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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으로 이겼습니다”···‘내란의 밤’ 물리치고 ‘광주의 밤’ 함께한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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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으로 이겼습니다”···‘내란의 밤’ 물리치고 ‘광주의 밤’ 함께한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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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5·18민주묘지 전국 각지에서 발걸음 ‘북적’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고 ‘소년이 온다’ 낭독
계엄 계기 첫 방문도···“똑바로 된 나라 만들어야”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안은 18일 사람들로 북적였다. 1층 전시관 벽을 따라 줄지어 선 사람들이 몸을 기울이고 흑백 사진들을 응시했다. 전시를 보러 순천에서 온 류시겸씨(32)도 사진들을 봤다. 1980년 5월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의 모습에서 ‘2024년 12월 여의도’가 보였다. ‘어떻게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류씨는 광주의 5월이 더 이상 먼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45주년째를 맞은 5·18민주화운동이지만 올해 ‘광주의 5월’은 여느 때와 달리 특별했다. 12·3 불법계엄을 거친 해였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낳은 광주였다. 소설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감인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동시에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통과한 5월이었다. 17~18일 이틀 간 시민들은 때로 추모하고 때로 즐기며 이 특별한 ‘광주의 밤’을 함께 보냈다.

묘지 앞에서 ‘소년이 온다’ 읽으며···애도하는 시민들


지난 17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만난 김제우씨(46)의 발걸음은 제1묘역 좌측 구석에서 멈췄다. 겨우 열댓살 된 어린 얼굴이 영정 사진에 담겨 있었다. 경북 포항에서 온 김씨는 “올해는 꼭 광주에 오고 싶었다”며 “12·3 계엄을 해제할 수 있었던 것은 묘지에 계신 광주 시민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여의도에서, 남태령에서, 광화문 등에서 내란에 맞서 깃발과 응원봉을 들었던 것은 45년 전 광주정신과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내리쬐는 볕에 연신 땀을 훔치면서도 걸음을 한발한발 늦추며 묘지를 둘러봤다.

이날 민주묘지는 각종 단체 등에서 찾아온 시민들로 붐볐다. 입구 앞에선 광주 시민들이 방문객들을 반기며 주먹밥과 생수 등을 나눠줬다. 묘역 곳곳에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묵념을 하거나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낭독했다. 청년들은 동그랗게 묘지를 둘러싸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지난 17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시민들이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 17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시민들이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우혜림 기자


12·3 불법계엄을 계기로 광주를 처음 방문한 시민들도 있었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새벽부터 운전해 광주를 찾았다는 안미영씨(65)는 “광주 시민들이 피땀으로 세운 민주주의가 12·3 불법계엄 때 한순간 무너지는 걸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민주화 영령들에게 기도드리고 도움도 청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이날 안씨는 묘비에 쓰인 이름 하나하나를 읊으며 ‘주여, 이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충북 논산시에서 온 조세연씨(63)도 처음 광주를 찾았다. 조씨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광주를 이용해 죄 없는 국민을 죽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싸운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서라도 똑바로 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조세연씨(63)가 국립5·18민주묘지를 둘러보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 17일 조세연씨(63)가 국립5·18민주묘지를 둘러보고 있다. 우혜림 기자


축제로 뻗어간 광주 정신···“우리는 사랑으로 이겼습니다”


이날 광주는 ‘추모의 공간’이면서 ‘축제의 공간’이기도 했다. 시민들은 12·3 불법계엄을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이끌어낸 ‘광주 정신’을 되새기며 금남로에서 열린 5·18전야제를 즐겼다. 5·18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던 금남로는 이날만큼은 축제의 광장이 됐다. 전야제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색색의 분필로 아스팔트 바닥에 ‘광주 화이팅’ 등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저녁이 되자 시민들은 공연을 즐기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도로에 설치된 전광판에서 탄핵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얼굴을 상영하며 “우리는 사랑으로 이겼습니다”라고 글귀를 띄우자 시민들이 환호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전야제에서 한 어린이가 아스팔트 바닥에 분필로 ‘광주 화이팅’이라고 쓰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전야제에서 한 어린이가 아스팔트 바닥에 분필로 ‘광주 화이팅’이라고 쓰고 있다. 우혜림 기자


서울 은평구에서 온 해인씨(30)는 “끝도 없는 행진 행렬을 보면서 ‘광주는 어쩌면 이렇게 멋있을까?’라고 생각했다”며 “온전히 정의로워지는 기분은 정말 짜릿하고 소중하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온 성기원씨(33)도 “우리가 탄핵 국면에서 포용력 있는 광장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광장의 첫 주자이자 대표 주자인 광주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올해의 광주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성씨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전일빌딩245 등 곳곳을 찍었다. 전일빌딩245는 1980년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245’는 총탄 흔적의 개수이자 전일빌딩의 도로명 주소다.

전야제가 끝날 무렵 밤 9~10시에는 중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오월 텐트촌’이 열렸다. 5·18에 맞춰 518개의 캠프가 설치됐다. 텐트촌에 참여한 시민들은 옛 가수의 노래를 듣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5·18의 전날 밤을 마무리했다. 공수영(39)씨는 “오늘 서남대병원이 방문객들에게 공개돼 있어서 딸과 다녀왔다”며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웃었다. 서남대병원은 5·18 당시 광주적십자병원으로, 시민 부상자들을 치료한 병원이다.


지난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 전야제에 참여한 한 시민이 슬로건을 들고 웃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 전야제에 참여한 한 시민이 슬로건을 들고 웃고 있다. 우혜림 기자


“다양한 사람들이 광주 진실 알았으면”···앞으로의 광주는


광주 시민들은 ‘축제의 광장’이 된 도시를 반겼다. 광주 시민 황영주씨(56)는 “솔직히 10년 전만 해도 광주 시민인 것이 자랑스럽지 않았다”면서도 “여러 사람들이 광주 정신을 기억해주니 ‘우리가 여기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광주 정신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쁘다”고 말했다. 신희중씨(58)는 “더 많은 지역 사람들이 광주를 찾아서 5·18민주항쟁과 관련된 진실들을 똑바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지난 17일 밤 광주 동구 중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오월텐트촌’에 참여한 황영주씨와 신희중씨가 웃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 17일 밤 광주 동구 중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오월텐트촌’에 참여한 황영주씨와 신희중씨가 웃고 있다. 우혜림 기자


18일 오후 5시18분이 되자 5·18시계탑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렀다. 광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묘역에서, 거리에서 울고 웃었다. 축제와 추모가 뒤섞였다. 2024년 12월3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고 2025년 5월18일 산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기 위해 광주에 모였다. 아픔의 공간, 저항의 공간이었던 광주는 이제 또 어떤 5월을 마주하게 될까. 앞으로의 광주가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지 묻자 해인씨가 말했다. “광주는 거기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커요. 광주에 더 이상 뭔가를 바라지 말고, 그저 광주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요.”

우혜림 기자 sa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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