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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엽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미국 조지타운대 방문학자 |
그중에서 행정학자로서 필자가 주목한 건 정부혁신 노력이다. 정부혁신은 단순한 개편이 아니라 정부 조직의 효과성, 능률성, 적응성, 개혁성을 극적으로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뜻한다. 대개 많은 공무원들이 국가에 성실히 봉사하고 있지만, 정부 관료제에 대해 ‘철밥통’이나 ‘무사안일’이라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많은 대통령들이 정부혁신을 주요 국정 과제로 삼아 효율성 증대를 추진해왔다. 미국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부혁신을 대통령의 핵심 의제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대대적인 민영화, 인력감축, 연방 프로그램 축소, 불필요한 규제 철폐 등을 단행했던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과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렇다면 정부효율성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를 신설해 정부혁신을 추진한 트럼프 대통령의 성과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아직 그 효과성을 판단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지난 100일간의 추진 과정을 통해 방향성 정도는 가늠해볼 수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특별정부직원으로 임명해 정부효율성부를 이끌며 정부혁신을 진두지휘하게 했는데, 취임 100일 즈음 머스크는 사임했지만 그간 추진한 변화는 인상적이었다.
트럼프 당선 직후 ‘전기톱’ 퍼포먼스로 관료주의 타파를 외친 머스크는 기술과 소프트웨어 현대화를 통해 정부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하려 했다. 특히 AI를 활용해 방대한 연방정부 데이터를 분석하고 증거 기반 정책을 추진했는데, 그 일환으로 각 연방기구의 예산 지출 자료를 기록하고 승인하는 중앙집중형 기술 시스템을 구축해 불필요한 예산 지출을 확인하고 삭감했다. 또 규제 완화를 위해 과도한 규제를 식별하는 데 AI를 활용하고, 연방정부 직무를 AI로 대체하는 프로젝트도 추진해 업무 자동화를 시도하고 있다.
인력 감축과 조직 개편도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취임 100일 동안 약 28만 5천여 명의 공무원을 해고, 조기 퇴직 또는 자발적 퇴직으로 감축했다. 이는 전체 연방정부 인력의 12%에 해당하는 수치로, 클린턴 대통령이 8년간 43만여 명을 감축했던 것과 비교해도 상당한 규모다. (레이건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인력 감축을 단행했으나, 국방 분야 인력 증가로 퇴임 시엔 오히려 연방정부 인력이 늘었다.) 다만 수습 공무원 일괄 해고와 대대적인 자발적 퇴직 장려 등 공세적인 인력 감축 과정에서, 핵무기 안전을 담당하는 국립 핵안보국 직원들마저 대거 해고됐다가 다시 임용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100일간 정부혁신 노력이 훗날 성공으로 평가될지, 실패로 남을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Day+1을 시작할 차기 정부가 떨어진 정부 신뢰와 기능 회복을 위해 강력한 정부혁신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트럼프 정부의 사례는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AI·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정부혁신을 추진한 미국 사례를 참고해, 우리 정부도 AI·디지털 기술 활용을 핵심 아젠다로 삼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이미 차세대예산회계시스템(dBrain) 등 디지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각 부처가 생산한 데이터가 정책 결정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되는지 점검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 각 부처가 생산한 정보가 칸막이에 막혀 정부 내, 정부-민간 간 연계와 협력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도 차기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AI·디지털 정책을 통합해 정부 안팎의 AI·디지털 활용을 지원하는 전담 부처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통계청을 국무총리 산하 데이터처로 격상해 각 부처의 데이터를 통할하자는 제안은 이미 행정학계에서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다.
둘째, AI·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인력 효율화도 필요하다. 다만, 트럼프식 일괄 감축보단 데이터에 근거해 공무원 업무량과 국민 수요를 분석하고, 인력 과잉 분야는 충원을 줄이는 한편, 재교육과 재배치를 통해 인력 부족 분야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적 인사 관리가 필요하다. 아울러 일하는 방식에도 AI·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공무원 1인당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셋째, 대통령의 정부혁신을 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 마련도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DOGE 팀 리더, 엔지니어, 인사 전문가, 법률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팀을 각 부처에 파견했다. DOGE 팀은 각 부처 장관 및 담당자와 긴밀히 협업하며 대통령의 주요 아젠다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인력·예산·규제 감축 등을 주도하고 있다. 차기 정부 역시 강력한 정부혁신이 현장에서 집행될 수 있도록, 각 부처에 DOGE 팀 같은 전문가 그룹을 설치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트럼프 재집권 초반 100일간의 ‘공세적 재편’은 미국 시민들의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여러 교훈을 남겼다. 특히 디지털 전환, 데이터 기반 행정, 유연한 조직 운영 등 변화의 키워드가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보여준다. 우리의 차기 정부 역시 약 200일 먼저 출범한 트럼프 정부의 성과와 한계를 참고해, 국정 공백을 조속히 마무리 짓고 재도약을 위한 강력한 정부혁신을 실현해나가길 기대한다.
유상엽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미국 조지타운대 방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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