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현 교수, 재판소원 도입 한국형 모델 제시
사전심사 강화 등 운영방안으로 부작용 최소화
헌재 "공감" vs 대법 "헌법 위반"…법조계 우려
선결조건 등 '기본권 보장-사법안정' 균형 모색
사전심사 강화 등 운영방안으로 부작용 최소화
헌재 "공감" vs 대법 "헌법 위반"…법조계 우려
선결조건 등 '기본권 보장-사법안정' 균형 모색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최근 헌법재판소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재판소원’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제도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 정광현(사법연수원 27기)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2월 발표한 ‘재판소원 도입에 관한 일고’ 논문에서 제시한 한국형 재판소원 모델이 현실적 대안으로 주목된다. 정 교수는 사건 폭주 방지를 위한 사전심사 강화와 직접적·간접적 기본권침해 구분 심사 등 구체적 운영방안을 담은 해법을 제안했다.
사건 폭주 대비해 사전심사 강화
재판소원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는 제도다.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공권력 행사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일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바로 이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독일과 대만, 스페인, 체코, 튀르키예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특히 독일의 경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전체 헌법소원 사건 중 약 90%가 법원의 재판을 대상으로 제기될 만큼 활발하게 기능하고 있다.
사건 폭주 대비해 사전심사 강화
정광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독일과 대만, 스페인, 체코, 튀르키예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특히 독일의 경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전체 헌법소원 사건 중 약 90%가 법원의 재판을 대상으로 제기될 만큼 활발하게 기능하고 있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3년 대법원에 들어온 신건 수는 본안사건을 기준으로 3만7669건에 이른다. 이는 같은 해 처리된 항소심 사건 약 15만건의 약 25%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러한 상고율만큼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대해 다시 재판소원이 제기된다고 가정한다면, 2023년 접수된 3만7669건 중 약 9400여건 가량이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이는 2023년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신건 수 2591건의 3.6배에 해당한다.
2023년 각 심급별 신건 수(본안사건 기준, 단위: 건, 자료: 사법연감) |
먼저 사건 폭주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독일식 ‘일반등록부’나 ‘헌법소원 수리절차’를 그대로 도입하기보다는 현행 헌재의 ‘사전심사절차’를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명백히 부적법한 헌법소원뿐 아니라 명백히 이유 없는 헌법소원까지 신속히 걸러낼 수 있도록 지정재판부를 기존 3인에서 5인으로 확대하고, 이들이 만장일치로 각하 또는 기각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심사 기준과 관련해서는 ‘직접적 기본권침해’와 ‘간접적 기본권침해’를 구별하는 이원적 접근법을 제시했다. 법원의 재판 내용이 근거 법률의 규율 내용으로 간주될 때 발생하는 직접적 기본권침해에는 이른바 ‘슈만 공식’을 적용하는데, 이는 법원의 법적 견해와 동일한 내용을 가진 가상의 법률이 있다면 그것이 위헌으로 판단될 경우 재판소원을 인용해야 한다는 기준이다. 반면, 법원의 법 해석·적용상 단순 오류가 문제 되는 간접적 기본권침해에 대해서는 ‘자의금지 공식’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 접근법은 먼저 명백한 법 적용 오류를 확인한 후, 그 다음 단계로 파기 필요성과 상대방 소송 당사자의 신뢰 이익을 비교·형량해 ‘자의성의 문턱’을 넘었다고 판단될 때만 인용하는 방식이다.
정 교수는 재판소원 도입이 여러 측면에서 유용하다고 분석했다. 먼저, 재판소원을 통해 법원과 헌재 간 헌법 해석의 불일치를 해소하고 사법부 내 헌법재판의 일관성을 보장함으로써 헌법 해석·적용의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나아가 이는 시민, 법원, 헌재 간 헌법적 논의를 촉진하고 기본권 의식을 고양시켜 헌법적 대화의 활성화에 기여하며, 또한 법률 전체가 아닌 위헌적인 법률 적용 부분만을 시정하는 정교한 ‘핀셋 통제’가 가능해져 헌법재판의 합리성을 제고하고 이 과정에서 법원의 사실자료와 법률 해석 의견이 헌재 판단의 합리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설명한다.
헌재 ‘공감’ vs 법원 ‘반대’…법조계 “혼란 초래” 우려
재판소원 도입 관련 찬반 주요 논거 비교 |
이러한 학계의 논의는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최근 헌법재판소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재판소원’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헌재는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도, 헌법소원 남발 가능성을 경계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반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현행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헌법 규정에 반한다”며 재판소원 도입에 대한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 도입으로 이어져 불필요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주요 우려사항으로는 재판 지연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될 수 있으며, 경제력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인해 재판 과정에서 차별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된다.
정 교수는 재판소원의 성공적인 국내 도입을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법원의 조직 및 절차 개혁, 재판소원 도입과 관련된 헌법 규정의 개정, 헌법재판소의 구성을 현재 9명에서 15명으로 확대하는 방안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선결조건들이 구비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으므로, 정 교수는 몇 가지 과도기적 방안도 함께 제안했다. 헌법소원 청구기간을 현행 ‘위헌 여부 심판의 제청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통지받은 날부터 30일 내’에서 ‘해당 사건의 재판이 확정된 날부터 30일 내’로 조정하는 것, 한정위헌결정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는 것, 대법원 관할 하에 법원의 자의금지 위반을 심사할 수 있는 별도의 절차를 마련하는 것 등이다.
정광현 교수가 제시한 재판소원 도입 준비 단계 |
