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이데일리 언론사 이미지

270만 외국인 시대의 한국[이희용의 세계시민]

이데일리 최은영
원문보기

270만 외국인 시대의 한국[이희용의 세계시민]

서울맑음 / -3.9 °
이희용 언론인·이데일리 다문화동포 자문위원
[이희용 언론인·이데일리 다문화동포 자문위원]‘안녕?! 오케스트라’는 2013년 경기도 안산에서 출범한 다문화 관현악단이다. 미국 입양아 출신 어머니를 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가르쳐 함께 공연을 펼치는 과정은 MBC TV 다큐멘터리와 극장용 영화로 꾸며져 감동을 선사했다.

2023년 다문화 관현악단 ‘안녕?! 오케스트라’ 재개기념연주회 모습.(사진=안산문화재단)

2023년 다문화 관현악단 ‘안녕?! 오케스트라’ 재개기념연주회 모습.(사진=안산문화재단)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초청공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협연, 서울 예술의전당 신년음악회 출연 등의 무대 경력을 쌓아가며 ‘안산의 작은 기적’으로 불렸다. 코로나19 여파로 해체됐다가 2023년 활동을 재개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단원 37명 가운데 16명이 다문화가정 자녀다.

글로벌 보이그룹 소디엑(XODIAC)은 9명 멤버 가운데 3명이 외국인이다. 2023년 4월 25일 싱글앨범 ‘쓰로우 어 다이스’(THROW A DICE)로 정식 데뷔했다. 2024년 드림콘서트에서 슈퍼루키로 뽑혔고 대한민국 한류연예대상(라이징스타 보이그룹)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태생의 서브보컬 자얀은 음악 유튜버로 활동하다가 현지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합류했다. 홍콩 출신의 메인보컬 씽과 래퍼 겸 서브보컬 리오는 각각 2019년과 2021년부터 한국에서 연습생으로 생활하며 K팝 스타의 꿈을 키웠다.

‘해피 스타트 합창단’은 2019년 10월 21일 결성됐다. 수원출입국·외국인청 직원과 자원봉사 이민자 2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수원에서 매달 열리는 국적 수여식에서 공연을 펼치며 이민자들의 행복한 새 출발을 응원한다.

5월 20일은 제18회 세계인의 날이다. 2007년 5월 제정한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따라 이듬해부터 기념해왔다. 이날 오후 2시부터 법무부 주최로 과천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기념식에서는 안녕?! 오케스트라가 오프닝 공연을 펼치고 소디엑과 해피 스타트 합창단이 축하 무대를 꾸민다.


지난 3월 말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272만 2108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5.27%를 차지한다. 세계인의 날 지정 당시의 2.0% 수준에서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제는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공장의 기계를 돌릴 수도 없고 농작물 수확조차 엄두를 내지 못한다. 외국인 유학생이 들어오지 않으면 수도권을 제외한 대학들은 정원을 채우기도 어렵다.

그러나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이나 이듬해 제정된 다문화가족 지원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고용허가제도 인권 침해 요소가 많고 고용 시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데도 22년째 골격이 바뀌지 않고 있다.

국회와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외국인 차별은 심화하고 국민의 다문화 감수성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 국면을 지나면서는 노골적인 혐오 발언(헤이트 스피치)이나 공격적 행동이 부쩍 늘어났다.


유엔 인종차별위원회도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에서 이주민, 난민, 중국계 등에 대한 인종차별적 증오 발언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재차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관련 법률 제·개정 ▲공인의 혐오 발언 처벌 ▲공공 교육 캠페인 등을 권고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주요 정당과 정치인들은 인기나 득표 등을 의식한 탓인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21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유력 후보들이 내세운 10대 공약에는 이주민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가 ▲이주배경시민청 설치 ▲이민사회기본법 제정 ▲노동비자영주제도 도입 ▲난민법 개정을 약속하고 무소속 송진호 후보가 ▲다문화가정지원청 신설 및 통합행정서비스 운영 ▲외국인 근로자 노동권 보호 ▲차별금지법 시행을 제시했을 뿐이다. 반면 무소속 황교안 후보는 내국인 역차별 금지 및 외국인 우대 정책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라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시대적 과제를 피해 가면 안 된다. 선거는 주요 국가적 어젠다를 공개적으로 토론하며 문제 해결의 방향과 속도를 조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남은 선거운동 기간에라도 유력 후보들이 이민 문제에 관한 구체적 공약을 내놓고 유권자들의 평가와 선택을 받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