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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고비를 세 번 넘기고 생각한 것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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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고비를 세 번 넘기고 생각한 것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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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원NC파크에 고인을 추모하는 조화 등이 놓여 있다. 3월 29일 창원NC파크 3루 매점 인근에서 구조물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숨졌다. 연합뉴스

4월 29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원NC파크에 고인을 추모하는 조화 등이 놓여 있다. 3월 29일 창원NC파크 3루 매점 인근에서 구조물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숨졌다. 연합뉴스


나는 "죽을 뻔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꼽아보니 여러 번 있었고 간발의 차이로 위기를 벗어난 적도 많았다.

두 번째 직장에 다닐 때 심한 스트레스를 달래느라 술을 마시고 밤늦게 직행버스를 탔는데 잠이 들어 정류장을 놓쳤다. 난생처음 보는 정류장에 내려 수십 미터나 되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중간의 교통 섬에 들어온 빨간 신호등은 보지 못하고 저 길 건너에 파란 신호등이 들어온 것만 보고 걷다가 차에 치일 뻔했다. 멀리서 수십 대가 달려왔는데 고마운(!) 운전사가 경적을 눌러줘서 얼른 뒷걸음질쳤다. 자칫하면 운명이 바뀔 뻔하지 않았나. 항상 술이 문제다.

중학생일 때 근처에 살던 친척 누님들이 5층 아파트 열쇠를 잃어버려서 저녁에 난감해했다. 그 옆집이 문을 열어줬는데 나는 베란다에서 베란다로 옮겨 가서 '대담하게(?)' 해결해버렸다. 직장에 다니던 누님이 "아, 몰라. 나는 넘어가라고 하지 않았어" 하고 겁에 질려 하던 목소리가 기억난다. 사실 나는 두세 시간 후에 열쇠를 가진 다른 누님이 퇴근하기를 기다렸어야 했다. 과신은 불행이 되곤 한다.

역시 중학생일 때 나는 이웃 아파트 단지 안의 도로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곤 했다. 산발치에 세운 단지여서 씽씽 달릴 경사진 도로가 많았다. 처음 가보는 코스로 달린 어느 날 직감적으로 '여긴 아니다'라는 생각에 몸을 던져 굴렀다. 멀리 화단에 20㎝ 높이의 창날들이 이어진 쇠울타리가 보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쓰러진 뒤에 그곳으로 들어선 아이 하나가 결국 거기서 창날에 심하게 찔렸다. 나는 그 장면이 트라우마가 됐는데 수십 년 후에 그곳에 다시 찾아가 보니 창날은 둥근 스테인리스 공으로 바뀌어 있었다.

왜 어른들은 그런 생각을 좀 일찍 하지 못했을까. 그 아파트 단지 입구의 벽에는 구청이 준 ‘건축문화상’ 패도 있는데 감독한 이들은 왜 그토록 뚜렷한 위험 요인을 못 보고 방치했을까. 나는 송년회를 마치고 집에 가다가 지하수로에 빠져 며칠을 칠흑 같은 어둠과 추위 굶주림에 시달려 죽기 직전까지 간 분에 대해 책에 쓴 적이 있다. 사실 그것은 공사를 하던 어느 인부가 맨홀 뚜껑을 닫지 않고 퇴근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다.

야구장 구조물이 떨어져 무고한 젊은 여성이 숨졌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 물으면 "건강"이라고 답하기 쉬운데 사실은 "안전"이다. 나의 안전만큼 남의 안전도 극도로 중요하다. 자칫하면 사람이 죽는다. 이것은 사소한 일을 하려고 할 때도 마지막에는 "안전에 소홀한 건 없는지?" 간절하게 점검하는 습관을 요구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겉으로는 정상인데 사실은 이런 점검을 해낼 수 없는 이들을 만난다. 주의력과 상상력에 한계가 있는 이들이다. 이 점을 알아채서 보살피고, 관리 감독을 잘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삶을 평온하게 하는 숭고한 일이다.


권기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