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s the economy, stupid.(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1992년 미국 대선. 빌 클린턴 캠프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이 던진 이 말 한마디는 선거의 흐름을 바꿨다. 전쟁의 영웅이었던 조지 H. W. 부시를 무너뜨린 건, 전장이 아닌 장바구니 속 불안이었다. 승전보보다 민생의 절규가 더 깊고 넓게 메아리쳤다.
경제는 언제나, 삶의 가장 낮고 뜨거운 자리에서 진실을 말한다. 외교보다 식탁이, 명분보다 생존이, 언제나 앞섰다
1992년 미국 대선. 빌 클린턴 캠프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이 던진 이 말 한마디는 선거의 흐름을 바꿨다. 전쟁의 영웅이었던 조지 H. W. 부시를 무너뜨린 건, 전장이 아닌 장바구니 속 불안이었다. 승전보보다 민생의 절규가 더 깊고 넓게 메아리쳤다.
경제는 언제나, 삶의 가장 낮고 뜨거운 자리에서 진실을 말한다. 외교보다 식탁이, 명분보다 생존이, 언제나 앞섰다
2024년 미국 대선. 바이든 정부는 경제가 좋다며 각종 지표를 내밀었다. 경제 전문가들도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을 인정했다. 경기가 과열되지도 침체하지도 않은 이상적인 상태인 '골디락스(Goldilocks) 경제'가 올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미국 시민들은 고개를 저었다. 고물가는 미국인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었다. 슬금슬금 오른 금리는 중산층의 목을 조였다. 회복의 수치는 있었지만 회복된 삶은 없었다. 사람들은 경제를 말할 때 통계보다 은행 대출금 고지서와 마트의 가격표를 먼저 떠올렸다.
인플레이션은 낙태권, 트럼프의 일방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모두 지웠다. 모든 담론은 장바구니 안에서 녹아내렸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것을 알아챘다. 궁핍해진 삶, 얇아진 지갑이 만든 분노에 공감했다. 해법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서사의 센티멘탈이 지표의 펀더멘탈을 눌렀다"(타임체인저, 플랫폼9¾ 팜플렛)
# 2022년 한국 대선 결과를 두고 여러 분석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 여당 독주에 대한 반감, 시대정신(공정·상식)이 낳은 결과 등 다양한 해석은 그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밑바탕엔 역시 경제가 존재했다.
특히 부동산은 더이상 '꿈'이 아니라 '절망'이었다. '패닉바잉' '영끌' '벼락거지' 등의 단어가 유행했다. 2030을 중심으로 수도권 유권자들이 떨어져나갔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불만은 조용히 쌓였다. 최저임금 인상, 코로나19 방역 조치 등의 영향이었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은 '갑'이 아니었는데도 정부는 그렇게 대하며 희생을 강요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젠더 이슈, 검찰 개혁 등에 매몰돼 있을 때 국민은 악화되는 경제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며 버텼다.
2024년 총선도 마찬가지다. '정권심판론'으로 정리되지만 근저엔 '민생'이 깔려있다. 고물가·고금리는 서민의 생존을 흔들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대파 값' 논란은 총선의 핵심이었다. 무능을 넘어선 공감 결여의 반작용은 거셌다.
# 복기할 때면 경제를 중심에 두지만 현실에선 또 아니다. 2025년 대선의 한복판. 언제나 그렇듯 정치의 과잉 속 경제는 주변부로 밀려난다. '경제가 최우선 과제'라고, 모두 말하지만 공허하다.
안타깝게도 우린, 상반기를 그저 흘려보냈다. 경제가 최악인데 손을 놨다. 정권은 무책임했고 정치권은 방임했다. 재정 긴축, 대출 통제 등을 금과옥조로 여기느라 국민의 결핍을 한사코 외면했다. 대내외 여건을 탓하며 무능을 감추느라 바빴다.
그 결과는 암울하다. 올해 1분기 한국경제는 전분기 대비 역성장(-0.2%)했다. 수출·소비·투자 등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결과다. 수출 전망은 더 비관적이다. 소비·투자 등 내수 전망도 밝지 않다. 0%대 성장이 당연시된다.
실제 KDI(한국개발연구원)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0.8%로 하향 조정했다. 정치·사법에 매몰되며 중요한 것을 놓친 성적표다.
다음 정부는 바닥에서 출발한다. 기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바닥 밑 지하1층, 지하 2층을 경험할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건, 6월4일 이후의 책임은 온전히 새 정부에 있다는 점이다.
많은 개혁 과제가 있겠지만 결국 평가 기준은 한 줄로 요약된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는가'.
정권은 '경제를 잘 한다'는 신뢰로 유지된다. 정당은 '경제를 망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위에서 지지받는다. 허기진 민심은 오래 기억한다. "정치는 구호로 출발하지만 정권은 지갑으로 심판받는다."
박재범 경제부장 swallo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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