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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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글쟁이㈜ 대표 |
서평을 작성하려면 일단 책을 읽어야 한다. 서평을 작성하려면 책을 읽은 뒤 더 생각해야 한다. 책의 내용을 반추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따라서 서평을 작성하는 독서가는 일반 독자보다 다상량을 하게 된다.
책 리뷰 쓰기는 남다른 관점을 기르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자신의 서평이 출판사에서 내놓은 서평(보도자료)과 비슷하다면 쓸 이유가 없다. 서평자는 기본적으로 책 보도자료를 참고해야 한다. 보도자료와 어떻게 다르게 리뷰를 쓸지 궁리해야 한다. 이런 궁리를 달리 표현하면 글감에서 글을 풀어내는 자신의 앵글을 가다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적인 보도자료와 앵글을 잡은 리뷰를 비교해보자. 대상 책은 올해 출간 10년을 맞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경영서 〈제로 투 원〉. 이 책 보도자료 중 첫 문단은 다음과 같다.
[보도자료] 〈제로 투 원〉은 성공한 창업자 피터 틸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회사를 만들고, 미래의 흐름을 읽어 성공하는 법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0에서 1이 되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면 세상은 0에서 1이 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회사를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한 기업과 사람들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다. 기존의 모범 사례를 따라 하고 점진적으로 발전해봤자 세상은 1에서 n으로 익숙한 것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다.
이 보도자료의 첫 문장은 책의 내용을 요약한다. 이어 피터 틸의 지론을 개괄하는데, 구체적인 사실이 없어 다소 막연하다. 나는 이 책의 핵심이 ‘어떻게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숫자로 비유하면 0을 1로 바꾸어, 독점기업이 될 것인가’라고 봤다. 이와 비교할 접근은 기존의 사업 모델을 모방해 전체 숫자 n-1을 n으로 늘리는 데 그치는 것이다.
여기에 착안해 나는 리뷰의 첫 세 문단을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피터 틸 창조경영론]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을 캐라
“물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의 모형을 모방하는 게 더 쉽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사람들이 이미 아는 일을 다시 해봤자 세상은 1에서 n이 될 뿐이다.” 피터 틸은 〈제로 투 원〉에서 이같이 말하며 사람들이 이미 벌인 일을 다시 하는 당신은 n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만류한다. 그런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기 마련이어서 n이 각자 손에 쥐는 몫은 얼마 되지 않는다. 투자한 돈을 잃는 참가자도 속출한다.
틸은 페이팔같이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세상은 0에서 1이 된다”고 강조한다. 무(제로)에서 유(원)가 창조되는 거이다. 그런 분야에서는 경쟁자가 들어오지 못한다. 퍼스트 무버인 기업이 라스트 무버가 된다. 독점기업이 된다는 얘기다. (출처: 아시아경제, 2014.12.19.)
보도자료의 첫 문장은 책을 요약했는데, 내 리뷰는 틸이 만류하는, 지양할 신규 사업 접근 방식을 틸의 말을 인용한 문단으로 시작했다. 더 구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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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기사·추천사와 차별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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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할 대상은 보도자료에 그치지 않는다. 활자매체 기자들이 작성한 신간 리뷰들과 추천사와도 앵글이 달라야 한다. 쉽게 말하면 글을 풀어나가는 방식, 도입부(인트로)가 달라야 한다. 차별화의 과정은 적지 않은 모색을 요구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보도자료와 활자매체 리뷰의 다양한 앵글을 참고하게 되고, 자신의 앵글을 잡는 촉이 발달한다.
책을 읽는 과정을 1차 독서라고 하면, 추천사와 보도자료, 활자매체 리뷰를 읽는 과정을 2차 독서라고 할 수 있다. 2차 독서는 리뷰를 작성하기에 더 가까운 재료를 제공한다. 그 재료는 글을 구성하고 전개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표현이기도 하다.
책을 꼭 읽지 않더라도 매주 활자매체의 신간 리뷰만 꼼꼼히 읽어도 자신의 서평을 쓰는 노하우와 자산을 축적하게 된다.
필자 생각에 아쉬운 리뷰 유형이 있다. 일정 형식에 맞춰 책을 정리하는 글이다.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발췌하고, 자신의 생각을 메모한 뒤, 그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열거하는 등으로 양식이 정해져 있다. 리뷰는 하나의 글로 구성·전개되어야 한다. 그런 리뷰를 써야 필력이 탄탄해진다.
