도 충분하게 보장해드린다”고 했지만, 여태껏 당정은 건강 보호 대책이 무엇인지 단 한번도 밝힌 적이 없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토론도 마찬가지였다. 원청 사업주에게 하청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를 지게 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은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두번 통과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됐다. 김 후보는 이 후보에게 “또 밀어붙일 생각이냐”고 물었고, 이 후보는 “대법원 판례가 이미 인정하고 있고, 국제노동기구(ILO)도 인정하는 부분이라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답했다.



아이엘오 전문가위원회가 노란봉투법이 결사의 자유 협약에 부합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은 사실이지만, “대법원 판례가 이미 인정하고 있다”는 주장은 절반만 사실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처럼 원청 사업주가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로서 하청 노조에 지배·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은 있지만, 원청 사업주가 단체교섭 의무까지 진다는 대법원 판례는 현재 없다. 이와 관련된 현대중공업·씨제이(CJ)대한통운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심리 중이다.



게다가 이 후보는 노란봉투법이 왜 필요한지가 아니라 대법원 판결과 아이엘오의 태도를 근거로 입법의 당위를 설명하는 데 그쳤다. 권 후보가 “헌법이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있는데, 진짜 사장과 교섭할 수 있는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것)이 왜 악법이냐”고 말한 것이 노란봉투법 입법 필요성을 설명한 유일한 대목이었다.



노동 정책만큼 ‘진영 논리’가 뚜렷한 정책도 없다. 노동자와 기업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공약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고, 무엇을 공약하든 노동자 편, 기업 편으로 ‘갈라치기’되기 쉽다. 그럴수록 후보들은 자신의 공약이 왜 필요한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설득하고 토론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대선 이후 우리의 삶과 일터가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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