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이코노믹리뷰 언론사 이미지

[K모빌리티, 반등기회 노려라] 갈팡질팡 미국 자동차 관세에… 車 기업 '탄식'

이코노믹리뷰
원문보기

[K모빌리티, 반등기회 노려라] 갈팡질팡 미국 자동차 관세에… 車 기업 '탄식'

서울맑음 / 19.0 °
[양정민 기자] 도비라: '피트스톱', 모터스포츠에서 타이어 등을 새 부품으로 바꿔 추월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차량은 잠깐 뒷순위로 밀려나지만 곧 싱싱한 새 타이어와 부품을 내세워 앞 순위 차량 추월을 노리는 작전이다.

한국 자동차 기업들에겐 지금 피트스톱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에 25% 관세를 측정했으며 중국은 가성비 전기차를 내세워 한국 내수시장과 한국 자동차 기업들의 주요 시장을 넘보고 있다. 주요 판매 국가들을 뺏길까 발을 구르며 시장을 관망하기보단 당장 경쟁자들을 보내주더라도 미래 방향을 바로 세우고 번뜩이는 전략으로 이들을 추격해야 할 순간이다.


"미국 수출 방침을 사실 어떻다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정책 방향이 바뀌어 있어 어떠한 계획을 세우기보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대응하는 식으로 기업도 업무 방향을 세우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수입차 관세 정책을 강력히 밀고 나가자 한 완성차 기업 관계자가 한숨을 내뱉으며 한 말이다. 어려운 일을 당해 온갖 계교를 써도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한다는 뜻의 '계무소출'이란 사자성어처럼 어떠한 대미 방향성을 세우기도, 기업 입장에선 특정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곤란하다는 입장이라는 것이 관계자의 걱정이었다.

지난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차에 25% 관세를 책정한 데 이어 5월 3일에는 약 150개에 달하는 자동차 부품 품목에도 25% 관세를 매겼다. 엔진, 변속기, 리튬이온배터리 등 주요 부품뿐 아니라 타이어, 쇼크업소버(충격흡수장치), 점화 플러그 전선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부품 등에도 오는 2029년까지 관세가 매겨진다.

실제로 그동안 승용차에 2.5%, 트럭에 25%의 관세를 부과해 왔던 미국은 25% 추가 관세가 적용됨에 따라 승용차 관세율은 27.5%, 트럭 관세율을 50%로 상향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27일 백악관에서 "다른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자동차 공장을 짓게 하는 것이 나의 목표"라며 "우리가 할 일은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은 모든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락가락 트럼프 車 관세 정책에 혼란만 가중된 완성차·부품 업계

관세란 국경을 통과하는 상품에 부과되는 세금을 뜻한다. 이론상 국경을 오갈 때마다 관세가 부과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완성차뿐만 아니라 자동차 부품을 다룰 수 있는 공장, 생산시설 등이 미국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부품협회 이경진 소장은 "실린더를 만들려면 알루미늄 원재료를 수입해 괴를 만들 수 있는 공장이 미국에 없기 때문에 이를 캐나다에서 수입해 온 뒤 미시간주 등으로 다시 보내고 가공 상태의 물건을 다시 캐나다로 보내는 복잡한 과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국경을 지나다니며 3번의 25% 중복 관세를 받는데 이렇게 되면 미국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실린더조차 이렇게 복잡한 움직임을 보이는데 수백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엔진과 파워트레인은 이보다 더하다"며 "미국 서민들에게 자동차는 필수품으로 꼽히는데 중복 관세로 인해 자동찻값이 폭등할 것이고 이는 트럼프가 미국을 자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트럭들은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 지역을 한 달 이상 돌아다니는데 만약 차량이 고장 나고 부품 조달에 차질이 생기면 물류 비용·운송비용·신선 식품값 등 모든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고 이 소장은 우려했다.

우려는 현지에서도 나왔다. 지난 4월 22일 자동차 정책위원회, 자동차 혁신 연합 등 미국 자동차 6개 주요 단체는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는 전 세계 자동차 공급망을 뒤흔들고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 소비자의 자동차 가격을 높이고 대리점의 판매를 감소시키며 차량 서비스 및 수리를 더 비싸고 예측하기 어렵게 할 것"이라며 "대부분 자동차 공급업체가 갑작스러운 관세 부과로 인한 혼란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고 이는 생산 중단과 직원들의 해고, 기업의 파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되지 못한 대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캐나다 등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피해를 보자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을 준수하는 멕시코·캐나다 자동차의 미국 부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면제한다며 내년 4월 30일까지 미국에서 조립한 자동차 가격의 15%에 해당하는 부품에 대해 관세를 1년간 면제하고 이후부터 2027년 4월 30일까지는 10%에 해당하는 부품에 관세를 면제하기로 발표했다.

