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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두만강 자동차다리'의안보적 함의 [남성욱의 동북아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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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두만강 자동차다리'의안보적 함의 [남성욱의 동북아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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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이래 최대 전성기 맞은 북한 외교
북러 급속 접근 속의 자동차 다리 건설
'부동항' 쫓는 러시아의 남진정책 우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인 30일 북한 나선과 러시아 하산에서 북러 국경 자동차 다리 건설 착공식이 동시에 개최됐다고 1일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시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인 30일 북한 나선과 러시아 하산에서 북러 국경 자동차 다리 건설 착공식이 동시에 개최됐다고 1일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시스


북한 외교의 만조기다. 주체외교 75년 역사에서 평양 수뇌부가 지금보다 운신의 폭이 넓은 시기를 찾기는 어렵다. 베이징과 모스크바의 정상들이 한 목소리로 대북제재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모스크바 전승절 행사에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한 목소리로 북한을 두둔하며 반미연대를 강조했다. 푸틴은 열병식에 참여한 북한군 장성을 포용하고 격려했다. 김정은이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흘린 피의 대가를 차근차근 받아내고 있다.

이르면 9월에는 블라디보스톡 동방포럼에서 김정은과 푸틴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양국 밀착이 구체화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휴전이 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을 노리고 평양과의 정상회담을 모색할 것이다. 김정은의 위상이 결코 간단치 않은 형국이다.

1950년 초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성은 스탈린이 면담 기회를 주지 않자 허술한 외곽 호텔에서 장기간 대기해야만 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북·러 결탁이 가져올 다양한 결과 중에서 첨단 군사기술 이전 이외에 주목할 것은 지난해 6월 북러 군사동맹조약 17조에 따른 '두만강 자동차다리'의 착공이다.

코로나가 확산되던 2021년 2월 러시아 외무부는 페이스북에 평양 주재 외교관과 가족 등 8명이 두만강 철교를 건너 국경을 통과했다고 알렸다. 평양을 출발하여 기차로 32시간, 버스로 2시간을 이동해 함경북도 나선시 국경에 도착한 이들은 1㎞ 가량 철길에서 수레를 밀며 국경을 넘어 러시아 하산역에 도착했다. 철길을 따라 수레를 밀면서 국경을 빠져 나오는 사진은 북한의 교통망이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고립되었다는 것을 상징했다.

북·러를 육로로 연결하는 두만강 철교는 1개에 불과하다. 북·중 국경을 연결하는 교량이 17개에 달하는 것을 고려할 때 북한의 대중과 대러 관계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말 나선과 하산에서 동시에 개최된 '자동차다리 착공식'은 한반도 동북반구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국의 총리들은 착공식 화상 연설에서 '양국 관계의 만년 기틀'을 다지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리는 이순신 장군이 초급장교 시절 근무했던 녹둔도와 인접한 지역이며 기존 철로에서 하류 쪽 400m 지점에 건설된다. 교량 연결의 함의는 다음과 같다.


우선 양국 간 물류 이동의 인프라가 구축되면 러시아 자본이 북한으로 들어오면서 텅스텐 등 희귀 광물의 개발도 이뤄질 것이다. 북한 구역 철도 구간은 일제가 건설한 폭 1,435㎜의 표준궤, 러시아 측은 1,524㎜ 광궤로 국경을 넘을 때마다 바퀴를 조정하는 등 장애가 있었다. 내년 말 완공 예정인 850m길이 자동차다리는 물류와 인적 이동의 수준을 확대할 것이다. 교량 완성으로 양국의 물류 이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경제협력 측면보다는 군사안보적 측면이 복잡하다. 소련군은 일본 패망이 가까워지자 청진 등에 전격 진입했다. 소련 주력군은 원산 함흥 등 해안에 함정으로 상륙해서 군정을 시작했다. 지금의 나진-하산 연결 도로망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자동차다리가 완공되면, 해로와 육로를 통한 병력 이동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다. 유사시 러시아군의 한반도 북반구 진입이 지금과는 다른 차원으로 진행될 수 있다. 자본 이외에 군사력이 들어올 수 있다.

'지리의 힘'의 저자 팀 마샬은 '신이여 우크라이나에 어찌하여 산맥을 두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지정학적 장벽이 없는 것을 한탄했다. 두만강 국경에 자동차다리가 건설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인 한반도 통일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복잡한 심정이다. 우리 고속도로가 시베리아 횡단 하이웨이로 연결되는 중계자가 되어 북한의 개혁 개방에 단초가 될지는 미지수다. 혹은 북한이 남한을 비난할 때 사용하는 외세 개입의 입구를 본격적으로 확대하여 러시아 군사력이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한반도로 남진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할지 유심히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