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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이재명엔 '환호' 국민의힘엔 '항의'…5·18 기념식 갈라진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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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이재명엔 '환호' 국민의힘엔 '항의'…5·18 기념식 갈라진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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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
이재명·이준석 등 대선 후보 참석…김문수 불참
"5·18 헌법 수록, 이번이 마지막 기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광주=서다빈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광주=서다빈 기자


[더팩트ㅣ광주=서다빈 기자] 45년이 지났지만 광주 시민들의 아픔은 여전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하늘은 유난히 맑았지만, 시민들의 표정은 흐렸고 곳곳에서 눈물과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기념식이 시작되자 묵념과 함께 울음도 번졌다. 한 참석자는 아들의 사진이 담긴 스마트폰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흐느꼈고, 끝내 고개를 들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무대와 객석을 가리지 않고 눈시울을 붉힌 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광주의 상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우원식 국회의장, 김형두 헌법재판관 권한대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등 주요 대선 주자들이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도 자리를 지켰고,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참석했다.

대통령 권한대행과 대선 주자들이 대거 참석한 만큼, 경비도 삼엄했다. 피습 가능성 등을 고려해 경찰특공대가 망원경으로 주변을 수시로 살폈고, 경찰 버스 50여 대가 민주묘지 진입로를 가득 메웠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시민들의 반발로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광주=서다빈 기자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시민들의 반발로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광주=서다빈 기자


현장은 때때로 소란스러웠다. 이준석 후보가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던 중,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기념식장으로 입장하려 하자 시민들과 충돌이 발생했다. 격앙된 시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와", "내란 세력 나가"라고 외치며 몸으로 길을 막았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준석 후보가 "누구야 누구?"라고 묻자 천하람 개혁신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짧게 "국민의힘"이라고 답했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기념식장에 들어설 때도 소란은 반복됐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 계엄령 논란과 관련된 권고안을 일부 수정한 전력이 알려지자, 시민들과 5·18 단체 회원들은 "안창호가 어떻게 들어가냐"며 그를 둘러싸고 항의했다. "안창호는 5월을 무시하는 거냐", "민주의 문을 밟을 자격이 없다"는 외침이 이어졌고 결국 안 위원장은 3분 만에 현장을 떠났다.


이재명 후보가 등장하자 분위기는 단번에 반전됐다. 시민들은 "이재명", "대통령"을 연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행사 직후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위해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 의원들이 줄지어 등장하자 이들을 보기 위한 3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날 기념식에는 우원식 국회의장(왼쪽부터), 김형두 헌법재판관 권한대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참석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TV 토론 준비를 이유로 기념식에 불참했다. /광주=서다빈 기자

이날 기념식에는 우원식 국회의장(왼쪽부터), 김형두 헌법재판관 권한대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참석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TV 토론 준비를 이유로 기념식에 불참했다. /광주=서다빈 기자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5월 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기념식에 불참했다. 전날 묘역을 찾아 조용히 참배한 그는 TV 토론 준비를 이유로 현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광주 시민들 사이에서도 김문수 후보의 불참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당연한 선택"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일각에서는 "정치를 떠나 역사인 만큼,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참여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5·18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서모(63·남성) 씨는 "아직도 악몽에 시달린다. 5월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면서 "김문수가 예전에는 5월 단체에 관심도 많았는데, 계엄을 옹호하고.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변하냐"고 씁쓸해했다.

경기도에서 기차를 타고 현장을 찾은 박혜진(31·여성) 씨는 "유가족과 관련 단체 분들이 '김문수 후보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기사를 봤다"며 "그분들의 의견을 지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왜 김문수 후보를 콕 집어 오지 말라고 말한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청년 유권자들도 기념식 현장을 찾았다. 설월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박서연(18) 양은 "교복을 입고 당당히 투표장에 갈 거다. 아직 누굴 뽑을지 정하지 못했다"며 "김문수 후보가 흘린 눈물은 민주 시민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행사 직후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위해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 의원들이 줄지어 등장하자 이들을 보기 위한 3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광주=서다빈

행사 직후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위해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 의원들이 줄지어 등장하자 이들을 보기 위한 3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광주=서다빈


광주 시민들은 "5·18의 상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대통령이 누가됐든 반드시 책임지고 마무리해야 할 역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이 매번 5·18의 헌법 수록을 약속하면서도 끝내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동생 성연호(14) 군과 함께 현장을 찾은 전남대 역사교육과 1학년 성재민(20·남) 씨는 "역사적인 사건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참석 여부를 따질 게 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추모하고 기억하는 게 역사의 의의라고 생각한다"며 "김 후보가 참석하지 않은 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18은 현재 진행형이고 아직 결론이 지어지지 않았다. 역대 정부들이 어정쩡하게 떠넘기고 흐지부지 넘겨온 것 같다"며 "다음 정부가 누가 되든 그 부분은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줬으면 좋겠고, 아직 해결 안 된 문제들도 많아서 그런 것들을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5·18 유공자 최충용(74·남) 씨는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역대 정부에서 실현되지 않은 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김문수도 그랬지만 (대선 후보들이)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하겠다고 했다. 근데 이쪽 지역 대통령들 전부 다 헌법에 수록한다고 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며 "헌법 수록, 이번이 진짜 마지막 기회"라고 촉구했다.

bongous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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