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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야당인 국민당이 주최한 반라이칭더 시위가 열렸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20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타이베이/AFP 연합뉴스 |
“국민당 입법위원(국회의원)은 중국 편에선 대만의 방해꾼들이다. 대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고통스럽지만 꼭 해야 할 일이다.”(대만 직장인 왕아무개)
“라이칭더는 대만의 경제와 안보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위기는 우려에 그치지 않을 것이고, 그게 내가 총통 탄핵에 찬성하는 이유다.”(대만 출판인 저우아무개)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20일 취임 1년을 맞는 가운데 대만 내부 정치가 ‘야당 입법위원 소환·해임’과 ‘라이 총통 탄핵’으로 나뉘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대만 정치 상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뒤 커진 불확실성이 맞물려 대만 문제를 둘러싼 불안은 더해지고 있다.
대만 내 정치적 갈등은 올해 들어 내내 격화하고 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지난 2월 민주진보당(민진당) 소속 라이 총통이 이끄는 대만 정부의 예산안에 야당 입법위원들이 반대하고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이에 민진당 지지층은 야당 의원 파면 운동을 벌였다. 대만에선 지역구 주민 15% 이상의 서명을 받아 주민투표를 실시해 선출직 공무원인 입법위원을 해임(파면)할 수 있다.
19일 ‘파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왕은 한겨레에 “주말 내내 거리에서 서명을 받았다. 파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만을 대만답게 하자는데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 맞서 ‘총통 탄핵’에 목소리를 내는 저우는 “라이 총통은 현실적인 문제보다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이념을 이용하고 있다. 민진당 지지자들은 대만 민주주의를 위한다며 파면 운동을 하는데, 대상이 된 정치인들 역시 대만인들이 뽑은 사람들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당은 이날 대규모 총통 탄핵 촉구 시위를 벌이는 한편, 탄핵 발의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탄핵안이 입법원(국회 격)을 통과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극단적인 정치적 분열에 라이 총통과 정권 신임도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6일 대만 매체인 티브이비에스(TVBS)는 자체 여론조사에서 라이 총통 지지율이 직전 조사인 지난해 8월보다 8%포인트 하락해 32%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응답 비율은 직전 32%에서 23%포인트 급등해 55%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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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규모 군사훈련이 진행되고 있던 지난해 10월18일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타오위안의 한 해군기지를 방문했다. 타오위안/AFP 연합뉴스 |
대만해협 긴장은 대만 내 정치 상황과 상호작용하면서 더욱 팽팽해지고 있다. 라이 총통은 1년 전 취임 때 대만 독립을 전면에 내걸기보다는 ‘현상 유지’ 입장을 내비쳤지만, 이후 행보는 ‘반중국 노선’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지난 3월13일 라이 총통은 중국을 ‘외부 적대세력’으로 규정하고 안보 위기 타개를 명분으로 간첩 색출, 군사법원 부활 등을 포함한 ‘5대 국가안보·통일전선 위협 및 17개항 대응 전략’을 공개했다.
이 전략을 “대만 해협 양안의 교류와 협력을 방해”하는 것으로 판단한 중국은 라이 총통을 ‘분리주의자’ ‘독립 분자’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지난달 초 중국 인민해방군은 ‘해협 레이팅(雷霆·천둥)-2025A’이라는 이름의 대만 포위 군사훈련을 육군·해군·공군·로켓군 등 전력을 동원해 실시했다. 대만 해안경비대는 이날 “라이 총통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중국이 여론을 교란하려 시도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이런 반응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한 사람이 대만 타오위안 해변에서 중국 국기를 꽂는 영상이 올라온 뒤 나왔다. 해당 영상은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은 양안 관계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은 관세전쟁 등에서 중국에 전력을 집중하는 한편, 대만 문제에는 전략적 모호성을 드러내고 있다. ‘대만 방어’에 분명한 의지를 밝히지 않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중국의 대만 침공은 “재앙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만 접근 방식을 둘러싼 분열은 위험을 가중하고 있다”며 “중국이 미국의 입장(‘하나의 중국’ 인정)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의심한다면, 중국은 대만에 더 강압적인 조처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18일 미국 엔비시(NBC)는 긴장 일변도의 대내외 정치 환경 속에 대만 시민 대다수, 특히 청년들은 대만 독립이나 중국 통일 중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다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만 청년층 정치 성향을 연구하는 레브 내크먼 국립대만대학 정치학과 조교수는 대만의 Z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더 ‘현상 유지’를 지향하고 있다고 보고 “이들은 대만해협에서 큰 파문을 일으킬 어떤 ‘급진적 변화’를 원하지 않고, 중국과의 통일에 대한 열망 역시 아주 낮다”고 엔비시에 말했다.
베이징/이정연 특파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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