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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이해하기 어려운 헤다, '친절한 영애씨'도 힘들 거예요"

이데일리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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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이해하기 어려운 헤다, '친절한 영애씨'도 힘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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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출연…13년 만에 헤다 役 다시 맡아
"체력 관리 힘 쓰며 가장 입센다운 '클래식' 보여줄 것" 각오
이영애 주연 연극과 대결 구도…"프로덕션 달라 비교 불가"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작품에 대한 지적 갈망이 높은 관객들에게 가장 입센다운 ‘클래식’을 보여주고 싶다.”

배우 이혜영(사진=국립극단)

배우 이혜영(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 연극 ‘헤다 가블러’ 무대를 빛내고 있는 배우 이혜영(62)은 19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연 출연 소감이자 각오를 이 같이 밝혔다.

‘헤다 가블러’는 노르웨이 출신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1890년 발표한 고전 희곡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다. 고지식한 학자인 남편과 충동적으로 결혼한 뒤 지루한 신혼 생활에 권태를 느끼며 살아가는 여성인 헤다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헤다가 과거의 연인이 재기에 성공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후 질투와 혼란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파국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촘촘하게 그린다.

이혜영은 작품 및 주인공 헤다 역과 인연이 깊다. 앞서 그는 2012년 ‘헤다 가블러’ 한국 초연 당시 헤다 역을 맡아 호평받으며 ‘제5회 대한민국연극대상’과 ‘제49회 동아연극상’에서 여자 연기상을 받았다.

13년 만에 헤다로 다시 분해 무대에 오르고 있는 이혜영은 “헤다는 희곡 발표 당시에도, 21세기가 된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캐릭터다. 그런 의미에서 입센의 희곡은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는 헤다를 애정 없이 결혼한 뒤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살아가면서도 삶에 대한 자신만의 욕망을 품고 있는 인물로 해석했다”며 “저의 개인적 삶과 연관 짓지 않은 채 오직 헤다의 감정을 무대에서 표현하려고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배우 이혜영과 박정희 연출(사진=국립극단)

배우 이혜영과 박정희 연출(사진=국립극단)


배우 이혜영(사진=국립극단)

배우 이혜영(사진=국립극단)


나이 초월 ‘원조 헤다’의 귀환

어느덧 60대에 들어선 가운데 새 신부 역할을 다시 맡는 게 부담되진 않았냐는 물음에는 “무대에서 ‘헤다 가블러’라는 공연을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나이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혔다.

초연 때 고전풍으로 꾸며졌던 무대 콘셉트가 ‘히피니즘’과 ‘사이키델릭’을 키워드로 삼은 현대풍으로 바뀐 데 관해서도 “연기를 다르게 하게 만드는 지점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이혜영은 “13년 전 공연 때와 비교해 저를 달라지게 만든 점이 있긴 하다. 바로 사람, 즉 배우들이 다르다는 점”이라면서 “새롭게 호흡을 맞추게 된 배우들의 나이가 저보다 한참 어리다. 그들이 저를 신뢰하게 만들도록, 제가 헤다라고 믿게 하도록 연습 때부터 공연이라고 생각하면서 임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체력 관리에도 힘쓰고 있다”면서 “링거를 맞기도 하고, 발성 훈련도 받으면서 공연을 하고 있다”고 설명을 보탰다.

‘헤다 가블러’는 국립극단이 관객들의 재연 요청이 지속적으로 쇄도한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려 정규 레퍼토리로 확장하기 위해 기획한 ‘픽(Pick) 시리즈’로 선보이는 공연이다. 연출은 이전 공연과 마찬가지로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인 박정희가 맡았다.

이혜영은 박정희 연출에 대해 “연출가라기 보다 창조인에 가깝다”며 “초연 때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정도일 줄 알았는데, 기존의 것을 버리고 모든 걸 새롭게 만드시더라. 전 만족스러웠다”고 언급하며 신뢰를 표했다.


기자간담회에 함께한 박정희 연출은 “연출가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가끔 있는데 이혜영도 그 중 한 명이다. 다시 호흡을 맞추면서 13년 전보다 더 성숙해지고 깊어졌다는 느낌도 받았다”고 화답했다. 이어 그는 “관객들이 나이를 초월한 ‘이혜영 무대’의 신비를 경험하셨으면 한다”고 말을 보탰다.

배우 이혜영이 주연을 맡은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공연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배우 이혜영이 주연을 맡은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공연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배우 이혜영이 주연을 맡은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공연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배우 이혜영이 주연을 맡은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공연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이영애 헤다’와 맞대결 구도 주목

당초 이번 공연은 8일 개막 예정이었으나 브라크 검사 역을 맡기로 했던 배우 윤상화가 공연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 증세로 병원으로 응급 이송되는 일이 발생해 16일이 되어서야 막을 올렸다. 브라크 검사 역은 국립극단 시즌 단원인 홍선우로 대체됐고, 윤상화는 퇴원 후 회복 중에 있다.

관련 물음이 나오자 이혜영은 “윤상화 배우의 소식을 듣고 공연팀 모두가 절망했다.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을 정도로 너무 충격이 컸다”고 답하며 울먹였다. 이어 그는 “새 배우를 찾아 공연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럽고 죄의식이 느껴지기도 했으나, 극장에 찾아오는 관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LG시그니처홀에서는 이영애 주연의 ‘헤다 가블러’가 공연 중이다. 두 편의 ‘헤다 가블러’가 동시기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국립극단 공연은 6월 1일까지, LG아트센터 공연은 6월 8일까지 이어진다.

관련 물음에 이혜영은 “배우도 다르고 프로덕션도 달라서 비교는 불가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후 이혜영은 간담회 말미에 포토타임을 진행하면서 이영애를 한 번 더 언급했다. “헤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라고 재차 강조했던 그는 “우리 ‘친절한 (이)영애 씨’는 얼마나 더 힘들겠나”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이영애는 연극 재출연이 32년 만이고, ‘헤다 가블러’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영애는 지난달 작품 기자간담회에서 “이혜영 선배를 좋아하고 존경한다”면서 “공연 시기가 겹쳐서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지금은 두 공연을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공연 모두 잘 돼서 연극계에 새 바람이 불었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