출간된 지 몇 년 된 책일 경우 기존에 작성된 서평과 다른 앵글을 잡기가 어렵다. 이런 경우 책과의 사연으로 글의 실마리를 풀어낸 뒤 개인적인 취향과 가치관에 따른 평가 위주로 리뷰를 쓸 수 있다.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리뷰와 추천사가 여럿 있다. 리뷰 중 하나의 도입부 및 종결부와 추천사 하나를 소개한다. 리뷰 대상 소설은 〈파라오의 음모〉. 이 소설의 소재는 이집트 왕의 계곡에 조성된 임호테프의 무덤이다. 임호테프는 파라오 조세르가 통치한 시대 의술의 천재로서 총리를 겸했고 사카라에 첫 피라미드를 건축했다.
임호테프는 신성의 궁극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인간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신으로 죽은 임호테프의 무덤에는 세상의 모든 지식과 황금이 봉인됐다. 고고학자와 도굴꾼들은 돌문이 영원으로 통한다고 생각했다.
[리뷰] 〈파라오의 음모〉는 추리 소설이 아니라 한 마리의 독충이다. 나일강 갈대 숲에 은신하다가 사람 피부 깊숙이 파고들어 살점을 잘라내기 전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주혈 흡충류.
책장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독벌레의 맹독에 마비되어 이집트 왕들의 계곡을 배회한다. 그곳 어딘가에 누구의 발길도 닿은 적이 없는 임호테프의 무덤이 숨어 있다.
(중략)
오, 세상의 힘을 싹트게 하는 임호테프여. 그의 육체는 태양신 라처럼 빛난다. 그는 우리에게 빛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며 그의 정신으로 무지의 어둠을 몰아낸다. 깨어나라, 임호테프여. (출처: 노성두, 고대 이집트 영웅의 무덤을 찾아라, 동아일보, 2001.3.9.)
추천 대상이 된 책은 작가 부희령의 〈무정 에세이〉. 추천사를 쓴 이는 칼럼 쓰는 요리사, 또는 요리하는 칼럼니스트 박찬일.
[추천사] 부희령의 글을 가끔 읽었다. 그럴 때마다 촉수 낮은 등이 하나씩 마음 한켠에 켜졌다. 그렇게 모은 등이 어느덧 마음을 데우고 길을 밝혔다. 그이가 한 글자씩 타자기를 두드렸던 공력이었다. 그렇게 희미한 등을 의식하면서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중략)
여기 실린 글들은 어쩌면 늘 실패하고 곤란에 처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내는 작가의 따뜻한 작은 불빛일 것이다. 그 불이 설령 꺼질지라도, 다시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사람들을 배려하는 작가의 마음씀을 등불로 비유했다. 직설보다, 직유보다, 은유가 더 잔잔히 독자에게 스며듦을 이 글은 잘 보여준다.
추천사를 즐겨 읽는 내게도 추천사를 쓸 기회가 찾아왔다. 대상 책은 〈달리기의 힘〉. 저자 김준형은 30년 기자로 활동했고, 20년 넘게 달려왔다. 출판사는 “그에게 글쓰기가 밥벌이였다면 달리기는 밥벌이를 가능케 한 육체와 정신의 버팀목이었다”고 전한다.
이어 “달리기의 즐거움을 널리 퍼뜨리고 싶은 게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몸속에 지니고 있는 바이러스”라면서 “그 바이러스를 한 문장 한 문장씩 늘어놓은 게 이 책에 담긴 글이다”라고 소개한다. 나는 이 책의 추천사를 다음과 같이 썼다.
[추천사] 위트 넘치고, 체험 생생하며, 사유 그윽하다. 저자가 국내외 도시와 산, 섬을 발로 누비며 오간 천국과 지옥에 독자는 빠져들 수밖에 없다. 안 뛰는 사람들도 ‘달리기 바이러스’에 감염시키고 말 책이다.
단 세 문장으로 구성된 추천사이지만, 각 문장에는 역할이 있다. 첫째 문장은 재미를 비롯해 책이 주는 효용을, 마치 달리기의 트로트 주법 같은 주어 술어 반복을 통해 던졌다. 둘째 문장은 책의 내용이다. 셋째 문장은 글을 마무리한다. ‘달리기 바이러스’라는 콘셉트는 결과적으로 출판사의 책 소개 콘셉트와 겹치게 됐다.
다독하고 리뷰를 씀으로써 다상량, 다작하다 보면 언젠가 당신도 추천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좋은 책에 기꺼이 추천사를 쓰는 재미와 보람을 언젠가 누리시길.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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