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네트워크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그리고 기업 IT 예산 경쟁에서 어떤 업체가 승기를 잡고 어떤 업체가 밀릴지에 대한 예측은 모두가 한 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시간, 몇 년 뒤의 상황은 어떨까? 대부분 기업은 3년 정도 앞을 내다보려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그리는 미래는 향후 경쟁 구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기술적, 정치적, 법적 요인이 복잡하게 뒤얽힌 지금, 그런 예측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한번 시도해 보자.
필자가 294곳의 기업에 향후 3년간 네트워크 트렌드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이들은 공통적으로 해당 기간 동안 자사 네트워크의 기본적인 역할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네트워크 품질을 개선하면서 비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동시에, 응답 기업의 약 2/3는 이 기간 동안 자사 네트워크 모델이 “진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런 변화가 업체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기업 195곳은 네트워크 모델 변화 가능성을 언급한 반면, 199곳은 향후 3년 내 업체 교체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해 네트워크 구조 변화보다 업체 선택 변화에 대한 인식이 더 높았다.
응답 기업에 따르면, 업체를 바꾸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은 네트워크 모델의 변화가 아니라 ‘업체 자체의 변화’다. 업체 변경 가능성을 언급한 199곳 중 144곳은 주된 이유로 자사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보다 안정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사업 및 제품 전략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대다수 기업은 구조조정, M&A, 대규모 제품 전략 변경 발표 등을 위협 요인으로 인식한다. 이는 놀라운 일도 아니다. 지출을 최소화하면서도 네트워크 품질을 유지하거나 개선하려는 상황에서는 제품과 공급업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네트워크 모델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 195곳 역시, 변화가 없다고 본 기업과 마찬가지로 ‘업체의 안정성’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는 네트워크 모델이 바뀐다고 해서 주력 업체도 반드시 함께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AI를 중심으로 한 업체의 전략적 포지셔닝이 시장 경쟁의 판도를 바꿀 가능성도 낮은 것일까?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그럴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네트워크 모델이나 그 역할이 바뀔 가능성을 논하기 전에,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네트워크의 기본 모델과 예산에 가장 큰 변화를 유발하는 주된 요인은 ‘애플리케이션의 변화’라는 점이다. 네트워크 기획자는 미래를 내다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네트워크 기획자가 통제할 수 없지만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실행 중인 애플리케이션의 변화 혹은 앱 운영 방식의 변화다. 결국 컴퓨팅의 변화가 네트워크를 움직인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전략을 잃은 네트워크 업체들
이 같은 흐름은 필자가 여러 기업에 직접 물었을 때의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네트워크 전략의 방향성을 주도하는 업체로 가장 많이 지목된 곳은 네트워크 제품을 만들지도 않는 IBM이었다. 사실, 상위 업체 4곳(IBM, 마이크로소프트, HPE, 델) 모두 전통적인 네트워크 전문 업체는 아니다. 델 바로 뒤를 이어 5위에 오른 브로드컴조차도 전통적인 네트워크 장비 공급업체는 아니다. 대표적인 네트워크 업체인 시스코는 6위에 그쳤다.
이 내용을 AI 전략 포지셔닝과 연결하면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업체 목록에 오른 컴퓨팅 업체는 대부분 AI 전략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반대로 네트워크 업체는 그 흐름에 편승하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컴퓨팅 측에서 실제로 뚜렷한 AI 트렌드가 형성되고 그것이 네트워크 수요를 유의미하게 이끄는 수준에 이르지 않는 한, AI 중심의 포지셔닝이 시장 경쟁 구도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판도가 바뀌었다고 볼 수도 있다. 네트워크 업체가 이제는 자력으로 자신의 미래를 좌우할 전략적 영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 사실 자체가 그 증거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해법은 주니퍼가 HPE와 추진 중인 합병처럼 주요 컴퓨팅 업체와의 합병일 것이다. 이 방식은 전략적 영향력의 주도권을 컴퓨팅 업체에 넘기는 셈이지만, 네트워크 업체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 자체적인 전략 구상 능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더 큰 생태계를 주도하는 업체와 손잡는 것이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제품에 뚜렷한 차별점이 없다면, 즉 단순한 범용 상품에 불과하다면 전략적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
유일한 해답은 응답 기업의 2/3가량이 네트워크 모델의 변화 가능성을 믿는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 변화를 이끌 것인가? 어떤 구체적인 기술 변화와 제품 변화가 뒤따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구매자 관점에서 비즈니스적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면 기업의 전략 수립 과정에 파트너로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그 답변이 충분히 인사이트 있다면, 전략적 영향력을 확보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형 네트워크 업체가 AI에 무작정 올라타는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 AI가 긍정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AI는 어디까지나 ‘다른 분야의 이야기’이며, 네트워크 업체가 주도하거나 이끄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객이 “왜 네트워크에 AI를 도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다들 그렇게 하니까” 혹은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가 그렇게 말하니까”라고 답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확실한 대답이 과연 존재하는가?
마케팅 없는 전략은 없다
그 답은 이미 검증된 마케팅 방식에 있을지도 모른다. 진실에 살짝 기대면서도 남의 주장 위에 더 큰 틀을 덧씌우는 방식이다. “AI가 트래픽을 증가시킬 수는 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전체적인 관점에서 네트워크를 설계하는 것이다. AI는 현재 주목받는 일부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답하는 식이다. 필자는 이런 식의 접근을 “마케팅 우화(marketing fable)”라고 부른다. 전래 동화처럼 다채롭고 비유적인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형식은 상징적일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교훈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는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실제로 존재하는 변화 요인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IoT다. 스마트홈 기기를 제외한 순수 기업용 IoT만 보더라도 이 영역에서 발생하는 메시지의 양은 이미 엄청난 수준이다. 현재 보유한 기업 데이터를 산업군별로 분류한 뒤, 가중치를 적용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해 추정하면, 기업용 IoT가 일주일 동안 생성하는 메시지 수는 현재 전체 IT 프로세스가 1년 동안 생성하는 양을 넘어선다. 이 데이터를 기업 운영에 적극 활용한다면 네트워크 트래픽은 크게 증가하겠지만, 이런 정보를 분석하고 통합하는 일은 AI에 유의미한 임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단순히 “IoT!”라고 외친다고 해서 감탄하거나 주목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미 충분히 회자됐고, 한 차례 유행도 지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주제를 흥미롭게 만들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은, 현실이라는 제약 조건이 그 과정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IoT는 상상력만으로 포장하기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이제 핵심을 정리한다. 네트워크 분야는 마케팅의 본질을 잃었고, 다시 그 길을 찾아야 한다. 사양 시트는 마케팅이 아니라 영업 도구이고 보도자료는 마케팅이 아니라 메시지 전달 수단에 불과하다. 네트워크 업체들이 관심과 기대를 만들어내는 진정한 마케팅 활동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것일까? 모든 고객이 단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것을 얻고 싶다”라는 목적에만 집중하고 있다면,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마케팅을 포기하는 것은 곧 전략의 주도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전략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영업은 전략을 실행하고 마케팅은 그 전략에 공감할 ‘신봉자’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장에 내놓고 싶다면, 먼저 신봉자를 만들어야 비로소 고객이 생기고 매출이 따라온다.
이런 마케팅이야 말로 2025년 이후 네트워크 시장의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될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dl-itworldkorea@foundryco.com
tom_nolle editor@itworld.co.kr
저작권자 Foundry & ITWorl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