이어 "자동차 회사들이 캐나다, 멕시코 등 다른 나라들에서 만들어진 부품을 (미국에서 만들기 위해) 전환 중이다"며 "그들은 그 부품들을 여기서 만들 예정이지만,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은 지나친 정책 변화에 미국 내 최고경영자(CEO)들과 민주당, 공화당까지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헤지펀드 업계 켄 그리핀 시타델 CEO는 "관세는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를 돌려놓지 못할 것"이라며 "제조업을 살리겠다는 그의 꿈은 실현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자동화 되고 있는 제조업보단 지식 재산권 등을 미국의 강점으로 맞받아쳐야 한다"고 말했다.

美 주 매출 창구이던 기아, 한국GM… 강경·불확실 정책 기조에 '초조한 입 마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HMGMA 준공식에 참가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HMGMA 준공식에 참가했다.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비명을 지르는 사이 유례 없는 속도로 치고 나간 그룹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3월 25일 미국에 210억달러(약 30조8616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향후 현대차그룹 메타플렌트(HMGMA) 생산량을 50만 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차 임원진도 분주히 나섰다. 이승조 현대차 부사장은 "멕시코에서 생산되던 미국향 투싼을 앨러버마 공장(HMMA)으로 이관해 만들고 있고 HMMA에서 생산하던 캐나다 판매 물량을 멕시코에서 생산해서 캐나다로 넘기는 정책은 이미 시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HMGMA에선 제네시스와 아이오닉 시리즈를 만들 것"이라며 "뉴욕, 플로리다, 텍사스 등 주와 지역에 맞춰 맞춤형으로 전략을 짤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 회장과 현대차를 향해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자동차 기업 현대차'라고 치켜세웠다. 4월 30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미국 투자' 행사에 참가한 무뇨스 사장에겐 "호세, 땡큐, 뷰티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찬사는 그 당시뿐이었다. 정 회장이 투자를 발표한 뒤 4월 3일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경우 무역에 관해서는 적보다 우방이 더 나쁘다"며 "한국, 일본과 다른 매우 많은 나라가 부과하는 모든 비(非)금전적 (무역)제한이 어쩌면 최악"이라고 비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백악관에서 연설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백악관에서 연설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의 또 다른 기둥인 기아는 애가 타고 있다. 현대차와 달리 미국에 투자할 수 있는 재고량이 많지 않고 올해 신차 출시 계획이 없는 것이 이유다. 차량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인센티브 비용도 계속 나가고 있어 시름이 커지는 모양새다.

기아 김승준 재경본부장은 4월 25일 1분기 실적 발표 직후 컨퍼런스콜에서 "조지아 공장 등 미국에서 생산하는 차종은 미국에서 판매하는 전략을 구상 중"이라면서도 "차량 적재 재고 부족으로 5,6월부턴 미국 관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기업 차원에서 예상 중"이라고 말했다.

또 "2분기 전망에 대해서는 관세라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말하는 것은 너무 이르지만 관세로 인해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하반기에는 (수요) 감소의 요인으로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일시적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숨을 고르며 전략을 취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재고 부족에 대한 우려에는 모든 글로벌 재고를 미국에 몰아줄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기아는 40% 이상의 매출을 수년간 꾸준히 북미에서 벌어왔고 수입차 관세는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공공연했던 사실인만큼 관세 책정으로 인한 매출 실적 부진이 따라올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한국GM도 초조하다. 지난해 생산한 49만 대 중 85%가량을 미국에 수출했을 정도로 미국 매출 의존도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GM은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의 거의 절반인 123만 대를 한국 등 외국에서 생산했다.

특히 주력 수출 차량인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에 25% 관세가 붙으면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 자동차 업계의 진단이다. 트레일블레이저는 약 1만9995~2만7895달러 (약 2380~3320만원) 수준,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미국 판매가는 약 2만1495달러(약 2943만원)부터 시작한다고 알려졌다. 차량 판매가에 25%를 단순 산술한다면 5000~6000달러(약 700~835만원)가 추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3월 기준 미국 신차 평균가는 4만8641달러(약 6790만원) 수준이었고 한국GM의 트레일블레이저는 약 3만달러(약 4400만원)보다 아래 가격인데 여기에 25% 관세가 붙어버리면 저렴한 가격이라는 이점이 떨어진다"며 "미국에서 3만달러 차량의 포지션은 브랜드보단 가성비, 예산을 따지는 위치인데 소비자가 기존 예산을 침범당하면서까지 그 브랜드를 택하거나 충성심을 보일지는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콕스 오토모티브 에린 키팅 애널리스트는 "자동차 생산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의 거의 모든 곳에서 차량을 제조, 판매하고 글로벌 제품 요구와 글로벌 공급망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며 "혼다 시빅, 도요타 코롤라, 쉐보레 트랙스와 트레일블레이저, 닛산 센트라, 혼다 HR-V와 같은 3만달러 미만 차량이 이 관세의 주요 타깃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미국 내 자동차 생산을 지지하지만 추가 관세 때문에 자동차 시장은 미지의 영역으로, 기업들이 예상하기 험난한 길로 치닫고 있다"며 "공장을 짓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는 수년이 걸리며 인력은 하룻밤 사이에 개발될 수 없다. 자동차 산업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는 혼돈만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Copyright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