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세계일보 언론사 이미지

"하나된 교회, 화해된 세상 위한 누룩 돼야"

세계일보
원문보기

"하나된 교회, 화해된 세상 위한 누룩 돼야"

서울흐림 / 21.3 °
교황 레오 14세 즉위 미사 개최

“불화·증오·폭력·편견 등 여전
가난한 사람 소외시켜 상처 많아”

전임 교황 가치 계승 의지 표출
통합도 강조 보수파 끌어안아

美 밴스 부통령·獨 메르츠 총리 등
세계 각국 정상·고위 인사 만나
교황 레오 14세가 18일 오전 10시(현지시간·한국시간 오후 5시)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즉위미사를 거행해 새로운 교황의 취임을 전 세계에 정식으로 알렸다.

교황은 즉위미사 강론에서 “우리의 첫 번째 큰 소망은 일치와 교감의 상징인 하나 된 교회가 화해된 세상을 위한 누룩이 되는 것”이라며 “하나 된 교회가 세상의 평화를 위한 힘이 되기를 원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 시대에는 여전히 불화와 증오, 폭력, 편견, 차이에 대한 두려움, 지구의 자원을 착취하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경제 패러다임으로 인한 상처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비판적이던 전임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핵심 가치를 잇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어부의 반지’ 끼고 인사하는 교황 레오 14세 교황(가운데)이 18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즉위미사를 집전한 뒤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오른손에 착용한 ‘어부의 반지’는 초대 교황 성 베드로를 상징하는 인장이 새겨진 것으로, 바티칸 공식문서 서명날인에 사용되는 교황권의 상징이다. 바티칸=AFP연합뉴스

‘어부의 반지’ 끼고 인사하는 교황 레오 14세 교황(가운데)이 18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즉위미사를 집전한 뒤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오른손에 착용한 ‘어부의 반지’는 초대 교황 성 베드로를 상징하는 인장이 새겨진 것으로, 바티칸 공식문서 서명날인에 사용되는 교황권의 상징이다. 바티칸=AFP연합뉴스


교황 레오 14세가 즉위미사 거행 하루 전인 17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사저 사도궁전에서 교황청 백주년기념재단(CAPP) 주최 ‘2025년 총회 및 국제 콘퍼런스’ 회원들과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바티칸=EPA연합뉴스

교황 레오 14세가 즉위미사 거행 하루 전인 17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사저 사도궁전에서 교황청 백주년기념재단(CAPP) 주최 ‘2025년 총회 및 국제 콘퍼런스’ 회원들과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바티칸=EPA연합뉴스


아울러 가톨릭 정통파가 중시하는 ‘통합’을 강조함으로써 프란치스코 전 교황과 반목하던 보수파도 끌어안으려 했다. AP통신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양극화를 고려할 때 교황이 즉위미사에서 일치와 단결을 촉구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즉위미사에 앞서 교황은 성 베드로 지하 경당에 있는 초대 교황 성 베드로의 무덤 앞에서 기도, 분향을 했다. 레오 14세가 성베드로광장에 전용 차량을 타고 모습을 보이자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비바 일 파파’(Viva il Papa, 교황 만세), ‘파파 레오네’(Papa Leone, 교황 레오)를 외치며 환호했다. 차량은 수십명의 경호원으로 둘러싸인 채 성베드로광장을 지나 티베레강으로 이어진 긴 대로를 따라 이동했다. 교황은 이동 중 두 차례 정차해 아기들을 축복하기도 했다. 즉위미사 강론에 앞서 세 명의 추기경에게서 ‘팔리움’, ‘어부의 반지’를 전달받았다. 팔리움은 어깨에 두르는 양털로 만든 흰색 띠로 ‘선한 목자’로서의 역할을 상징하며, 초대 교황인 베드로가 새겨진 어부의 반지는 교황의 권위를 상징한다.

즉위미사를 마친 뒤 세계 각국 정상과 고위 인사들을 맞았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미사에는 J D 밴스 미국 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교황 즉위미사… 150여개국 축하 교황 즉위미사가 열린 18일(현지시간) 레오 14세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거행된 즉위미사에는 전 세계에서 150여개 대표단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새로운 교황의 즉위를 축하했다. 바티칸=AP연합뉴스

교황 즉위미사… 150여개국 축하 교황 즉위미사가 열린 18일(현지시간) 레오 14세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거행된 즉위미사에는 전 세계에서 150여개 대표단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새로운 교황의 즉위를 축하했다. 바티칸=AP연합뉴스


즉위미사를 앞두고 교황이 국제현안에 대해 보다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행보를 보인 것은 주목된다. 그가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적 성향을 어떻게 계승하고 실천할지는 지난 8일 선출된 이후 내내 국제사회의 관심사였다.


교황은 16일 바티칸 주재 외교단을 상대로 한 첫 연설에서 이민자에 대한 존중을 촉구했다. 교황청에 따르면 그는 이날 바티칸에서 각국 주교황청 대사들에게 “저 자신도 이민자의 후손이자 직접 이민을 선택한 사람”이라며 인간의 존엄성은 어느 곳에 살든 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태아부터 노인까지, 병든 이부터 실직자까지, 시민이든 이민자든 상관없이 누구든 모든 이의 존엄성을 보장하려는 노력에서 제외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은 강경한 이민 제한 정책을 쓰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향후 관계 정립에서 중요한 신호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 이민정책을 두고 프란치스코 전 교황과 갈등을 빚었다.

바티칸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회담 장소로 제안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직접 회담이 큰 성과 없이 종료되자 16일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추기경)이 교황의 이런 의중을 취재진에게 전했다고 이탈리아 일간 라스탐파 등이 보도했다. 교황이 “필요한 경우 바티칸 교황청을 양국의 회담 장소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 파롤린 국무원장의 전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교황의 관심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11일 부활 삼종기도에서 “진정으로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에 도달해야 한다”고 호소했고, 취임 직후 국제 정상 가운데 첫 통화 상대로 젤렌스키 대통령을 선택했다.

임성균 기자 imsung@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