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경제 분야 대선 TV 토론회에서 정책 재원을 얘기한 후보는 두 명이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부자 증세"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국채 발행"을 언급했다. 새로운 정책에 필요한 추가 재원은 기존 정부 예산을 줄이든지, 증세를 하든지, 국채를 발행해 마련할 수 있다. 다만, 국채 발행으로 국가채무가 증가하면, 언젠가 미국처럼 신용등급이 강등되진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더스쿠프가 국가채무 문제를 자세히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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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 TV에서 전날 열린 대선 후보자 초청 1차 토론회 관련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미국은 2023년 8월 1일(현지시간) 신용평가회사 피치가 자국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강등하자 분노했다. 미국 경제가 다른 모든 나라를 제치고 가장 잘나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미국과 미군이 만들어준 안정성에 의지하는 나라들의 신용등급이 우리보다 높다"며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비꼬았다. 하지만 12년 만에 신용등급을 강등당한 미국이 다시 고꾸라지는 덴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미국을 최고 신용등급으로 유지했던 무디스는 지난 16일 미국을 'AAA'에서 'Aa1'으로 강등시켰다.
이번엔 미국 반응이 뜨겁지 않았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부대변인은 바이든 행정부 탓이라고 변명했다. 스티븐 청 공보국장은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무디스 레이팅(Moody's Rating)이 아닌 다른 무디스 계열사 간부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는 2016년부터 트럼프를 반대했고, 오바마의 자문위원이자 클린턴의 후원자였다"는 음모론을 내놨다. 제이미 다이먼은 이번 강등에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무디스의 입장은 명확하다. "미 정부와 의회의 무책임한 지출이 재정적자를 키워 왔다. 미국 경제와 금융의 강점을 인정하지만, 재정 악화를 완전히 상쇄할 수는 없다". 1년 9개월 전 피치의 강등 이유도 비슷했다.
"향후 3년간 재정 악화가 예상될 뿐 아니라 지난 20년 동안 부채 한도를 놓고 의회 대치와 극적 해결이 반복되며 다른 국가들에 비해 거버넌스(국가 운영체계)가 악화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미국 정치권은 막대한 재정적자를 줄일 의지도 능력도 안 된다는 뜻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도 지난 4일 은퇴를 선언하며 "미국은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한 적이 없고, 이 문제가 2년이 갈지 20년이 갈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국가채무는 지난 15일 기준 36조22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5경원이 넘는다.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진 빚이다. 여기에 확정되지 않은 부채인 연금충당부채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을 국가부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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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나라살림연구소, 참고 | 2023년 기준,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
한 국가의 신용등급이 강등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 나라에 돈을 빌려줄 때 원금 회수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그러면 세계 투자자들은 이 나라가 발행하는 국채를 예전보다 덜 선호하게 된다. 새로 발행하는 국채의 금리를 과거보다 높게 책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이미 발행한 국채 금리에도 영향을 준다. 투자자들이 기존에 보유한 이 나라 국채를 시장에 내다 팔면 거래 가격은 낮아지고 그만큼 국채 수익률(금리)이 높아진다. 이 나라 정부가 지불해야 하는 국채 이자도 증가하고, 그만큼 재정적자는 늘어난다.
국채 수익률의 상승은 이 나라 실물 경제에도 악영향을 준다. 시중 금리는 대체로 10년물 장기 국채 수익률과 연동된다. 그런데 시중 금리가 상승하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다. 중앙은행은 경기침체기에 시중 금리 인하를 목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린다. 신용 악화로 시중 금리가 상승하면 중앙은행은 그만큼 기준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
미국쯤 되는 나라도 빚 때문에 신용등급이 깎이고, 경기 방어 능력까지 훼손된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떤 상황일까. 우리나라는 과연 미국과 같은 문제가 없을까.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도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아직은 건전하다. 세계 각국 정부가 빚더미에 오른 계기는 역사와 경제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최근에 있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이 전세계에 빚 공포증을 불러온 것만은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3년 발표한 '팬데믹에 따른 세계 각국의 사회복지 지출 증감' 보고서에서 2019년 OECD 회원국들의 평균 사회복지 지출 증가분이 국내총생산(GDP)의 20.1%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가 30.7%로 가장 많이 증가했고, 일본 22.8%, 호주 20.5%, 미국 18.3%였다.
한국은 GDP의 12.3%만 증가해 칠레와 멕시코를 제외하면 OECD 회원국 중 팬데믹 재정지출이 가장 적었다. 그만큼 재정지출 증가를 억제했다는 뜻이고, 어느 정도 추가 재정지출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일반정부 부채를 보면 차이는 더 명확하다. 일반정부 부채는 국가채무에 공공기관 부채까지 더한 것이다. 금융 자산을 총부채에서 뺀 순부채를 보자. 2023년 우리나라 순부채는 GDP의 23.8%다. 일본 158.5%, 미국 96.7%, 독일 46.5%는 물론이고 G7 평균인 95.8%와 GDP 상위 41개 나라 평균인 82.6%보다도 훨씬 낮다(나라살림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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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가 미국 신용등급을 지난 16일 강등했다. 워싱턴DC 공원인 내셔널 몰 뒤로 보이는 국회의사당 건물이 석양에 물들어 있다. [사진 | 뉴시스] |
다만, 빚이 증가하는 속도가 빨라 방심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9년 35.4%에서 2021년 43.7%, 2023년 45.9%로 높아졌다. 기획재정부는 이 수치가 2028년 50%를 넘길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공공기관 부채를 모두 합하면(일반정부 부채) 우리나라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2021년 이미 50%를 넘겼고, 2029년 60%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세계에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미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지금의 우리와 비슷한 40%대(1985년)에서 100%대(2013년)로 증가하는 데 28년이 걸렸다. 하지만 일본은 그 비율이 40%에서 100%로 증가하는 데 20년이 채 걸리지 않았고, 100%에서 200%를 돌파하는 데도 20년이 안 걸렸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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